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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
해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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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친구연인물, 순정녀, 시월드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잡지 않는, 껌 씹는 모습마저 섹시한 32세의 워커홀릭 장석현. 석현의 친한 친구 자리를 유지해 온 은수는 사실 그를 17년 동안 짝사랑 해왔다. 고백한다 한들 차일까 봐, 사촌동생을 거두고 동네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그에게 차인다면 친한 친구라는 위치마저 사라질 테니까. 그렇게 누르고 눌러 마음을 감춰왔는데, 석현이 사귀자며 은수에게 다가온다.
술 취한 밤에 했던 한 번의 입맞춤으로 은수가 친구가 아닌 여자로 보이는 석현. 자신의 마음을 아무리 분석해봐도 은수가 여자로 보이니 그녀를 여자로 만나야겠다. 친구로만 보인다며 거부하는 은수에게 대시를 시작한 석현. 오랜 친구 사이에 뒤늦은 사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흔한 설정이다. 여주인 은수가 중학교 시절부터 남주인 석현을 짝사랑해왔다는 설정이니 그 오랜 시간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얼마나 애를 썼을까. 그런 노력이 허무할 정도로 석현은 술 취한 밤 키스를 곱씹으며 여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마음 한 자락이 보일까 노심초사하고, 그의 여자친구들을 보아왔던 은수에게 세상이 바뀌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여자친구보다는, 친한 친구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계속 석현을 밀어낸다. 이미 예전에 그에게 준 마음이지만, 들키지 않으려 얼굴에 표정을 지우고 친구로만 지내려 한다. 하지만 이런 밀어내기도 불도저급 대시력을 장착한 석현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려져있던 것들이 여자로 들여다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석현. 자신의 여자사람 친구였던 은수를 여자친구로 보게 되니 이렇게 예뻤나 싶고, 이런 아픔을 숨기고 있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오랜 시간 함께한 다른 친구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전형적인 친구연인물이 이어진다. 밀어내고 들이대고 감추고 들춰보려는 노력 사이에 커다란 사건, 사고 없이 잔잔한 진행을 이어가다가 석현 어머니인 박여사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둘 사이에 시련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해화 작가는 무리하게 사건, 사고를 만들어내기보다는 현실적인 에피소드의 틈을 촘촘히 쌓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작인 <그 외에도 더 많은 것들>도 현실에 있음 직한 주인공을 책 속으로 소환해 이야기를 완성했다. <가을장마> 역시 오랜 친구 사이가 어떻게 연인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에서 예상 가능한 시련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따라가며 수월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조용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였기에 기억에 남을 만한 임팩트 있는 한 방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