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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그녀를 사랑하세요 (전2권/완결)
김언희 지음 / 카멜 / 2015년 9월
평점 :
키워드 : 재벌녀, 연하남, 첫사랑, 재회물, 전문직
스물하나 서훈, 스물셋 소영은 대학 간 조인트 서클인 '선우회'에서 만났다. 소영은 푸르른 나무 같은 서훈에게 관심이 갔고, 서훈은 흰 목련을 닮은 소영에게 반했다. '얼음 여왕'이라 불리는 소영은 YK 그룹의 장녀로, 재벌가 1순위 며느릿감으로 꼽히는 존재. 아버지에게 그런 존재, 그런 역할의 자식으로 살아오던 소영은 서훈을 만나고서야 자신의 권태를 깨닫는다. 삶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던 그녀에게 서훈은 '재미있는 곳'을 함께 가며, 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그녀의 마음을 두드린다.
정소영은 말랑거렸다. 서훈을 보면 자꾸만 말랑말랑해졌다. 아무리 벽을 세워봐도 그 눈을 보면, 그 목소리를 들으면 더럭 겁이 나도록 다른 정소영이 되었다. 하지만 서훈과의 만남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럴 만큼 정말이지...... 좋았다. - 1권 초반, 소영의 마음
중학생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첫사랑 이지석과 원치 않는 하룻밤을 보내고, 소영은 자신이 서훈을 사랑했음을 깨닫지만. 그와 함께 할 수 없는 현실 또한 직시한다. 이대로 지석과 결혼한다면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삶 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판단한 소영은 YK 그룹의 장녀가 아닌 'YK 그룹의 후계자'로서의 길을 택한다. 대학 4년을 마치기도 전에 서둘러 준비한 유학에 앞두고, 서훈의 "누나를, 좋아했었어요, 많이"라는 고백을 뒤로 둘은 헤어진다. 그리고 8년 후 소영과 서훈은 맥킨리에서 다시 만난다.
김언희 작가의 <블랙러시안>을 검색하다가 정자매의 첫째인 소영이 주인공이라 먼저 선택했다. 재벌가 이야기라는 두루뭉술한 정보 외에는 어떤 내용인지 알지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월척을 한 느낌이다. 서훈과 소영이 처음 만나는 장면과 둘이 만남을 이어가는 부분에서는 스물 초반의 풋풋함이 느껴졌고, 8년 뒤 그들이 재회한 장소인 오피스에서는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의 고군분투가 피부로 와 닿았다. '로맨스'라는 장르에서 다소 쉽게 표현하는 삶의 이면을 꽤 적나라하게 묘사해 흥미가 일었다. '주인공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이 힘겨운 사랑 이야기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왔다.
아주 먼 거리를 돌아와서야 만날 수 있었던 서훈과 소영. 미소가 싱그러워 쳐다봤던 스물하나의 서훈은 스물아홉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적당히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남자가 되었다. 철옹성 같은 얼음벽을 두루고 있던 스물셋의 소영은 YK 그룹의 후계자로의 길을 걸어가는 서른하나의 여자가 되었다. 공부하는 동안에 무채색의 옷만 입고, 잠을 자기 위해 약을 먹고, 재미있는 곳 한번 가지 않는 그런 여자로 말이다. 그리고 재회한 그들은 서로에게서 예전과 다른 모습에 실망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결국 진심을 고백하며 연인이 된다. 이 과정에 소영과 결혼하기 위해 온갖 음모(?)를 펼치는 이지석이 방해꾼으로 등장한다.
"그래, 예쁜 옷 입고, 일 열심히 하고. 이제 나만 접으면 정소영 앞에는 신세계다. 멋진 세상만 있을거야"
(중략)
"이제 잘 지내요. 신세계에서."
(중략) - 2권 후반, 헤어지면서 서훈이 하는 말
로맨스 소설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항상 눈물이 나는 포인트가 있다. 어차피 이 둘은 행복하게 잘 살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항상 눈물이 난다. 서훈과 소영은 두 번의 이별을 하기에 두 배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특히 2권에 나오는 이별 장면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이한 체험에,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 터라 리뷰를 적기 위해 다시 보고 또 울었다.
서훈과 소영의 앞에 겹겹의 벽이 있고 하나의 벽을 힘겹게 넘어서도 또 다른 벽이 등장하는 감정 소모가 많은 이야기다. 게다가 컨설턴트로 일하는 주인공들 덕분(?)에 경제용어도 많이 등장하고, 재벌가 집안에 대한 묘사가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하기에 읽으면서 상대적 박탈감(?)도 안겨준 책이다. 그럼에도 엄지손가락이 두 개인 게 안타까울 정도로 쌍엄지를 추켜세우고 싶은, 중간에 끊어 읽기가 너무 힘들었던 책이다.
얼음 성의 외로운 여왕에게 손을 내민 서훈, '그녀를 사랑해 준' 서훈이 있기에 소영이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사랑하세요>라는 제목이 이렇게 절실하게 느껴지다니. 과도한 감정소모가 두렵지 않다면 추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