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 물고기 박사 황선도의 열두 달 우리 바다 물고기 이야기
황선도 지음 / 부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열두 달 제철에 맞춰 우리가 자주 접하고 즐겨 먹는 생선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지식만을 전해 주는 것은 지루하니 내가 현장에서 경험한 재미난 일, 먹어 보고 기억하는 맛, 우리 생활에 녹아 있는 역사와 속담 등을 추가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 9p.
작은 크기 탓에 생선임을 의심받는 멸치는 단단한 뼈를 가진 경골어류다. 멸치의 귀에 있는 '이석'이라는 뼈를 갈라보면 나무의 나이테와 비슷한 무늬가 있다. 이 무늬를 통해 멸치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블랙박스'인 셈이다. 작지만 자신의 이력을 귓 속에 품고 있는 멸치처럼 우리가 몰랐던 16종의 물고기 이야기가 담긴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이다.
이웃 블로거의 서평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흥미로운 제목과 먹기만 했던 물고기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해 선택했다. 30년 넘게 물고기를 연구한 황산도 박사는 TV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물고기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볼 때마다 전문가로서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제철에 자주 접하고 즐겨먹는 물고기를 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12달에 맞춰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땅에서 사는 인간에게 '물'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다. 그래도 갯벌이나 강은 사람과 가까운 곳에 있어 어종과 생태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고 한다. 반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바다 생물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다. 단지 먹는 수산물로 인식하기 때문에 수산생물로서의 연구가 미비한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수산생물로 관점을 넓혀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는 것이 수산업 종사자와 최종 소비자로서의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미지의 세계인 바닷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 그들의 생태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지구를 사랑하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찬 바람이 불면 '생태찌개'와 같은 따끈한 국물요리가 생각나듯 1월의 생선은 명태다. 잡는 법과 건조법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 명태는 그만큼 사랑받는 생선이다. 하지만 우리 해역에서는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생선이기도 하다. 무분별한 남획과 지구 온난화에 따른 전 지구적 생태계 변동을 이유로 꼽을 수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한다. 3월을 대표하는 생선은 숭어다. 바다와 강을 힘차게 왕래하는 숭어는 하굿둑이 막히고 연안이 개발되면서 보기 힘들어졌다. 이처럼 환경을 지키거나 파괴하는 일이 우리네 식탁에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국내에는 바다 물고기에 대한 대중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 원로 학자가 쓴 민물 물고기에 대한 대중서가 있을 뿐, 바다 물고기에 대한 책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후기에 쓰인 <자산어보>에 다다를 정도다. 전문가의 논문은 많으나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처럼 물고기 전문가가 쓴 바다 물고기 이야기는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사이 '인문학'이 화두로 자리 잡았다. 이전에는 전문가 집단에서만 통용되던 정보가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넓지만 얕게, 그리고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인문학이 우리 곁으로 왔다. 꼭 철학이나 역사, 문학 만이 인문학이 아닌 인간을 둘러싼 모든 학문이 서로 융합하고 교류하며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먹을거리인 수산물에서 나아가 연구하고 보호해야 할 수산생물로서의 물고기를 바라봐야 할 때이다. <멸치 머리엔 ~>에는 사라져가는 물고기를 다시 살리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환경 파괴가 얼마나 물고기 생태에 위협적인지를 경고한다. 하루에도 수십 종의 동물이 사라진다는데, 바닷속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