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융합 - 인문학은 어떻게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을까
김경집 지음 / 더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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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끝없이 묻고 의심하고 따져보라. 기존의 지식과 정보는 타인이 만들어놓은 것이지만 여러분이 묻고 따져서 찾아내고 캐낸 것들은 여러분의 것이 된다. 그 출발은 물음에서 시작된다. 물음은 누가 대신하거나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러분이 묻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전적으로 주인이다! 그게 바로 인문학의 기본 정신이고 태도다.  - p.483

 

 

'융합'의 사전적 의미는 '녹아서 하나로 합침'이다. 과학 분야에서 자주 사용하는 이 단어를 인문 분야로 가져오면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역사는 역사 안에서 철학은 철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이야기하던 것에서 벗어나 역사와 철학을 이어붙이고, 수학과 철학이 결합하며, 미술, 음악, 지리, 과학, 음식 등 여러 분야가 어우러져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엄마 인문학>, <고장난 저울>에 이어 만난 김경집은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책을 집필하는 작가다. <생각의 융합>은 인문학적 융합이 왜 중요한 지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상상력을 강조하는 시기이며, 정부에서는 '경제(일자리)를 창조하라'며 '창조 경제'라는 슬로건까지 내세운다. 그래서 창의성을 학원에서 가르치고 책에서 배우라고 난리다. 그런데 과연 창의, 창조, 상상력이 책이나 학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성공한 외국 CEO의 삶을 반추하며 그처럼 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과연 나에게도 적용되는 삶일까. 구호와 선언, 슬로건은 난무하지만 알맹이는 쏙 빠진 껍데기만 보고 환호하는 것은 아닌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섞고 묶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영역(p.7)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하여 컴퓨터 알고리즘의 한계를 채우는 것이 미래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며, 그것이 바로 융합의 가치이고 힘(p.8)이라고 강조한다. 텍스트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텍스트로 엮어보고 해석하는 것이 창조와 융합의 시작(p.9)이라며 <생각의 융합>을 구상한 계기 또한 아이의 셔츠에 있던 숫자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힌다.

 

<생각의 융합>은 목차에서부터 낯선 조합으로 눈길을 끈다. 콜럼버스와 이순신이 100년의 시간을 두고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역사로 풀어낸다. 절대 권위에 맞선 코페르니쿠스와 기존 미술에 반기를 든 백남준을 나란히 둔다. 에밀 졸라와 김지하, 호메로스와 제임스 조이스, 히딩크와 램브란트, 나이팅게일과 코코 샤넬 그리고 푸틴, 두보와 정약용 그리고 김수영이 시공간을 초월하고 분야를 넘나들며 만남을 시도한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히딩크와 렘브란트가 만난 '자유로운 개인'을 말하는 부분이다. <생각의 융합>은 오랜 시간 꾸물거리며 읽었다. 마침 히딩크와 렘브란트를 읽은 뒤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네덜란드인이 출연해 네덜란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개인의 자유'에 대해 민감하며, 심지어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에까지 자유를 허용하는 그들의 모습이 다소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에서 그토록 '개인의 자유'에 대해 많은 허용을 하는 이유가 그들의 독립 전쟁과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책에서 읽었던 부분과 일치하는 순간 어렵게만 느껴지던 '생각의 융합'이 생활 속에 녹아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어렵게 생각하면 너무 어렵지만 생각의 영역을 가두지 말고 다양한 생각의 꼬리를 서로 잇는다면 그 또한 생활에서의 '생각의 융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마지막 챕터에서 인문학은 사람이며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경험은 직접 습득할 수도 있고, 책을 통해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결국 그런 경험이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놓은 생각의 틀에서 자유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생각의 융합'이며 '나만의 인문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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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정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건 우리의 삶이다.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나의 신념 등 모든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그리고 철학 역시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삶,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분별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지성적 자각이다. 따라서 정치도 철학도 삶 속에 녹아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한다. - 153p.

 

우리는 그동안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글로벌'을 외쳐왔다. 그런데 우리의 글로벌리즘은 제대로 세계를 읽고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영어 잘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외국어는 다른 문화와 소통하고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지 그 언어를 습득하는 것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 아니다. 세계화를 떠들면서도 정작 세계사를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 교육 현실을 보면 암담하기까지 하다. - 294p.

 

인문정신을 갖추는 것이 그저 고전 강독이나 품위 있는 교양의 습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진짜 인문정신을 갖추는 것이다. - 3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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