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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혹시 대학원 다닐 생각 없어"
"네?"
"너 공부하고 싶어했잖아. 이번에 'BK21'지원 사업에 선정되서 학비는 걱정 안해도 되는데."
"아......, 생각 좀 해 볼게요."
대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평소 친분이 있는 학과 조교가 대학원에 다닐 생각이 있는 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순간 수 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중학교 때부터 장래 희망이 '학자'였던 나다. 무언가가 되기보다는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장래 희망란에 항상 '학자'라고 적었던 꿈만 크던 소녀였다.
그런데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고 원하던 학과에 들어가니 '먹고 살아가야 할 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주변의 많은 친구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니면 토익 등을 준비하며 일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다. 다들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사니즘'을 해결해야 다른 주변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내일 당장 먹고 살아갈 길이 막막한 나는 학비만 해결된다고 해서 공부를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타지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학비보다 생활비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읽으며 13년 전 그때가 계속 떠올랐다.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그때 그 길을 걸었다면 나의 현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아마 공부가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면, 다른 길로도 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학부생 때 학과 사무실에서 근로 학생으로 일했던 나는 '교수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닐 지라도 수많은 시간을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지내는 그들을 보았다. 강의를 위해 수차례 대학교를 지나다니지만, 편하게 쉴 장소조차 없는 그들이 있었다. 10년 째 '시간강사'라는 이름으로 이 학교 저 학교에 수업을 다니며 '언젠가 교수'가 되려고 노력했던 아주 오래된 선배의 모습도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1부에서는 대학원생의 시간을, 2부에서는 시간강사의 시간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다. 충분히 화가 나고 비참하며 눈물나는 일임에도 담담하게 '자신의 청춘'을 이야기한다. 프롤로그에서 '내가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나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썼다.(p.15)'고 밝혔을 만큼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동화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했다'로 끝이 나지만 우리 이야기는 항상 '진행 중'이다. 그래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모두가 '시간강사'의 모호한 경계의 삶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평범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진짜'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책을 읽고 나서 하나의 바람이 생겼다. 이 책의 작가는 자신의 이름 대신 '309동 1201호'라는 닉네임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언제가 될지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문서적을 써주길 바란다. 책 속에서 그가 강조했던 생활에서 익히고 접할 수 있는 인문학을 그의 다른 글을 통해 접하고 싶다. 그래서 그가 추구하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 성장하고 배우는 '교학상장'이 책으로도 실현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