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저울 - 수평사회, 함께 살아남기 위한 미래의 필연적 선택
김경집 지음 / 더숲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출근길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무언가 가슴을 내리누르는 것 같고,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 전날 국가장학금으로 일본에 공부하러 간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은 아쉬움만은 아니다. 버스 좌석에 오도카니 앉아서 내 기분이 왜 이렇게 찜찜한 지를 하나씩 짚어보았다. 아! 이제서야 생각났다. 오늘은 그 분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이다. 정말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하루다. - 2008년 2월 25일 일기

지금 돌아봐도 그 날 버스에서의 기분이 생각날 정도로 우울한 아침이었다. 이후의 시간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겪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내가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되어 느끼는 기분만은 아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져 앞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나는 투표권을 가진 이후로 투표 전에 모든 후보의 공약을 읽어보고 투표에 임한다. 집으로 오는 공약집을 모두 펼쳐놓고 꼼꼼히 읽으며 '실현 가능한 공약인지','선심성 공약은 아닌지'를 따진다. 그리고 투표 후 공약이 잘 이뤄지는지 지켜보는 것이 유권자가 할 일이라 생각해 나름 열심히 감시한다. 투표로 세상이 얼마나 변하겠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적어도 뽑히지 않았으면 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다수의 노동자가 부자를 위한 정치가에게 투표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마 내 마음 속 답답함은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엄마 인문학>에 이어 두번째로 만난 김경집이다. <고장난 저울>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는 책이다. 1997년 이후 승자독식 체제가 굳어져 버린 우리 사회에 '이제라도 고장난 저울을 고치고 수평사회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명확한 메세지를 전하는 책이다. <고장난 저울>은 민주주의, 교육, 세대 갈등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나가자고, 지금이라도 함께 하자고 계속 외치는 책이다.

책을 읽는데 아들이 다가와 "엄마, 책 표지가 이상해요. 가벼운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요"라고 말하는데 뜨끔했다. 초등학생의 눈에도 명확하게 보이는 고장난 저울. 나는 뻔히 보이는 고장난 저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당장 내 일이 아니니 괜찮을거라고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책장을 덮은 뒤에 더욱 머리가 복잡하고 한숨이 나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끌시끌한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이 많아지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기분이다. 책을 읽고 이렇게 우울해지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우리가, 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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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비대칭성을 무너뜨림으로서 다른 비대칭성을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개인이 해야 할 일은 각자가 자신의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선전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평소에 다양한 정보에 대한 공부와 사고가 필요하다. 국내 신문뿐 아니라 가능하다면 외국 신문도 다양하게 읽어야 한다. 국내에만 정보가 있는 게 아니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정보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다. 정말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결정하고 필요한 정보를 심층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정보의 비대칭성에 빠지지 않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 대안이 될 것이다. - 48~49p.

민주주의는 인간은 모두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또한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대우 받아야 한다는, 모든 이의 생명은 동일한 가치를 가지며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무엇보다 모든 이가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 59p.

 


그렇게 민주주의는 정치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에서 퇴색하고 무참히 유린되고 있다. 공감 능력조차 상실한 사회, 그리고 99%를 약자와 빈자로 내몬 1%의 행태는 머지않아 사회적 저항이나 무기력 둘 중 하나로 나타날 것이다. 그 어떤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면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사람을 포기한 사회는 결코 성장할 수 없고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그것도 매우 중요한 전환의 시기에 여전히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 77p.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중요한 덕목은 연대감이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이 목표라면, 그래서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키운다면 학교교육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중략) 연대감은 바로 민주시민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 이전의 전체주의적 사고나 집단 우선주의적인 그릇된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적 연대를 가르쳐야 한다. 혼자는 쓰러지고 넘어지지만, 함께 가면 굳건히 이겨낸다. - 135p.

 


지금 대한민국 상류층의 가장 큰 문제는 공감능력의 부재다. 그러나 공감능력의 부재는 비단 그들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세대 간의 공감능력도 부족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타인의 불행과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 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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