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첫 문장 -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윤성근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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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어렵다. 시작만 어려운 게 아니라 글을 쓰는 건 항상 어렵다. 그 중에서 '첫 문장'이 가장 어렵다. 누가 읽어도 감탄할만큼 뛰어난 글을 한 번에 쓰고 싶지만, 현실은 '쓰고 지우고 고치고 쓰고 지우고 고치고'의 무한 반복이다. 이처럼 평범한 글을 시작하는 일반인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데,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의 심정은 어떠할까. 책이 좀 많다는 저자 윤성근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쓴 긴 이야기를 읽게 만들고 싶은 소설가들은 두말할 필요없이 첫 문장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6p.)'라며 세계문학 중에서 매력적인 첫 문장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렇다고 첫 문장만 모아 나열한 책은 아니다.

 

범상치 않은 프롤로그를 읽으니 작가 이력이 궁금했다. 아니나다를까 책 날개에 적힌 소개글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자 윤성근은 IT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와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이상한 나라의 헌 책방'을 운영 중이다.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헌책방을 운영할 정도라면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도전 정신이 매우 뛰어난 걸까. 가늠조차하기 힘들다. 한때 나에게도 '서점 주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서점 주인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책을 원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현재, 오프라인 서점이 종적을 감춘 힘든 현실에서 헌 책방 운영은 대단한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평범하지 않은 작가라는 나의 촉이 틀리지 않았다.

 

고백부터 해야겠다. 책을 받아들고 목차를 읽어보니 제목은 알지만 읽어본 책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고전의 정의를 '제목은 알지만 읽지는 않는 책'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매우 잘 들어맞아 민망할 정도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은 나처럼 세계문학과 친하지 않아도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매력적인 첫 문장을 소개하면서 저자만의 소설읽기를 곁들여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그 중에서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으로 시작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저자와의 끈끈한 인연으로 책의 시작을 연 <변신>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에서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었다. 벌레로 변한 모습에 그레고르의 가족과 지배인, 그리고 사랑하는 여동생마저도 끝내 그레고르의 진심을 보지 못한다. 요즘 인터넷 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 '~충'이다. 남을 비하하는 단어로 시작한 '~충'은 이제 어떠한 단어와도 환상의 조합을 이루는 단어가 됐다. '~충'은 나와 남을 구분하고, 남을 깍아내리며, 결국에는 자신을 비하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변신>은 현대의 이런 세태를 예견한 듯한 프란츠 카프카의 경고가 아닐까.

 

 

사회는 발전했고 돈만 있다면 못할 게 별로 없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중략) 당장이라도 무슨 큰일이 발칵 일어날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우리는 번쩍번쩍 빛나는 고층빌딩 유리창보다, 화려한 색감에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스마트폰보다, 마우스 클릭 몇 번만 하면 쉽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최첨단 인터넷보다,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호흡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물질세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저 건너에 있는 사람들, 우리들의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시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가 결국 그레고르이자 동시에 그의 가족이 되어 비참한 결말을 쓰게 될 것이다. - 33p.

 

 

책 읽기는 재미있는 취미생활이다. 책 읽기가 뭐가 재밌냐고 하겠지만 하루에 30분만 그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 수 있다면 책 읽기만큼 재미난 게 없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은 책 읽는 재미와 함께 자신만의 시선으로 소설을 읽으라고 권한다. 소설의 재미 중 하나가 '오독(誤讀)'이라고 한다. 소설에는 분명한 작가의 메세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하며 한 권의 책으로 수십가지의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독서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면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을 권한다. 저자의 시선으로 차분히 읽어낸 23권의 세계를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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