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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 이주헌의 행복한 그림 읽기 ㅣ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니는 도서관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신문에 으레 나오는 신간 소개 외에도 각 신문사의 책 관련 인물 인터뷰와 책소개, 칼럼 등을 스크랩해 계단에 비치한 일이다. 책을 읽다보면 익숙한 장르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왠지 낯설고 어려울거라는 편견에 기존에 읽던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에 눈을 돌린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나또한 익숙한 장르를 두고 다른 장르 책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런 내게 열람실로 향하는 계단에 걸린 '서양 미술을 너무 쉽게 알려준다는 이주헌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1995년 초판을 발행한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2권의 개정판으로 강산도 변한 10년의 세월에 기존에 있던 미술관을 빼기도 하고 추가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토대는 1995년 가족이 함께 떠난(이주헌과 그의 아내, 그리고 아이 둘) 50일간의 미술관 체험이다. 서양 미술관 안내서일뿐 아니라 일반 독자를 위한 서양 미술책이며 가족 여행기이다. 미술은 학교 다닐 때 책에서 배운 내용이 고작인 사람에게 이처럼 은혜로운 책이 있다니. 오랜 시간 사랑받는 책은 그만큼의 비결이 있는 법이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권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피카소 미술관, 퐁피두 센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반 고흐 미술관, 렘브란트 미술관, 벨기에 브뤼셀의 벨기에 왕립미술관, 독일 쾰른의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다. 유럽 지도를 펼쳐놓고 보자면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을 지나 2권에서는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고 보면 된다.
미술관련 지식이라고 해봤자 중고등학교 때 배운거랑 대학교 교양시간에 배운 현대 미술이 전부다. 이런 반토막도 안되는 미술 지식이 이 책을 보면서 점점 가지를 치는 느낌이 들었다. 대영박물관의 이집트나 그리스 유물에서는 화려한 영광 뒤에 오는 씁쓸함이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대혁명이 진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기분이다. 현대 미술의 지평을 연 피카소나 조각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로댕, 빛의 화가 렘브란트와 '지상에 버려진 천사'라 불리는 반 고흐 등 이름만으로도 무릎을 치게하는 작가들의 향연이다.
책을 읽으면서 부러운 한편 화가 나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올해 초 국내 근현대 작가의 회화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폐허 속 복구 등 굴곡진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괜찮은 그림이 많은데 난 왜 그동안 이런 그림을 알지 못했을까? 문화강국으로서 유럽이 지닌 풍부한 문화적 감성이 부러웠고, 교과서에서 수도 없이 봤던 그 그림들이 모두 서양 그림이라는 데 화가 난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그림을 자주 접하고 흔하게 볼 수 있다면 이런 이질감은 조금 잦아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직 2권의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작가인 이주헌 씨는 감상을 적으면서 국내 작가나 작품을 곧잘 인용했다. 책은 책으로 이어지듯 그림도 그림으로, 조각도 조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서양 미술관 여행이 끝난 뒤에는 국내 미술관 여행을 해볼까 한다. 직접 미술관에 가지 않더라도 책으로 떠나는 국내 미술관 여행, 상상만으로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