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베스트셀러를 신뢰하지 않는다. 남들 다 노는 시기에 남들 다 간다는 피서지에 가지 않는 이유와 같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니까.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행동이 나를 즐겁게 하지 않으니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놀러가서 놀지는 못하고 사람만 구경하고 사람에 치이기만 하는 게 어떤 의미에서 '휴가'인지 이해불가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도 신뢰하지 않는다. 까놓고 말해서 베스트셀러라는 게 그렇다. 베스트셀러는 단지 '많이 팔린 책'일 뿐이지 '좋고 괜찮은 책'이라서 많이 팔린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대부분의 베스트셀러 도서가 자기계발서이다 보니 더욱 거리감이 있다.

 

2009년에 나와 2년 동안 80쇄 넘게 찍은 책이니 확실한 베스트셀러다. 얼마 전 저자인 김정운 교수가 방송에 나와 책이 다시 잘 팔린다고 하니 잘 되는 사람은 뭘 해도 잘 되는가보다. 제목만 들었을 때 이 책을 소설로 알고 있었다. '아내', '결혼', '후회'라는 단어 조합때문에 소설로 생각하고 그런 줄 (2년 동안이나)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저자를 TV에서 보고 그런 사람이 쓴 책이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책을 손에 들었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이라는 부제가 제목보다 더 크게 표지를 차지하고 있어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도발적인 제목은 구석에 작게 배치해놓고, 부제가 명당자리를 차지한 이유는 (내 생각에) 제목이 '미끼'였기 때문이다. 제목을 보고 호기심에 책을 관심을 갖게 하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일 뿐. 진정한 제목은 부제인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니 저런 표지 디자인이 나온거겠지. 부제를 제목으로 했다면, 지금의 절반이라도 팔렸을까? 과연?

 

요즘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김정운 교수의 맛깔난 재담을 글로 담아낸 책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 긴장감을 풀게 한 뒤, 본문은 문화심리학 이론을 적절한 예시를 들며 설명한다. 마지막은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마무리해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도발적인 제목과 흥미로운 개인사, 전문 문화심리학 이론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 '한국 중년 남성의 거침없는 속내'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낸 책이다. 게다가 21세기의 핵심 가치를 '재미'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주장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다. 제목의 '결혼'에 낚여 결혼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책을 살포시 내려놓고, '아저씨들의 수다'가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런데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질 않는다. 심리에세이는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를 연발하다가도 덮고 나면 머리속이 하얀 백지장이 되는 단점이 있다. 이 책 또한 읽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뭔가 어려운 용어가 수시로 튀어나와 그게 뭐였는지 모르겠는, 그런 괴리감을 느꼈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는 떠올라도 그걸 글로 적자니 '글쎄올시다'가 되버린 것이다.

 

한편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다면 이 책을 읽고 얼마큼의 공감을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김정운 교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계층에 한정된 느낌이다.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삶에서 재미를 추구할 수 있지, 먹고 사는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았는데 삶에서 재미를 추구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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