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이 인도차이나 - 어느 글쟁이의 생계형 배낭여행
정숙영 지음 / 부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여행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여행을 그닥 즐기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면서도 여행에세이를 놓지 못하는 '나'에게 여행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았다. 나는 게으르고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니까 남이 대신 다른 곳의 풍경과 문화를 체험하고 그걸 글로 읽는 것만으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렇게 게으르고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도 아니다. 어딜 가든 동서남북만 구분하면 길 찾는 데 선수이고, 하루종일 걷는다고 불평을 쏟아내는 성격도 아니다. 일 때문에라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다른 도시를 방문하는데, 그런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걸 보면 분명 여행을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거다. 그럼 뭘까? 남들이 그렇게 열망하고 꿈에 그리고 가고 싶어하는 '여행'이라는 걸, 난 왜 이리도 시큰둥하게 여기는 걸까?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물음표가 점점 늘어갔다.

 

여행작가 정숙영의 책을 네권째 읽었다. <사바이 인도차이나>는 작가 블로그에서 배낭여행을 갔다, 어디에 있다, 다녀왔다, 책을 쓰고 나왔다하는 근황을 접한 지 꼬박 2년만에 나온 책이다. 그동안 유럽이나 일본만 다녀서 휴양지 개념의 '동남아시아'는 가지 않는 여행작가라 생각했는데,(내 생각에) 의외의 지역을 선택했다. 작가가 동남아시아 즉 인도차이나 반도를 택한 이유는 딱 하나!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해야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절충안,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방법인즉슨 일을 싸들고 생활비가 저렴하게 드는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 작업을 위한 여행으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택한 것이다.

 

작업을 위한 여행이라, 생각만으로도 낭만이 넘치고 여유가 흐를 것 같지만 정숙영이 떠나는 데 그렇게 낭만과 여유가 흐를 리 없다. 이제는 제법 여행자로서의 포스가 넘치지만, 매번 여행때마다 실수와 사고가 이어지는 정숙영이니 절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역시나 방콕에 도착한 첫 날부터 파란만장 난리부르스 쇼가 펼쳐졌다. 그래! 이래야 내가 아는 정숙영인거다. 그녀의 이상은 높고 원대했으나 현실은 현지인의 구경거리로 전락해 11시간 이상 로컬버스를 타며 이동했고, 하루에 3시간 전기가 들어오는 동네에서 '이 동네에 왜 아이가 많은가'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하기도 했다.

 

정숙영이라는 여행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다. 재기발랄한 문체 덕에 매 페이지마다 팡팡 터지는 재미가 있다. 그러면서도 따듯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정숙영을 정숙영이게 만드는 건 '재미'와 '따듯한 시선', 이 두 개의 조화가 균형을 이룰 때 그녀의 책은 생명력을 갖는다. 그녀의 첫 책이 재미에 치중했다면 이후 나온 책들은 재미가 사라지고 다른 걸 채우려고 한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사바이 인도차이나>는 그녀 특유의 유머와 사람을 대하는 그녀의 따듯한 시선이 더해져 정말 '괜찮은 책'이 만들어졌다. '책이 나올수록 작가도 성장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책이다.

 

정숙영의 여행기를 읽으면 여행은 참 별게 아니다. 유명 관광지나 먹을거리, 호사스러움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여행을 오롯이 즐기는 분위기가 담담하게 흐른다. 여타 여행에세이가 무언가 멋드러진 문장에 괜히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여행지 혹은 현지인을 바라본다면, 정숙영은 그냥 그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여행도 결국 생활이라는 걸, 여행자가 여행하는 그 곳에 누군가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여행과 생활은 한끗 차이에 불과하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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