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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노트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ㅣ 지식여행자 11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석중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나온) 요네하라 마리의 11번째 국내 번역서이다. 일본에서 그녀의 책이 나온 순서와 국내에서 번역되는 순서는 무관하다. 그리고 그녀가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묶어 낸 책들도 결코 시간 순서로 나온 건 아닌 듯 하다. 글과 글 사이에서 시간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짐작이지만 10번째 번역서인 <팬티인문학>이 (시간상으로 유추컨데) <교양노트>보다 뒤에 쓴 글을 모은 책인 듯 하다. 또 하나의 짐작을 덧붙이면 '요미우리 신문' 일요판에 3년 정도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인데, 실린 글 수가 80개에 불과하다. 365일을 7로 나누면 52주가 된다. 3년이니 52*3이 되므로 156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3년 정도라는 시간을 '만3년'이 아닌 '3년차'라 해도 2년 정도의 시간이면 100개 정도의 글이 실려야 할 것 같은데 부족하다. 요네하라 마리가 기사 펑크를 자주 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그런게 아니라면 책으로 묶이면서 잘린 글이 상당수에 이르지 않나 싶다.
어설픈 탐정 흉내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앞서 밝혔듯 <교양노트>는 '요미우리 신문' 일요판에 실린 글을 묶은 책이다. 원제는 <교양노트>가 아닌 '한낮의 별하늘'이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원제 대신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교양'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넣었다. 다만 교양을 얻고자 한다면 그리 만족스러운 책은 아니지 싶다. 남에게 무언가를 주입시키려고 노력하거나 가르치려고 힘주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문이라는 한정된 지면에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라면 어떤 내용을 써도 무방하다'는 전제 하에 글을 풀었기에 비유가 가득하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글이다. 오히려 부제에 쓰인 '생각'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원제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 한낮에도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있지만 태양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엄연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는 아홉 살부터 열네 살까지 소녀 시절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모든 수업을 러시아어로 진행하는 학교를 다녔다' 라는 명제가 요네하라 마리를 '요네하라 마리답게' 만드는 특징이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이 주장에 동의한다. 그녀를 그녀답게 만드는 건 타고난 재담가라는 요소에 소녀 시절 다른 문화에서 겪었던 경험이 결합한 형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그녀의 글을 풍부하고 재미있게, 남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인문서라고 하면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인문'이라는 소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와 같다. 그녀만큼 재미있고 유쾌한 스토리 텔링을 유지하면서 무릎을 딱 치게 하는 통찰력을 가진 작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넓고 깊게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 이면을 놓치지 않고 꿰뚫어 보는 작가다.
앞서 말했듯 <교양노트>에서 교양을 쌓거나 얻으려는 수작은 애당초 갖지 않는 게 좋다. 교양보다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고 그 속에서 무엇이든 쌓거나 얻으려면 적어도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3권이상 읽어본 독자라야 가능하지 싶다. 덜렁 한 권만 읽고서 '난 이 작가를 알았어'라고 말하기엔 말하는 입이 창피하지 않은가.
평소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은 많은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까우면서 먼 이웃인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닮은 점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영화 홍보하러 온 외국 배우에게 뜬금없이 "한국 음식 중에 좋아하는 게 뭔가요?"라든지 "(외국에 진출한 한국 배우 이름을 대며) OOO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는 질문은 한국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덜 창피하다는 건 아니다.
지면의 제약 때문인지 평소 요네하라 마리가 쓰는 글 길이보다 짧은 편이다.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다음, 다음, 다음'을 외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상대적으로 단문(短文)이라서 그런 재미가 떨어진 점이 이 책의 유일한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