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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관 산책 ㅣ 미술관 산책 시리즈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0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10년 가까이 런던의 갤러리들을 드나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림은 전문가의 소개나 미술사 책의 해설보다는 마음의 눈, 남이 아닌 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전문가의 소개도, 미술사적인 해설도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한 장의 그림이 기억에 남느냐 남지 않느냐의 여부는 그 그림이 마음의 눈에 들어왔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그림들은 내 마음의 눈에 들었고, 그리고 내 기억에 남았다. - 들어가며 중에서
미술관을 주제로 한 미술에세이는 차고 넘칠 정도다. 이런 책의 홍수가 출판사가 관련 서적을 많이 낸 탓인지 아니면 독자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려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 중에서 단연 우세는 '파리 미술관'에 대한 책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미술사의 흐름이 파리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은 유명 화가들의 유명한 그림이 가득 걸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파리 미술관에 걸린 그림에 할 말이 많을 수 밖에. 반면 비슷한 시기 수많은 그림을 쏟아냈던 영국화가의 그림은 천대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화풍에 도전하기보다는 기존 화풍에 주저 앉아 새로움에 목말라하는 평론가들의 눈에 차지 않았던 까닭이다.(라고 어느 글에서 읽었다)
<런던 미술관 산책>은 저자가 영국에 10여 년간 살면서 드나들었던 영국 미술관에 대한 기억들이다. 가난했던 유학생 시절,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던 미술관을 거닐며 위로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유명한 그림도 있지만 작가 개인의 기억에 남은 그림이 많다. 그리고 보다 영국 이야기가 담긴 그림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런던의 그림, 그 그림 속에 숨겨진 영국 역사 이야기들'이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다.(영국 미술관에 가서 꼭 보아야 할 그림목록은 각 장 마지막에 따로 정리했다)
런던 미술관 산책 일정은 내셔널 갤러리, 코톨드 갤러리, 국립 초상화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순이다. 이 중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은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익히 들어보았다.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반면 코톨트 갤러리와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관심을 가져야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코톨트 갤러리는 런던의 직물업자였던 새뮤얼 코톨트가 개인적으로 모은 작품들로 문을 연 미술관이다. 코톨트는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직관과 아내와 딸의 의견을 참고해 그림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의 수집 목록에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런던의 수많은 미술관 중 가장 많은 인상파 화가 그림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런던의 숨어있는 보석'이라 칭한다.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영국 역대 왕과 왕족, 위인들의 초상화가 있는 곳이다. 영국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영국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딱히 감상도 감동도 없는 장소다. 하지만 '헨리 8세와 여인들'의 얼굴이 모두 있는 곳이니 드라마 <튜터스>의 팬이라면 흥미로운 장소일 것 같다.
'전문가의 눈보다 자신의 눈으로 그림을 볼 때, 그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나 또한 지난 2009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근대화가전에 다녀오고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근대화가들의 그림 속에는 급변하는 한국 사회가 담겨 있었다. 서양미술을 다양하게 흡수한 여러 흔적이 그림을 모르는 까막눈에게도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이런 책을 읽으면 부러운 게 서양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책은 전문가 수준에 부합하는 책은 물론이고 일반인이 가볍게 읽을 있는 책까지 종류가 다양하고 수량도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 미술관련 책은 열심히 찾아야 볼 수 있다는 게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미술관 산책'이나 '경기 박물관 산책'을 주제로 한 책이 나오면 반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