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하트, Braveheart, 1995>라는 영화가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가가 대립하던 시절, 스코틀랜드 저항군을 이끌던 지도자 윌리엄 월레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자유'를 외치며 처형당하던 윌리엄 월레스의 모습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잉글랜드 군대 앞에서 치마(?)를 들고 맨 엉덩이를 보여주던 스코틀랜드 군대의 엉덩이모습이다. 얼굴에는 무시무시한 전투화장을 한 상태에서 뒤로 돌아 치마를 들어올리니 맨 엉덩이가 보였다. "엥? 대체 팬티어디간거지?"

 

사춘기 소녀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스코틀랜드 남자들의 복장에 대해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다. 그들이 입고 있던 치마는 킬트(kilt)라고 부르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남자용 하의다. 킬트의 무늬나 색은 가문을 나타내며, 양털로 직접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유사시에는 펼쳐서 이불대용으로 사용하고 전투복으로 이용하는 등 다양하게 쓰였다. 하지만 '그 속에 왜 팬티를 입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떠나지 않았다. 이런 의문이 풀린 건 스코틀랜드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고 나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니란 걸 알고 반가웠다. 요네하라 마리는 유치원에서 보았던 그리스도상을 보고 의문을 품는다. '저 사람이 입은 건 대체 뭘까?' 하고 말이다. 호기롭게 '훈도시'라고 말했지만 친구들은 다른 '것'이라 말한다. 그런 의문은 급기야 팬티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이어진다. 누가 요네하라 마리 아니랄까봐.

 

요네하라 마리의 '저 사람이 입은 건 대체 뭘까?'에서 시작한 의문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고서적을 들추게 만들며, 각 나라의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녀답게 집요하게 거슬러 올라가고 자료를 찾아 헤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미도 있다.

 

가랑이를 감싸는 형태의 팬티를 입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던 어린 시절, 팬티가 아닌 고쟁이를 입었던 할머니를 떠올려보면 이런 결론에 이르는 게 어렵지 않다. 속옷을 입지 않는 문화에 대해 '에잇! 그건 말도 안돼'하며 손을 내젓기보다는 왜 그런 문화가 형성되었는지 탐구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요네하라 마리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런 자세는 그녀의 책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미덕이다. 다른 문화를 손가락질하는 간단한 방법보다는 보다 넓고 열린 시각으로 포용하려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일전에 읽었던 <나의 이슬람>에서 '체복'(인도네시아에서 하는 뒷물을 말한다)에 새롭게 알게 되고 이 부분을 발췌해 게시글로 올린 적이 있다. 대부분 '놀랍다'와 '더럽다'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팬티 인문학>에서도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소련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의 이슬람>의 저자는 종이로 닦아내는 문화가 앵글로 - 색슨 문화라 말한다. 그리고 세계는 앵글로 - 색슨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니 손을 사용하거나 닦지 않거나 물로 씻는 건 '발전하지 않은' 문화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는 다른 문화에 한 발만 내밀면 금세 '이해하지 못할 것'내지는 '발전하지 않은 것'이 되버리는 아이러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팬티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팬티의 형태에 대한 추론, 속옷 문화, 바지가 발생한 기원, 훈도시와 민족주의 등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만든다. 요네하라 마리는 '속옷이 시대의 흐름과 문화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는 매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이야기를 연결해 흥미롭게 풀어냈다. 자신의 일생을 걸어야 할 정도로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한 '속옷과 문화'는 그녀가 세상에 없기에 더이상 이어지질 않는다. 아직도 풀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고 말했던 만큼 '최후의 물리적 장벽'을 우린 아직 다 알지 못한다. 누군가 요네하라 마리를 이어 속옷 이야기를 풀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수많은 속옷 중에서도 '팬티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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