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이 함께 읽는 근현대사
아사히신문 취재반 지음, 백영서.김항 옮김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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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오꾜오에서도, 서울에서도, 뻬이징에서도 역사는 기념비나 기념관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인은 3 1운동이 자기 안마당에서 시작된 것을 알고 있을까? 중국인은 5 4운동의 원동력이었던 조선인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한 나라의 역사라는 벽을 넘어섰을 때, 사람과 사상의 네트워크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같은,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 130p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이 함께 읽는 근현대사'라는 부제가 달린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은 일본 아사히신문이 지난 2007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매달 한면씩 연재한 「역사는 살아있다 : 동아시아의 150년」이라는 특집기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여기에 지난 2008년 4월 19일에 개최한 국제 심포지엄 '역사화해를 위하여'의 개요와 국내판에는 한국과 대만의 학자가 읽은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해설 대담이 실려있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150년간 동아시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열가지 사건은 어떠한 기준에서 뽑았을까? 아사히신문 취재반은 그러한 연구에 관여한 전문가를 중심으로 20명의 지식인을 찾아다니며 10대 사건을 추천해달라 요청했고, 20인이 고른 10대 사건을 가지고 겹치는 사건을 참고해 10개 테마로 압축했다. 동아시아의 근현대는 아편전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책의 특징은 역사가의 전문서적이 아니기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의 구성도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흔적이 엿보인다. 우선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에서 시작한다. 아편전쟁의 시작은 청국의 관리였던 린 저쒸가 광저우에서 아편을 몰수하고 영국상인을 추방하면서이다. 따라서 광저우에서 글을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내 인터뷰를 하고 이를 연구하는 역사가를 만난다. 또한 현재까지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 헤맨다. 이는 사료를 바탕으로 서술하는 역사책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어디까지나 신문기자들이 쓴 특집기사이기에 인터뷰와 취재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일본, 중국, 한국, 대만의 교과서를 비교하며 이러한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살펴보고 편집자의 인터뷰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일반 대중매체 혹은 소설이나 영화 등 대중문화가 이 150년의 집단기억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다뤘다.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청나라와 일본은 힘의 역학 구조에 변화를 갖는다. 한국이 빠졌다고 서운해하지 말자. 중국 중심의 중화체제가 붕괴를 맞은 건 메이지 유신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 국가의 면모를 갖춘 일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청과 러시아, 일본 사이의 알력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번졌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동아시아 최고의 국가라는 일본의 자만심은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만들고 이후 중일전쟁으로 번지며 동아시아 모두가 고통받는 국제 전쟁으로 커진다.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면서 일본은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모든 전쟁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 본토는 국민군과 공산군으로 나뉘어 내전을 치르고 결국 패한 국민군은 타이페이섬으로 건너가 중화민국(대만)을 세운다. 이념의 날을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세웠던 한반도는 1950년 6월 25일을 기해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이념 대립이라는 하나의 칼날과 소련, 중국, 미국, 일본 각 국의 이해가 얽힌 결과물이 5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휴전'상태의 한반도다. 가난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한국군이 참여했던 것은 베트남전쟁이다. 1960년대는 소련과 일본,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가 차례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자국민들의 목소리는 국가라는 장벽에 막혀 조용히 사라진다.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1979년 대만에서는 반정부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메이리따오 사건이 일어나고,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학생과 시민이 계엄군에게 죽어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1987년 한국에서는 대통령 직접선거제를 담은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냈으며, 대만에서는 38년 2개월 만에 계엄령 해제를 이끌어냈다. 1978년 중국은 떵 샤오핑 주도하에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로는 드물게 국내개혁과 대외개방 정책을 실시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위에 열거한 역사적 사실 중에서 한국관련 부분을 제외한다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중국과 일본의 힘의 역학 구조에서 한국과 대만 그리고 오끼나와는 주변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게 불편한 까닭은 내가 그동안 배웠던 역사가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사관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우리가 지금껏 배워왔던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사관에서 탈피해 '교류'와 '연쇄'라는 관점에서 동아시아 근현대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대만의 민주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명성황후를 죽인 것은 일본인이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국 또한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인을 학살한 전례가 있지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대륙은 초토화되다시피했다. 죽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으며, 이념과 민족주의로 이후에도 여러 번 고통을 받아야했다. 이런 과정은 각국의 역사서술에 있어 '다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다. 프랑스와 독일은 각 국 학생이 함께 읽을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었다. 중국과 한국,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가까운 나라지만 근현대사에서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 이웃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대립만을 반복한다. 미봉책으로 어설프게 해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랜 시간이 들더라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자세로 자국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런 시간을 거쳐 합의점을 찾는다면 동아시아에서 살아갈 아이들에게 함께 읽는 역사 교과서를 선물하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래'라는 선물을 주고 싶다. 그 시작이 이 책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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