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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 ㅣ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평점 :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중 동유럽(엄밀히 말하면 중부유럽) 편이 나왔다. 동유럽 편이라고는 하나 지역으로 보자면 체코가 분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폴란드와 슬로바키아가 세들어 있는 모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련의 여행기를 통해 어떤 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어디가 관광지인가를 말하기보다는 건물에 숨겨진 이야기나 작가, 음악가, 화가를 글에 녹아내려 노력했다.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는 작정하고 '동유럽 예술 기행'을 쓰고자 한 다짐이 보이는 책이다. 여행 일정 자체가 작가와 음악가를 따라간 일정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시작은 동유럽 여행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체코다. 그 중에서도 프라하의 카를교에서 시작한다. 카를교에서 느끼는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은 어느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이어지고 체코 출신의 작가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별의 오브제인 다리 이야기는 결국은 1980년대 자유를 염원하던 체코 청년들이 마음이 담긴 '존 레논 벽'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저자는 보이는 바깥면보다 보이지 않는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려 노력한다. 이는 전설과 신화, 우화에서부터 작가, 음악가, 화가의 실제 이야기, 신문에서 발췌한 내용, 현지인의 목소리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책에서 절반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는 체코, 그 중에서도 프라하는 은연 중에 친근한 도시가 되버렸다. 실제로 가 본 적도 없는 도시건만 책으로 읽거나 드라마로 보거나 음악으로 들으면서 알게 된 도시다. 요네하라 마리가 소녀시대를 보냈던 도시였고, 그녀의 친구들은 그 곳에 남아 '프라하의 봄'을 몸소 체험한 도시다. 일련의 한국과 일본 드라마로 인해 아시아에서 온 방문객 수가 증가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이름만으로 왠지 헤어졌던 인연을 운명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이미지의 도시다. 이렇듯 다소 뜬구름같은 이미지에서 수많은 작가와 음악가, 화가를 배출한 도시라는 사실을 알려준 책이 이 책이다.
모차르트가 사랑한 체코 프라하를 떠난 발걸음은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을 찾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베토벤이 지났던 흔적을 더듬어가며 그가 편지에 썼던 불멸의 연인은 누구인가를 유추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진실은 베토벤만 알고 있겠지만, 후대 여러 학자가 유추하며 남긴 논문을 뒤적이며 후보자를 꼽고 그들이 머물렀던 그 장소에서 그들을 떠올리는 건 때때로 여행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특히 괴팍하고 언뜻 무례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내면을 지녔던 베토벤과 조금 더 친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폴란드에서는 쇼팽과 아우슈비츠로 남아있는 나치의 만행을 떠올렸고, 걸어서 국경을 통과했던 슬로바키아 편은 다소 짧은 분량에 아쉬움이 남았다.
산지식을 마구마구 얻을 수 있는 여행을 멈출 수 없다는 저자의 글에 그렇게 모은 지식을 집안에 앉아서 글로 접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산지식을 가득 담은 책을 읽기만 해도 그 중 적은 양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은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고 하지만 (가끔 이렇게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들더라도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술 여행기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산지식을 마구마구 얻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