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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일본 시골 여행 west - 무라카미 하루키와 안도 타다오를 홀리다 ㅣ 때때로 시리즈 2
조경자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보이지 않아도 있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예요..." - 184p.
일본 시골은 커녕 일본 도시, 아니 일본이라는 땅에 발조차 디뎌본 적 없는 이에게 '일본 시골 여행'이라는 주제는 멀게만 느껴진다. 멀어 보이는 주제로 한 책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책 소개보다 저자 소개에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한 저자가 기자에서 편집자로 그리고 작가와 여행자로 살아가는 이력이 부러웠다. 거기에 '이런 사람은 어떤 글을 쓸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두 번째는 나 자신이 시골 출신이기 때문이다.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스무 살 이전까지 도시에 살아본 적이 없기에 딱히 '여행'이라 이름 붙인 것보다 시골 구석을 그저 '쏘다녔던' 시절이 있다. 그리고 도시로 나와보니 이런 게 '여행'의 의미였다. 도시에서 온 이들의 눈에 그저 신기해 보이는 것들이 시골 사람들에겐 그저 '일상'인 그런 풍경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시골을 꿈꾸는 저자의 눈에 어떻게 비췄을 지 사뭇 기대감이 일었다. 네 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나라 일본, 그 중에서도 혼슈의 서쪽 지역과 시코쿠 일부 지역이 저자의 여행지다.
올록볼록 튀어나온 엠보싱 화장지처럼 귀여운 동그라미에 일러스트가 더해진 표지는 '감성적인 여행에세이일 것 같아'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저자 소개와 독특한 일러스트가 더해진 속지, 그리고 몇 장의 사진을 보니 이런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사진보다 글이 많은 여행에세이를 좋아하지만) 가끔 글보다 사진이 많은 여행에세이에도 좋은 느낌을 가졌기에 '사진이 많은 여행에세이군'하고 단정을 하고 본문을 펼친 순간,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사진과 빽빽한 글에 놀라고 말았다. 한 지역마다 상세한 지도를 넣고 그 지역에 가볼만한 곳과 숙소, 식당, 카페, 갤러리 등을 소개하고 비용과 홈페이지까지 자세한 정보가 한 면에 차고도 넘친다. 여행정보서라고 하기엔 감성적이고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엔 친절한, 미묘한 지점에 놓인 그런 책이다. 중간에는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유카타 입는 법, 온천 즐기는 법, 오코노미야키 즐기는 방법 등을 일러스트로 소개하고 있다.
여행지는 가가와 현을 시작으로 돗토리 현, 시마네 현, 야마구치 현, 히로시마 현, 오카야마 현, 에히메 현 순이다. 일본 지도를 펼쳐놓고 보자면 시코쿠에 위치한 가가와 현을 출발해 바다 건너 혼슈의 돗토리 현, 시마네 현, 야마구치 현, 히로시마 현, 오카야마 현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다시 바다 건너 시코쿠의 에히메 현으로 돌아온다. 일본 섬 이름이나 지역 명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찌나 지도를 뚫어지게 봤던지 생생한 지리 시간이기도 했다. 각 지역을 꼼꼼히 다니고 자세한 정보를 넣으려고 노력한 저자의 수고도 느껴졌다.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바로 일본 여행을 떠나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그래서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있기에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느낌이다. 시골의 여유나 낭만보다는 어디에서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땀 흘리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가득한 여행기였다. 이토록 괜찮은 책을 낸 저자가 더욱 더 부러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