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 뜨겁고 깊은 스페인 예술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와 스페인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새로운 과목에 허덕이고 있을 때, 제2외국어라는 난제가 앞을 가로 막았다. 당시 제2외국어 과목으로는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가 있었다. 이 중 2개의 외국어를 선택하면 되는데, 설마 선택한 2개 외국어를 모두 배우게 될 지는 꿈에도 몰랐었다. 결국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제3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다. 배웠다고는 하지만 제3외국어였던 스페인어는 일주일에 한 시간 그것도 1년만 배웠기에 기억 나는 건 거의 없다. 다만 가장 많은 나라에서 쓰는 언어가 스페인어이고, '스페인어는 야하다(?)' 정도만 기억 날 뿐이다. 

스페인과의 두번째 만남은 처음 읽은 여행기에서다. 여행기 혹은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을 때 공교롭게도 첫 책이 '스페인 여행기'였다. 처음으로 읽었기 때문인지 당시 상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집에서 여행기의 마지막 부분을 넘기며 배달 음식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 날 따라 왠일인지 음식은 오지 않고, 결국 시킨 지 1시간 만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들려온 답은 '주소를 잘못 들어 배달원이 집을 찾지 못했다' 였다. 2시간 만에 음식을 받아들면서 짜증조차 내지 않았다. 스페인 여행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급하게 사는가'를 느끼며 '지금 순간만큼은 짜증내지 말자'라는 나름의 다짐을 세운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페인과 세번째 인연을 맺었다.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이면서 <파리 그 황홀한 유혹>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최도성 작가의 스페인 예술 기행인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를 만난 것이다. 최도성 작가의 장점은 여행의 흔적을 쫓기에 바쁜 여타 여행기(혹은 여행 에세이)와 달리 여러 번 그 나라를 방문한 기억을 토대로 그 나라의 문화와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깊이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화 작품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음식, 풍습,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풍성한 이야기를 끌어내 독자가 보다 흥미롭게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돕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지역 감정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다. 선거를 앞뒀을 때 항상 불거져 나오는 '지역 감정'이라는 단어를 매번 부정적이고 부패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는 잠잠하다가도 선거만 앞두면 정치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지역 감정'이고, 이를 이용해 자격 없는 사람들이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대통령까지 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의 이런 지역 감정은 그 정도가 매우 낮은 단계라 여겨질 정도로 스페인의 지역 감정은 그 골이 깊고 역사가 길다. 인종적으로 다르고 문화와 풍습, 심지어 언어까지 다른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카탈루냐,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여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서로를 미워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스페인 내전'에서 불거졌고, 내전 끝에 결국 카스티야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의 나라로 묶인다. 프랑코 군부 정권 아래에서 획일화를 강요당했던 각 지역은 1981년 프랑코 군부 정권이 무너지면서 숨통이 트인다. 이런 '다른' 문화가 결코 '틀린' 문화가 아닌 각 지역의 독특함으로 오늘의 스페인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건설업을 부흥시켜야만 나라 경제가 살아난다'는 해괴한 경제 논리 앞에 온 국토에 삽질을 해대고 결국 어느 곳이나 똑같은 아파트 숲과 빌라촌만 존재하는 국내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자는 핑계로 똑같은 축제를 개최하고(심지어 어디에서나 똑같은 기념품을 파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을까?) 무조건 커다란 청사만 지어대는 지방자치단체도 같은 수준임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스페인의 '다름'이 왜 다른 지에 대해 그리고 그런 '다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스페인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시간이었다. 굳이 비행기 타고 떠나지 않아도 스페인만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기회, 책 속에 있다.

 

골목은 줄줄이 이어졌고, 그 사이로 사람들은 엇갈려 지나쳤다. 저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옛날 무슬림이 걸었고 기독교인이 걷던 돌길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왔다. 얼굴빛도 다르고 말도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며 남겨놓은 역사의 이끼를 훑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대가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65p

 

스스로 '스페인은 모래 줄로 엮어진 나라'라고 자조하는 말을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갈등이긴 하지만, 현재는 점점 국력 증강과 더불어 그 간격을 좁히고 있으며 그것을 문화적 특성으로 승화시키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 3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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