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세일즈 리더십 - 사람을 통해 결과를 만드는
홍헌영.김선민 지음 / 월요일의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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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친구를 만들고,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불멸의 고전으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는 한참 되었으나, 이 책을 비롯헤 카네기가 남긴 여러 권의 저서는 인간관계와 자기 관리에 대한 탁월한 지침으로 21세기에도 그 위상에 흔들림이 없다.

세계 각국에는 카네기의 처세술, 인간관계론을 강의하고 전파하는 회사가 있는 모양인데, 한국에도 '데일카네기코리아'가 있단다. 그리고 여기엔 전 세계 카네기 강사 중 30여 명 뿐이며, 국내에는 유일한 카네기 마스터 강사로 이 책의 저자인 홍헌영이 있다. 카네기 마스터 강사는 '강사 중의 강사, 대표 강사' 격으로 강사 양성과 자격 부여의 권한을 가진 자라고 한다.

<카네기 세일즈 리더십>이란 제목을 듣고 나서, 카네기가 세일즈론도 집필한 적이 있나 싶지만 어찌 보면 세일즈야말로 인간관계의 총화요, 심리학의 절정이자 설득의 핵심이라 본다면 카네기가 설파한 인간관계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 쉽게 짐작된다. '카네기 세일즈 리더십'이란 거의 100년 전에 카네기가 말한 인간관계 원칙에다 세일즈의 기본과 리더십을 결합한 이론이라 하겠고, 책의 대상은 실전에서 영업을 뛰는 담당자가 아닌 영업 관리자에 맞춰져 있는데, 보다 세부적으로 보자면 영업 임원보다는 중간 관리자급에 적합한 내용이다.

이 내용은 휴넷에서 인기를 끄는 강의라는데 이번에 단행본으로 엮여 독자들의 호응을 기다린다.

 

카네기가 직접 창안한 이론으로 생각되진 않지만, 이 책에선 '카네기 세일즈 리더십 모델'을 SALES로 설명한다.

"SALES = Selling, Analyze, Leading, Evaluate, Succession"

대부분 사람에게 '영업'이란 피하고 싶은 이미지다. 평소 연락 한 번 없던 친구가 보험사가 들어갔다고, 네트워크 사업을 한다고 연락이 오면 오만상이 찌푸려지기 십상이다.

허나 세상에 영업 아닌 게 있나? 치킨집을 열든, 카페를 차리든 영업 활동은 기본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 역시 나라의 이익을 위해 '외교'란 이름의 영업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영업은 힘들고 고달프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가 판매해야 할 그 무언가를 고객에게 권하고 계약이 체결돼야 영업 담당자는 존재 이유가 있다. 영업처럼 결과 지향적인 영역도 없다. '실적이 왕'인 곳이고, 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든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긴 불가능하다.

"카네기 세일즈 리더십"은 영업 관리자가 어떻게 영업 담당자를 관리하고, 독려하고, 평가하고,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지 SALES 5단계로 설명한다. 이 과정은 유기적으로 순환되고 반복돼야 함은 물론이다.

가장 핵심은 '사람을 도구로, 수단으로 평가하지 말라'로 읽었다.

영업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분명하기에 정량적 평가가 용이하다. 그러나 여기에 간과돼선 안될 요소로 성품, 내면적 자질, 태도 같은 정성적 평가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다섯 가지 단계에서 적절하게 활용하라는 게 리더십 모델의 핵심으로 보인다.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숫자 이상의 의미를 필요로 한다." - 46쪽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기에 남을 변화시킨다는 과업은 거의 '위대한' 수준이다. 내 자식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부모 말 안 듣고 'My way'를 걷는다. 사람들은 변화나 개선이 좋은 의미의 단어라는 사실은 알지만, 결국은 익숙한 길을 간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잘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렵다. 영업과 영업 관리는 완전히 다른 기술이다." - 27쪽

어떤 연유로 영업의 길을 택했는지는 각자 사정이 있으리라. 분명 누군가는 본인이 원하지 않았으나 회사에서 발령이 나서 할 수 없이 영업맨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겠고, 성과 보상이 무한대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도전한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 영업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해서 '대가 세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며, 규칙적인 근무시간을 싫어한다. 회사에서 흔히 만나는 고분고분한 YESMAN은 아닐 확률이 높다. 이런 영업 담당자들을 모아, 한마음 한뜻으로 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고, 공평무사한 평가를 해야 하는 게 관리자의 역할이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영업 관리자도 분명 팀원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 시기 성과가 탁월했을 것이기에 관리자로 발탁되었으리라. 실적이 비실비실한 사람이 관리자로 발탁되는 예는 없다.

영업을 잘 했던 관리자는 부진한 팀원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성과를 내지 못하는지?

그래서일까. 선수 시절 스타플레이어였던 감독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보다,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선수가 오히려 좋은 감독이 되는 경우를 왕왕 본다.

데일카네기 트레이닝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느 조직이나 대략 30%의 사람들만 자신의 일에 제대로 몰입되어 있고, 50% 내외의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몰입되어 있으며, 약 20%의 사람들은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직무 몰입)가 끊어져 있단다. 이를 영업 관리자에게 도입해 본다면 30%의 고성과자(영업 조직에선 30%는 과하게 높은 편이다) 외에 나머지 70%의 팀원들을 관리, 육성, 동기부여해야 한단 결론이다. 물론 30%도 무관심해선 안 되겠고.

대부분 영업 관리자들은 이런 비율로 영업팀이 꾸려져 있을 경우 상위 30%에 오히려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경우라도 잊지 말자.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는 느낌이 사람을 움직인다." - 229쪽

 

책의 주요 내용인 'SALES 5단계 이론과 그 세부 내용' 물론 좋다.

부여된 목표를 단순히 전달하지(telling) 말고, 목표에 숨겨진 비전과 가치로 설득해야(selling) 한다는 첫 단계 지적부터 뒤통수에 신선한 충격을 가한다.

여기 나온 이론대로 실천한다면 분명 보다 나은 영업 관리자가 되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이 세세한 내용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체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으리라 판단된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니까.

또 하나의 변수는 영업 관리자 또한 영업 실적으로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관리자에게도 상급자가 있고, 그 위엔 임원이 있을 텐데, 관리자가 담당하는 조직의 평가는 관리자에게 갈 수밖에 없다. 긴 안목으로 평가하는데 매우 인색한 우리나라 정서상, 조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당장 당월 당월의 실적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이런 숫자 위주의 성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 팀원이 아닌, 관리자에게 꼭 필요한 제대로 된 교본이 출간되었단 점에서, 보다 나은 성과를 올리면서 전인적(全人的) 영업 조직을 이끌고자 하는 영업 관리자라면 그냥 지나쳐선 안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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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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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을 좋아한다. 주로 속초, 양양 주변을 연간 1~2회 정도 간다.

갈 때마다 꼭 들르는 장소가 있다. 바로 양양 죽도해변이다. 서퍼들의 성지로 떠오른 해변인데 몇 년 전부터 여행길에 한 번은 꼭 간다. 코로나 시국인 올해 2월에도 들렀다. 가서 물론 서핑을 하거나, 심지어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정도도 하지 않지만 그냥 차를 세우고 해변을 거닐며 바다에 떠있는 사람들을 본다. 처음엔 우리나라에도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서 호기심에 들렀고, 방문할 때마다 해변가 거리는 몰라보게 이국적으로 변하고, 무엇보다 바다에서 파도를 맞이하거나 모래밭에서 서핑 강습을 받는 사람의 수가 엄청 늘었다. 주로 겨울철에 이 지역을 들르는 나는 그들을 먼발치에서, 때론 죽도정이나 전망대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내 딸이 나중에 '서핑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며 서울로 차를 몬다.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가 나오는 <폭풍 속으로>란 영화가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멋진' 영화의 대명사로 기억에 남는 영화로 몇 년 전 리메이크작이 개봉하기도 했다.

그 영화의 마지막, 패트릭 스웨이지는 평생 한 번 만나볼까 한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긴다. 그 파도를 탄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함에도, 키아누 리브스는 패트릭의 너무나 간절한 눈빛에 그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우일은 전작 <하와이하다>를 통해 서핑에 빠졌음을 고백한 바 있다. 평생 몸치로 운동과는 만리장성을 쌓고 살아왔던 그가 50줄의 나이에 부기보드의 세계에 입문하고, 거기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하와이 체류기인 그 책의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이들 부부는 "앞으로 우린 다른 삶을 살게 되겠구나" 하며 책을 마무리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우일의 삶은 정말 변했다. 파도타기의 중독성은 더욱 심해져, 급기야 파도를 타기 위해 장롱면허를 박차고 운전을 시작하고 강원도는 물론 서해안, 부산, 제주도의 서핑 스폿을 방문한다.

당구에 빠지면 누워도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는데, 이우일은 언제나 바다를 생각하고, 파도 탈 궁리만 한다. 이우일만큼은 아니지만, 부인 선현경은 동반자로 함께 이동해서 남편을 응원하고 촬영을 하기도 한단다. 서핑은 가끔!

하와이 퀸스 해변에서 부기보드로 서핑을 배운 이우일은 한국에 와서도 계속 부기보드를 고수한다. 국내 서핑 인구가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서서 타는 서퍼들인지라 이우일은 여기서도 극소수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보통 사람에 비해선 그래도 얼굴이 좀 알려진 편이고, 희귀한 부기보드를 타는지라 어쩌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꽤 있으리란 추측도 든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면 그런 인지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겠단 생각이다.

"야, 그 지난번에 이상한 거 타던 사람 있잖아, 그게 만화가 이우일이래!"

<파도수집노트>를 통해 이우일은 본격적으로 파도타기의 매력을 설파하고 예찬한다. 하와이에서 얼떨결에 배운 서핑이 일상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예전 생활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부기보드는 그의 인생에서 분명 변곡점이었음을 말이다.

2면에 걸친 시원한 일러스트, 오직 서핑만 다루는 에세이, 작년 1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의 일기 발췌 '파도수집노트', 4컷 만화로 책은 구성되어 있으며, 비채는 사철누드제본으로 책의 자유로움에 힘을 실었다.

책에서 '하나의 파도엔 한 명의 서퍼만 타야 한다'라는 룰을 알게 돼서 놀라울 따름이다. 만약 같은 파도에 함께 탔더라도 우선순위가 밀리면 재빨리 파도에서 내리는 게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매너라는데... 그러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파도를 즐길 수 있는지!

늘 바쁘게만 살았던 이우일. 밥도 빨리 먹고, 술도 빨리 마셨고, 일도 빨리했던 그가 몇 시간 동안 바다 위에서 물때를 기다리다 제대로 파도를 타는 시간은 불과 몇 십분 될까 말까 한 서핑에 빠진 중독기가 짠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파도타기가 뭐가 그렇게 좋은데?"

눈 내리는 슬로프 정상에서 스키 타고 내려오는 맛은 알겠는데, 서핑의 묘미는 경험해 보지 않아 뭐라 말할 입장이 못된다. 이우일이 열과 성을 다해 활자와 그림으로 파도타기의 마력을 열심히 묘사했지만, 아마도 그가 느끼는 쾌감과 즐거움을 1/100도 표현하지 못했으리라. 인생에서 파도타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0인 독자가 이우일의 열정과 감흥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책을 읽으며, 서핑이란 최소한의 도구로 하는 가장 자연친화적인 스포츠가 아닐까 이해했고, 왠지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정서가 핵심이 아닌가 느꼈다.

세상 모든 걸 직접 경험할 순 없지만, 경험하지 않고선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무엇이든 시작하기에 늦은 법은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중년의 뒷모습은 언제나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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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타프 도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7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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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타프(epitaph)란 심상치 않은 단어는 King Crimson의 명곡으로 처음 접했다.

존 콜트레인의 "마이 페이버릿 싱스"가 BGM이라 할 만큼 시종일관 언급되는 온다 리쿠의 <에프타프 도쿄>는 다양한 시점과 형식이 혼용된 이종격투기 스타일의 소설이다. 소설의 형식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여기서 온다는 다소 전위적이고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보여준다.

소설의 화자는 K라는 작가로 '에피타프 도쿄'라는 희곡을 준비 중이다.(K는 아마도 온다 리쿠의 분신인 듯 64년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가 중요한 동반자인 B코나 요시야와 함께 도쿄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기억과 회상을 곁들여 단상을 펼쳐 놓는 'Piece' 부분이 대부분이지만, 여기에 흡혈귀라는 정체불명의 인물 요시야가 보는 도쿄 스케치 'drawing', K의 희곡 '에피타프 도쿄'가 간간이 삽입된다. 일본판은 어떤지 모르지만, 비채판은 이 세 부분의 색깔을 달리하여 시각적인 즐거움을 키웠다.

"도시의 흐름, 기세, 성쇠. <에피타프 도쿄>에 시대성과 더불어 그런 것을 배경 어딘가에 슬쩍 넣고 싶었는데, 적당한 정도를 가늠하기가 상상 이상으로 쉽지 않다." - 153쪽

도시도 변한다. 일본의 심장으로 역사의 주요 순간을 모두 기억하는 도쿄 역시 변화하는 생명체처럼 변신을 거듭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 K는 세계 최대의 헌책방 거리라는 진보초 같이 유명한 장소부터, 본인만 아는 퀘렌시아 히바이 사당까지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도쿄의 변화와 자신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에 걸맞게 과거 도시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사유하며 사자(死者)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도쿄와 오사카의 비교도 자주 나오고, 이웃나라 한국에 대한 언급도 보인다.

'Piece'는 그래서 소설이라기보다는 도쿄의 사람과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대본 같기도 하고, 그냥 느슨하게 도쿄에 대한 감상을 풀어놓는 에세이 같기도 하다. 도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는 도쿄가 있고, 자기가 아는 도쿄가 있다.

그래서 <에피타프 도쿄>는 지역색이 강한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K라기보다는 도쿄다. 아무래도 거기에 생활 기반이 있고 추억이 형성된 독자가 느끼는 공감은 분명 다를 거다. 예컨대 <에피타프 서울>이란 소설이 있어 거기에 80년대 쌍문동 정서나 종각에 있던 종로서적을 추억한다면... 다른 나라 독자들이 번역본으로 글은 읽을 수 있겠으나, 고유한 공감대를 공유하기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도쿄에 대한 기억을 채집하는 듯한, 희곡 집필을 위한 일종의 취재기로 'Piece'를 읽어가다 정작 희곡 '에피타프 도쿄'의 내용을 접하면 뜨악한다. 살짝 맛보기만 보여주는 이 희곡은 도쿄의 속살과는 무관한 여성 살인 청부업자 집단을 다룬다.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로 줄곧 이스탄불을 응원했던 필자는 도쿄가 개최지로 선정되자 낙담한다.(Piece 19 '2020') 이 소설은 2015년에 발간되었다. 또한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요시야의 입을 통해 놀라운 통찰력을 선보인다.

"전염병은 꼭 다시 옵니다. 아니, 벌써 바로 저 앞에 와 있어요. 팬데믹의 수위는 높아져 있습니다." - 10쪽

뚜렷한 기둥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는 <에피타프 도쿄>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 독자들에게 '이게 무슨 얘기야? 도대체 맥락이 뭐야?'하는 반응을 얻을 듯하다. 늘 가던 길보다 가끔은 샛길에서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찾을 수 있다. '맥락 없음'이 <에피타프 도쿄>의 매력이자 이 소설을 제대로 즐기는 방식이고, 온다 리쿠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노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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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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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은 1973년도에 등단했으니,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정호승 본인이 고른 275편의 대표작이 발표순으로 엮인 시선집이다. 이미 같은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여러 번 나왔고, 이번에 비채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나왔다. 아무리 대표작을 모은 시선집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인기 서정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지라, 정호승이란 작가는 《내 인생에 OO이 되어준 한마디》 시리즈로 내겐 친숙하다. 그리고 작년 말에는 역시 저자가 고른 시 60편에 대한 해설 및 배경 설명이 있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재밌게 읽었고, 그래서인가 그의 시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조금은 높아진 느낌이다.

50년 시인의 작품 세계를 일별한 275편의 시.

정호승의 시어(詩語)는 비교적 쉽고 평이하다. 아마도 그가 동시로 먼저 등단했고 몇 권의 동화집도 냈다는 이력도 관련이 있으리라. 또한 시의 구성 역시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시보다는 산문의 세계에 경도되어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평소 시집 한 권 읽지 않는 나에게 시인이 시를 통해 전하려는 심상이 100% 전달될 리는 만무하지만, 어떤 시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해낸다. 앞으로 산낙지를 먹을 때마다 떠오르게 될 「산낙지를 위하여」도 섬뜩하지만, 한 명의 아버지로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공유하고픈 「아버지들」은 먼 훗날 유서 대용으로 삼을 만하다.

앞부분에 수록된 많은 시들은 엄혹한 시기에 쓰여서 그런가 시대적인 상황을 놓치지 않는 참여시 성격을 띤 것들이 많다. 김주열과 전태일을 정호승의 시로 만나고, 세월호 아이들도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라고 애도한다.

그가 서정시인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여기 수록된 많은 시들은 산업화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그려낸 것들이 많다. 시인은 천주교 신자지만 불교적 세계관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불교가 소재인 시도 여럿인데 대표적인 게 그 유명한 「산산조각」이다.

정호승과 등단 동기로 책의 말미에 해설을 쓴 김승희 시인은 그의 시 세계를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맑은 꿈'이라는 첨성대적 시학으로 정의했다. 동의한다.

당신이 인생의 희로애락, 어떤 단계를 지나든 이 시선집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다면 공감과 위안, 위로가 함께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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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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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 자매>, <검은 개>, <월요일의 마법사와 금요일의 살인자> 같은 독특한 제목의 소설을 쓴 추정경 작가가 작심하고 쓴 장르 소설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 본 적이 없고, 추정경이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지만 '강원랜드를 주 무대로 한 SF 누아르'라는 특이한 조합은 장르 소설 애호가의 독서욕을 자극했다.

 

◈ 강원랜드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은 강원랜드다. 적절하게 카지노를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장수꾼들은 도박 중독자들로 강원랜드 주변을 하릴없이 배회하며 인생을 카지노에 저당잡힌 인물들로 묘사된다. 또한 이들을 대상으로 먹고사는 전당사(전당포가 아니다) 무리 역시 반 건달의 모양새다. 이곳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영업을 하는 캐딜락 전당사의 성 사장이 있고, 그의 오른팔인 스무 살 진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강원랜드의 실감나는 스케치와 도박 패인들의 막장 인생을 엿보는 재미는 불량 식품을 먹는 맛이다.

◈ SF

SF(Science Fiction)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

성 사장을 제외한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포트를 통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게이트다. 이 능력도 급에 따라 다른데,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쇠퇴하기도 한다. 영화 <점퍼>와 비슷하려나?

주인공 진은 이런 능력을 순식간에 잠들어 버리는 기면증으로만 알뿐, 본인의 잠재 능력을 잘 모르고 있다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포트를 열고 닫고 조절하는 능력을 배우게 된다. 심지어는 다른 게이트들과는 다른 자기에게만 주어진 우월한 초능력까지 알게 되는데, 그건 공간의 문 말고 시간의 문까지도 열 수 있는 능력이다.

"엑스맨"처럼 게이트 간의 선악 대결이 펼쳐지며, 여기에 참전하는 용병들의 인생 유전이 소설의 주요 얼개를 이룬다. 심 경장, 정희 아줌마, 배 팀장. 그리고 진.

진의 타임슬립 능력은 소설의 다른 전개를 자연스레 유도한다. 과거가 바뀌면 당연히 현재도 바뀌는 것.

◈ 누아르

어둠의 세계에서 사는 거친 사내들의 어두운 이야기, 바로 '누아르'다. 여기서는 살인 같은 범죄가 기본값이며 배신이 주식이다.

앞서 말한 강원랜드에서 서식하는 세상 다 산 사내들이 나오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닌지라 게이트 주위엔 늘 같은 능력을 가진 적수가 존재하고, 이를 악용하려는 '조직'이 있기 마련이다. 본인의 영생을 위해 심장이식, 장기 매매도 마다하지 않는 한 회장 패거리는 보다 젊고 파워가 쎈 게이트 진을 노린다. 여기에 8년 전 받아야 할 빚이 있는 능력자 심 경장이 부활해 돌아오면서, 강원랜드는 복마전이 된다.

주인공 장진에게는 생물학적인 아버지 장만호가 있다. 몸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으로 학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인생이 흘러가던 진에게 비열한 거리의 생존법을 가르친 이가 바로 '왕년의 행님' 캐딜락 전당사 성제욱 사장이다. 세상을 하직하려던 그는 어린 진에게 보호본능을 느끼고 정을 준다. 진은 그를 유사 아빠처럼 따른다. 마음이 가는 데는 실드가 통하지 않는다.

'낳은 아빠, 기른 아빠' 기준으로 보면, 이 소설에서 비중은 기른 아빠가 월등히 앞선다.

심 경장의 동기도 그렇고, 이 소설의 원동력은 부성애일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페이지터너로 손색이 없는 재미난 작품이다.

주요 인물들 외에 철민, 진규, 주연에 이르기까지 인물의 형상화에 성공한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냥 흘러가는 배역이 없다.

현실에 존재하는 '강원랜드를 무대로 한 SF 누아르'라는 이종격투기 요소는 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동안 길을 잃지 않는다.

어떤 장르 소설은 '저자가 굉장히 즐기면서 책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는 흔하지 않은 그런 기분을 맛보게 한다. 추정경이 장르 소설에 품고 있는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자의 다른 작품들에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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