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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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 자매>, <검은 개>, <월요일의 마법사와 금요일의 살인자> 같은 독특한 제목의 소설을 쓴 추정경 작가가 작심하고 쓴 장르 소설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 본 적이 없고, 추정경이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지만 '강원랜드를 주 무대로 한 SF 누아르'라는 특이한 조합은 장르 소설 애호가의 독서욕을 자극했다.

 

◈ 강원랜드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은 강원랜드다. 적절하게 카지노를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장수꾼들은 도박 중독자들로 강원랜드 주변을 하릴없이 배회하며 인생을 카지노에 저당잡힌 인물들로 묘사된다. 또한 이들을 대상으로 먹고사는 전당사(전당포가 아니다) 무리 역시 반 건달의 모양새다. 이곳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영업을 하는 캐딜락 전당사의 성 사장이 있고, 그의 오른팔인 스무 살 진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강원랜드의 실감나는 스케치와 도박 패인들의 막장 인생을 엿보는 재미는 불량 식품을 먹는 맛이다.

◈ SF

SF(Science Fiction)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

성 사장을 제외한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포트를 통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게이트다. 이 능력도 급에 따라 다른데,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쇠퇴하기도 한다. 영화 <점퍼>와 비슷하려나?

주인공 진은 이런 능력을 순식간에 잠들어 버리는 기면증으로만 알뿐, 본인의 잠재 능력을 잘 모르고 있다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포트를 열고 닫고 조절하는 능력을 배우게 된다. 심지어는 다른 게이트들과는 다른 자기에게만 주어진 우월한 초능력까지 알게 되는데, 그건 공간의 문 말고 시간의 문까지도 열 수 있는 능력이다.

"엑스맨"처럼 게이트 간의 선악 대결이 펼쳐지며, 여기에 참전하는 용병들의 인생 유전이 소설의 주요 얼개를 이룬다. 심 경장, 정희 아줌마, 배 팀장. 그리고 진.

진의 타임슬립 능력은 소설의 다른 전개를 자연스레 유도한다. 과거가 바뀌면 당연히 현재도 바뀌는 것.

◈ 누아르

어둠의 세계에서 사는 거친 사내들의 어두운 이야기, 바로 '누아르'다. 여기서는 살인 같은 범죄가 기본값이며 배신이 주식이다.

앞서 말한 강원랜드에서 서식하는 세상 다 산 사내들이 나오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닌지라 게이트 주위엔 늘 같은 능력을 가진 적수가 존재하고, 이를 악용하려는 '조직'이 있기 마련이다. 본인의 영생을 위해 심장이식, 장기 매매도 마다하지 않는 한 회장 패거리는 보다 젊고 파워가 쎈 게이트 진을 노린다. 여기에 8년 전 받아야 할 빚이 있는 능력자 심 경장이 부활해 돌아오면서, 강원랜드는 복마전이 된다.

주인공 장진에게는 생물학적인 아버지 장만호가 있다. 몸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으로 학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인생이 흘러가던 진에게 비열한 거리의 생존법을 가르친 이가 바로 '왕년의 행님' 캐딜락 전당사 성제욱 사장이다. 세상을 하직하려던 그는 어린 진에게 보호본능을 느끼고 정을 준다. 진은 그를 유사 아빠처럼 따른다. 마음이 가는 데는 실드가 통하지 않는다.

'낳은 아빠, 기른 아빠' 기준으로 보면, 이 소설에서 비중은 기른 아빠가 월등히 앞선다.

심 경장의 동기도 그렇고, 이 소설의 원동력은 부성애일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페이지터너로 손색이 없는 재미난 작품이다.

주요 인물들 외에 철민, 진규, 주연에 이르기까지 인물의 형상화에 성공한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냥 흘러가는 배역이 없다.

현실에 존재하는 '강원랜드를 무대로 한 SF 누아르'라는 이종격투기 요소는 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동안 길을 잃지 않는다.

어떤 장르 소설은 '저자가 굉장히 즐기면서 책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는 흔하지 않은 그런 기분을 맛보게 한다. 추정경이 장르 소설에 품고 있는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자의 다른 작품들에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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