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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평점 :
정호승 시인은 1973년도에 등단했으니,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정호승 본인이 고른 275편의 대표작이 발표순으로 엮인 시선집이다. 이미 같은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여러 번 나왔고, 이번에 비채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나왔다. 아무리 대표작을 모은 시선집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인기 서정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지라, 정호승이란 작가는 《내 인생에 OO이 되어준 한마디》 시리즈로 내겐 친숙하다. 그리고 작년 말에는 역시 저자가 고른 시 60편에 대한 해설 및 배경 설명이 있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재밌게 읽었고, 그래서인가 그의 시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조금은 높아진 느낌이다.

50년 시인의 작품 세계를 일별한 275편의 시.
정호승의 시어(詩語)는 비교적 쉽고 평이하다. 아마도 그가 동시로 먼저 등단했고 몇 권의 동화집도 냈다는 이력도 관련이 있으리라. 또한 시의 구성 역시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시보다는 산문의 세계에 경도되어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평소 시집 한 권 읽지 않는 나에게 시인이 시를 통해 전하려는 심상이 100% 전달될 리는 만무하지만, 어떤 시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해낸다. 앞으로 산낙지를 먹을 때마다 떠오르게 될 「산낙지를 위하여」도 섬뜩하지만, 한 명의 아버지로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공유하고픈 「아버지들」은 먼 훗날 유서 대용으로 삼을 만하다.

앞부분에 수록된 많은 시들은 엄혹한 시기에 쓰여서 그런가 시대적인 상황을 놓치지 않는 참여시 성격을 띤 것들이 많다. 김주열과 전태일을 정호승의 시로 만나고, 세월호 아이들도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라고 애도한다.
그가 서정시인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여기 수록된 많은 시들은 산업화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그려낸 것들이 많다. 시인은 천주교 신자지만 불교적 세계관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불교가 소재인 시도 여럿인데 대표적인 게 그 유명한 「산산조각」이다.
정호승과 등단 동기로 책의 말미에 해설을 쓴 김승희 시인은 그의 시 세계를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맑은 꿈'이라는 첨성대적 시학으로 정의했다. 동의한다.
당신이 인생의 희로애락, 어떤 단계를 지나든 이 시선집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다면 공감과 위안, 위로가 함께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