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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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을 쓴 오시안 워드는 미술 평론 책임자로, 예술비평가, 시각예술 에디터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술을 잘 보기 위해 읽는 사람들이 언젠간 읽지 않고도 제대로 보는 순간을 맞이하길 바라며 미술과 관람자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Look Again : How to Experience the Old Masters>니 한글 제목 <혼자 보는 미술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다시 보기 : 고전미술 대가 따라잡기' 혹은 '다시 보기 : 고전 거장 길라잡이' 정도 개념으로 이해되는데, 실제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고전 미술의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 감상에 도움을 주려고 하기에 시기적으로 20세기 이전 작가들의 작품을 다룬다. 다빈치, 라파엘로, 고야, 들라크루아 등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도 이름을 들어본 거장들도 있지만 대다수 화가들은 미술 애호가가 아니라 그런지 다소 생소했다. 어떤 경우는 화가는 생소하지만 그림은 본 적이 있기도 했는데 '캄파냐에서의 괴테'같은 경우가 그렇다.


사진이 나오기 전 고전 미술은 주로 종교와 신화의 세계에서 소재를 많이 찾았다. 교회나 성당의 천장에서 종교의 신성함과 신의 위대함을 위해 복무하기도 했고, 왕족이나 귀족들의 요청에 의한 주문 제작 초상화는 주된 수입원이었으며, 사물을 그대로 그린 정물화도 나름 인기를 끌었었다. 사진처럼 사실 그대로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하느냐가 일단 기본 실력이었고, 지나치게 사실적이면 별 재미도 없고 모두 엇비슷하게 보일 수 있기에 대가들은 나름 본인만의 장기를 통해 인장을 새겨 넣었다. 이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8가지로 구분해 본문에서 설명한다.


저자는 고전 미술을 각자 독창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열 단계인 'TABULA RASA'를 제안한다.

'타불라 라사'는 원래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상태를 뜻하는 말로, 철학 사조 중 존 로크로 대표되는 인식론에서 막 태어난 인간의 마음 상태를 설명할 때 등장한다. 앞의 여섯 단계 TABULA를 통해 이미지를 읽는 데서 시작해 이해하고 평가하는 단계로 넘어가는데 원래 T.A.B.U.L.A는 복잡하고 어려운 현대 미술을 다루기 위해 만든 감상 방식이라고 한다.

이런 열 단계 과정을 기본기로 습득하길 권하고, 그다음은 8개의 챕터로 나누어 어떻게 고전 미술 감상에 접근하면 좋은지 설명하는 구조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를 읽고 따로 목차가 없어, 약간 놀랐는데 'TABULA RASA' 10단계 기초 학습이 끝난 뒤 62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목차가 보인다.


이 책은 전면 올 컬러로 제작되었고 어떤 그림은 두 장에 걸쳐 인쇄되어 있어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크다.

한 페이지에 전체 그림이 실렸지만, 설명이 보다 필요하면 특정 부분만 확대되어 보여주기도 한다.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안중식의 <영광풍경도> 병풍에 대한 언급이 이채롭고 반갑다.


미술 감상에 관한 책은 정말 많이 나와 있지만, 고전 시기 대가들에 집중하는 이 책은 효용가치가 크다고 본다.

이 책 한 권 읽는다고 까막눈에 갑자기 심미안이 생길 리 만무하나, 저자의 해박한 지식으로 차분하게 설명된 <혼자 보는 미술관>을 여러 번 읽는다면 분명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책을 통해 감상에 도움이 되는 이론의 재무장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시시때때로 어떤 미술 전시든 자주 방문하고 책에 언급한 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가까이에서도 멀리서도 보는 감상법이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부담도 잠시 내려놓고 관람의 일상화를 실현하자!

소장해서 여러 번 읽어도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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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발랄 하은맘의 십팔년 책육아 지랄발랄 하은맘의 육아 시리즈
김선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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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딱 그 엄마들 공포심 이용하는 게 사교육이다'라고 선언하고 사교육 발 끊고 십팔 년 동안 최고 교육은 '책육아'(머리 독서)와 '바깥놀이'(몸 독서)라는 신념으로 딸 하은이를 기른 흔하지 않은 엄마가 있다.

그 노하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게 <'지랄발랄 하은맘의' 십팔년 책육아>다.(유사 발음에 주의!)

학원 뺑뺑이 한번 돌리지 않고 오로지 독서력으로 자녀를 키운다는 게 핵심이다. 영어 역시 영어책으로 해결하고, 아직 어린아이가 독서에 취미를 붙이기 전까지는 엄마가 목이 쉴 각오로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줄 헌신과 정성은 기본이며, 여기에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추가되어야 '책육아'는 완성형이 된다.

 

"집이 도서관이니 개처럼 뛰어다니다 읽고.

먹으면서 읽고, 싸면서 읽고, 자다 읽고, 쉬면서 읽고, 차에서 읽고..."(P 125)

 

우선 기본 패턴은 어디까지나 '실컷 놀기 + 책 보기'가 되어야 한다. 남들 학원 가는 시간에 그 놀이가 무엇이든 놀다 지쳐 쓰러질 만큼 놀고 나서 남는 시간에 책을 본다는 논리인데... 통상적으로 독서의 효용에는 공감하는 부모라도 이 부분에서는 넘사벽을 느낄 수밖에.

거기다 가장 가까운 롤 모델인 엄마도 당연히 월화수목금토일 드라마 시청이 아닌 독서광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식단은 [간편식 × 인스턴트] 절대 금지 웰빙 식사로 준비해야 하고, 디지털(SNS, 웹 서핑, 게임 등) 세상과는 단절하는 대면 접촉 위주의 아날로그 삶, 자녀가 어떤 일탈을 하더라도 '평생 지랄 총량 불변의 법칙'을 믿고 기다려주는 '따뜻한 무관심', 사용되지 않은 사교육비는 절대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 날리지 말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확실하게 적립을 해두면 얼추 저자가 말하는 '책육아'를 비슷하게 흉내 내는 정도는 된다.


'책육아'에는 이론적 근거가 있다. "패시브 스킬 VS 액티브 스킬"로 설명이 가능하다.

- 패시브 스킬

따로 사용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이미 장착되어 있는 스킬

예) 체력, 사고력, 근성, 성실성

- 액티브 스킬

사용 버튼을 눌러야 발동되는 스킬

예) 영어 능력, 업무 능력, 말하기 능력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독서를 통해 패시브 스킬이 몸에 배면, 거기다 액티브 스킬을 장착해 '초강력 맨파워'가 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입시 준비는 주로 무한 반복 문제풀이, 암기식 학습 등 학원, 학습지 사교육 뺑뺑이인 액티브 스킬에 해당하는 바, 이렇게 준비한 학생들은 패시브 스킬로 내공을 쌓은 학생들을 당해낼 수 없다는 논지다.

오만가지 다양한 독서를 통해 뇌 회로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학습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지들끼리 알아서 척척 사고의 서랍으로 분류 · 융합되어 '메타인지'를 거쳐 르네상스형 인간이 된단다.

"잠재 포텐이 빅뱅이 되어 한꺼번에 아웃풋으로!"

그래서 그 결과는요?

입시만 놓고 보자면 하은이는 중학교 1학년 말 학교를 관두고 초졸 학력이 된다.

중등 검정고시는 전 과목 만점, 고등 검정고시는 과학에서만 2개 틀리고 통과.

열여섯 살에 건국대 정시에 합격했으나, 1년 더 해보겠다 해서 결국 열일곱 살(만 16세)에 연세대 정시 최초 합격!

공부가 다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자기 일처럼 해온 하은이는 엄마의 빈자리를 꽉 채우는 살림 도사요, 대치동 고액 과외로 단련되어도 현지에 떨어지면 벌벌 떠는 영어 울렁증을 가진 애들과 달리 현지인 필로 어려움 없이 미국을 누비며 '타임'지를 요약하고, 재학 당시 반 아이들에게 인기짱인 사교력 만점에다, 가끔 엄마의 강의에 찬조 출연하여 엄마보다 더 인기를 끌고, 본 대학 입시보다 경쟁률 치열하다는 연세대 상경대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 활약 중인 팔등신이고...

아! 이 정도만 적자. 더 적을 건 많은데 그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남겨놓기로 하자.

한 마디로 부모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니 그 이상인,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은혜로운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하은맘이라기보다 잘 자라준 하은이다.

일반 책에선 접해보지 못한 독설 가득한 거친 화법의 공격적인 책을 덮고 나면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래, 그럼 이참에 나도 노선 바꿔 봐?" 하는 미지근한 마음이 들다가도...

"에이, 이런 건 진짜 스페셜한 경우가 아니냐고!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면 안 되지." 하면서 대부분 '잘 읽었네, 하은이 큰 인물 되라, 파이팅!' 하지 않을까. 저자와 소통하며 따라하기 하는 책육아 조직원들의 '홍해의 기적' 간증에도 불구하고.

'책 내용 중 일부 적용할 수 있는 부분만 해 보지 뭐' 하는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퉁치고 말이다.

'우리 애도 이리 됐으면 좋겠다'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지만, 해서 안 될 이유는 100가지도 넘는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은 말로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 아니겠나!

전집만 사 주고 거실을 서재로 만들어도 저절로 하은이가 나오진 않는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건 웬만한 각오와 대범함 없이는 꿈도 꾸지 말지어다.

선을 넘을지 말지 역시 언제나처럼 선택은 당신 몫이다.

 

"안 되는 애 없다. 안 되는 엄마만 있을 뿐!"(P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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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마카롱보다 마음공부
김은정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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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창작을 전공했다는 김은정 저자는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 카페 운영, 세미나 강의 등으로 '마음공부' 전도사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처녀작 <우울할 땐 마카롱보다 마음공부>는 그간 유튜브 채널 '김사장의 마음공부방'에 올린 650여 개에 달하는 강의 동영상의 주요 내용을 50개 항목으로 정리한 책이다.


'마음공부'하면 보통 조금은 나이가 있는 의사, 교수, 종교인 등을 떠올리기 쉬운데 정작 동영상을 보면 저자는 비교적(!) 젊은 주부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두 자녀가 이제 초등학생이라니 많아야 30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나이로 경영을 하는 것도, 깨달음에 나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동네 언니의 편안한 수다를 듣는듯한 친근함이 매력 포인트!


조사 결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나 행복지수는 매우 낮다.

GNP 위주의 경제력으로만 따지면 그렇게 낮은 점수가 나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불만들이 많은 게 한국 사회다.

그들에게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독학에 기초해서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역설하는데, 마음공부란 간단히 보자면 '본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라 하겠다. 결국 본인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으므로!

원인을 알아야 진단을 하겠지?

크게 보자면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지나친 비교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 오로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려고만 하는 끝없는 욕망,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는 성과에 대한 불만 등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내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1.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집착, 트라우마, 경쟁심, 원망, 시기, 질투, 불만, 돈, 가정환경, 직장, 가족, 인간관계, 성공, 외모...

여기에다 무슨 단어를 더 보태고 싶은가? 각자 이 리스트에 포함될 단어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이 목록이 끝없이 늘어날수록 당신의 인생은 피곤할 따름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실에 충만한 삶을 살고, '내려놓음'과 '비움'이 필요하며, 없는 것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적당한 현실 타협'으로 흐를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지려고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2.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누구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 조연이나 '지나가는 행인 1'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주인공 혼자만 있어서는 제대로 된 드라마가 나올 수 없다. 그건 '모노드라마'에 불과하다.

조연, 엑스트라, 카메오가 있어야 드라마는 완성되고 주인공이 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지나가는 행인 1'도 그의 인생에선 주인공이란 사실이다.

'초라한 인생은 없고 초라한 생각만 있다'라는 각오로 인생이란 항해를 죽는 날까지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항해와 표류의 차이점은 항해는 뚜렷한 목적지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생 항로는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누가 먼저 간다고 해서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보니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나'에게 때로는 적당한 소확행도 스스로 선물하면서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소중한 24시간을 살고, 자녀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같은 치명적 대사는 하지 않는 부모가 되자.

"BRAVO! MY LIFE!"

요즘 말랑말랑한 '연성'(soft) 에세이가 유행이다.

시와 산문의 중간 형태의 글에다 분량은 많지 않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로 무장되어 사고도 싶고 선물하고도 싶은 '조각 케이크'같은 책들 말이다. '힐링'과 '위로'를 선사한다는.

체질적으로 그런 책들보다는 편안한 문체로 소곤소곤 다가오는 이 책이 훨씬 마음에 든다.

우울할 때는 별로 없지만 마음공부가 생각날 때는 찾아서 다시 읽어야겠다. 마카롱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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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 -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
선동열 지음 / 민음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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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이라!

얼핏 보면 거만한 제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에 딴죽을 걸만한 반대 의견을 내긴 힘들다.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발자취는 '최고'의 길이었으니까.

'무등산 폭격기'였던 선동열은 일본으로 넘어가 초반기 적응의 문제로 잠시 고전했으나, 곧바로 원래의 위용을 되찾고 '나고야의 태양'이 되었고 구단 최고의 등번호를 팀의 최고 투수에게 이어받게 하는 특별한 전통을 지닌 주니치 드래곤스의 '그 번호' 20번을 달고 선수 생활을 했고, 현역 11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이 1.20였다.(한 시즌만이라도 그 정도 자책점이 나오면 꿈에서나 볼만한 대단한 기록인데 통산 방어율이라니!)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스타 군단 삼성에 우승 DND를 심고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가서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선입견을 불식시켰고 최초로 야구 국가대표 전임 감독이 되었다.

모두 알다시피 2018년 국가대표팀 선발과정에서 불거진 병역 특혜 논란에 연루되어 국정감사장에 서게 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불명예' 사퇴를 하게 된다.

평생 야구밖에 몰랐고 정직한 승부의 세계에서 '원칙과 순리'를 좌우명으로 살았던 저자에게는 여러모로 크나큰 충격이었으리라.

선동열은 사건 이후 아마도 본인의 야구 인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겠고, MLB 최고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로 선진 야구를 배우러 가기 전 우리에게 <야구는 선동열>이란 책을 선물한다.

코리안 시리즈가 끝나고 야구팬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 아주 적절한 기획이다.(비슷한 시기에 <야구하자, 이상훈>도 출간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한, 일에서 뛴 선수 생활에서의 결정적 장면들(특히 일본에서 초창기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 감독으로서 가지고 있는 지도자론, 국정감사에 대한 소회, KBO에 대한 쓴소리를 포함한 야구 개혁론 등을 풀어놓는다.

오랜 시간 야구를 일상의 기쁨으로 즐겨왔고 그의 경기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팬 서비스다.

현역 시절 그의 투구 모습을 상대편에서 질투와 경탄의 마음으로 직관하기도 했고, 야구 시즌 없는 일상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는 내게도 과거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이었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레전드들의 이름들과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회상하게 하는 추억 여행이었다.

투수와 타자로 구분하여 언급한 존경하는 선수들과 그에게 영광을 선사한 감독들에 대한 기억은 소중하다.

당대 최고의 투수로 '국보급'이었던 그는 MLB에서도 스카우트의 손길이 뻗쳐 오지만 서슬 퍼런 안기부라는 국가 폭력의 개입 속에서 '국내용'으로 소비되고 만다. 그 결과 프로야구팀은 오직 해태 타이거스만 있나 싶을 정도의 타이거스의 우승은 계속 이어졌고, 광주 민주화운동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던 호남 사람들은 다소나마 한풀이를 할 수 있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고 개인에겐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심지어 일본 진출 때도 '가네 못 가네' 말이 많았던 그 과정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선동열이란 이름은 타이거스 전력의 90% 이상, 수치로 과하다면 적어도 심리적으론 그랬다.

흔히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지 아마!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선동열도 손가락은 짧고 뭉툭한 편이라고.

절친한 후배 KT 이강철 감독은 선동열보다 손가락 매듭 하나가 더 길고, 한화 단장이 된 정민철과는 5㎝나 차이가 났고, 그래서 그는 포크볼을 익힐 수 없었다고 한다.

프로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최동원과의 맞대결도 물론 주요 내용으로 소개된다.

저자는 최동원이 자신의 롤 모델이었으며 그의 어깨를 보고 야구를 배웠노라 한없이 몸을 낮춘다.

영화 <퍼펙트게임>으로도 만들어진 그 유명한 사직구장에서의 15회 무승부 게임 다음 날 저녁 최동원의 초대로 단골 식당에서 만난 두 사람은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니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 이상으로 절친한 선후배였던 모양이다.(선수끼리 교류뿐 아니라 부친끼리의 교류도 아낌없이 주고받는 사이였다고)

격의 없이 다가와 스스럼없이 대하는 최동원의 모습이 살갑게 그려진다.

그 역시 너무나 그리운 이름이다!


국감장에 선 정운찬 KBO 총재는 '국가대표 전임 감독은 불필요하고 집에서 TV로 선수를 본다'고 선동열 감독을 질타했다. 그래도 같은 편 아닌가?

총재가 KBO를 100% 대표한다고 보긴 그렇지만, 그래도 저자가 KBO에 좋은 감정을 가지긴 힘들 거다.

관계자가 보면 낯 뜨거워질 정도로 이번엔 저자가 KBO에 대해 본인 최고 무기 돌직구를 던진다.

그들의 무능함과 비전 없음에 대해.

투수의 영향력이 결정적인 운동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래도 야구는 엄연히 단체 운동이다.

나 혼자 아무리 잘 해도 '퍼펙트게임'은 할 수 있을지언정 '노히트 노런'은 할 수 없다.

선동열의 빛나는 영광에도 당연히 누군가의 헌신과 조력이 있었다. 야구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하며 그들 존재의 고마움을 새삼 발견하는 저자가 페이지마다 느껴진다.

야구는 유일하게 '희생'이 있는 스포츠다.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희생타.

이 책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감동은 '맺음말'에서 나온다.

그의 빛나는 인생을 위해 희생타만 쳐 온 가족들에 대한 절절한 헌사... 특히 결혼을 하는 둘째 딸을 보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정리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였다고.

메이저리그로 적지 않은 나이에 연수를 가는 그는 분명 지금보다 더 좋은, 발전한 사람으로 돌아올 것이다.

물론 그 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나라 야구에 기여할 거고.

아무렴, "야구는 선동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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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인생을 위한 고전, 개정판 명역고전 시리즈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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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감일은 다가오고 500여 페이지의 <논어>는 분량의 압박이 상당하다.

본문도 본문이지만 매 페이지 아래에 작은 글씨로 포함된 각주만 원고지 500매 이상 분량이라니 <논어>를 모두 꼼꼼히 읽어 나가는 데는 웬만한 책 2권 이상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원래 무거운 책은 이동 시 들고 다니지 않는데, 마감일의 압박으로 가지고 다니면서도 읽었다. 하루 종일 책만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이래저래 완독엔 5일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논어>의 내용 자체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잖나?

 

금번 개정판은 중국 고전의 번역 작업에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인 김원중 교수가 작업했다.

거의 평생 <논어>를 비롯한 고전들을 파고든 "동양고전의 대가" 김 교수는 "명역고전" 시리즈를 통해 <한비자>, <명심보감>, <손자병법>, <노자 도덕경> 같은 책들을 선보였고, 그중 가장 수요가 높은 <논어>는 개정 작업을 거쳐 이번에 새로 선보이게 되었다.

오래전 논어를 읽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우선 2가지 사실이 새로웠다.

1.

논어는 전체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편의 이름은 내용의 첫 두 글자(일부 세 글자)에서 따왔다.

'학이', '이인', '위정', '공야장'...

2.

<논어>를 해설한 주석서는 가장 대표적인 송나라 주희가 편찬한 <논어집주> 외에도 방대한 저서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다산 정약용의 40권으로 구성된 <논어고금주>를 비롯하여, 이황, 이이, '성호' 이익도 주석서를 남겼다!!!

 

논어의 의의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용을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레 내 안에 내재화되어 있는 윤리, 규범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오랜 기간 학교 교육이나 부모님 말씀 등을 통해 굽이굽이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일 거고 중장년층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본다.

'동양 = 중국'의 오랜 공식에서 유학의 정통성을 지켜 온 게 <논어>고, 중국을 향한 사대 정신으로 이어온 조선 왕조 500년 역사 속에 위에 보았듯 우리나라 대표 석학들도 <논어> 주석서를 편찬했으니 '동방예의지국'의 밑바탕에 <논어>가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仁)과 예(禮)를 중시하는 <논어>의 유교적 사고방식은 정치, 경제, 사회(윤리, 도덕), 교육 등 인간사 모든 부분을 짚는다.

전전긍긍, 과유불급, 교언영색, 살신성인 같은 4자 성어나 미혹하다, 기망하다, 역부족, 고수레, 극기 등의 단어들도 <논어>속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 해석을 놓고 이견이 있을 수도 있고, 같은 행동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토록 많은 주석서가 존재하는 이유다.

편저자인 김 교수는 주요 주석서를 모두 검토하여 깨알 같은 주석을 질릴 정도로(!) 달아 놓았고, 주석 외에 기존 번역 또한 여러 판본과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해 수정하여 개정판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 같은 하수 독자들에겐 '이건 이런 의미야'라고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지어주면 좋았겠으나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아 보다 고급스러운 독서를 가능하게 유도한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박수받아 마땅한 작업이며, 그래서 김원중 <논어>가 기존에 나온 국내 어떤 판본보다 뛰어난 판본이며, 노작(勞作)인 까닭이다.

'스스로 알고 깨우치면 좋지 아니한가!'


공자의 시대에는 학문을 닦는 이유가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통해 뜻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공자 역시 관직에 올라 본인이 이상향으로 삼는 요순시대를 재현하고 싶어 했으나 제대로 된 군주를 만나지 못했고 명성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이 생활을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고, 이에 대해 적잖은 아쉬움과 탄식을 토해내는 부분이 많아 인간적인 측은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그들은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 제17편 [양화] 17.25 (P 444)

 

<논어>에서 만나는 이 섬̰한 문장이 혹시 수천 년간 여성을 남성의 시다바리로 존재하게 한 '남존여비'의 사상적 토대는 아니었을지! 그래서 역시 오래전이지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과격한 주장이 나온 건 아닐까.

 

혹시라도 '공자왈~'하는 <논어>가 고리타분한 정석 플레이만 주야장천 떠들어대기에 하품만 나오는 거 아닌지, 현대적이진 아니잖아 하면서 딴지를 걸고 싶은가?

나라가 모 장관 임명으로 두 동강이 나서인가 정치에 관해서 명심해야 할 부분이 차고 넘친다.

이 부분들만 발췌해서 정치인들에게 아침저녁으로 들려주고 싶다.

 

- 백성들에게는 '선부후교 先富後敎', 먼저 잘살게 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원칙, 즉 의식주가 먼저라는 논지다.(P 320)

제아무리 중요한 예의나 염치라도 생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제대로 지켜질 리 만무하다.(P 328)

- (정치란)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할 것인저." - 제13편 [자로] 13.3 (P 322)

- "모두가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고, 모두가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 제15편 [위령공] 15.27 (P 397)

- "잘못하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 - 제15편 [위령공] 15.29 (P 398)

- "군자는 자신의 친족을 편애하지 않고.. (중략)" - 제18편 [미자] 18.10 (P 460)

- "[군주에게] 신뢰를 얻고 난 다음 간언하는 것이니 신뢰받지 못하면 [군주는] 자신을 비방한다고 생각한다." - 제19편 [자장] 19.10 (P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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