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선동열 -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
선동열 지음 / 민음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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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이라!

얼핏 보면 거만한 제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에 딴죽을 걸만한 반대 의견을 내긴 힘들다.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발자취는 '최고'의 길이었으니까.

'무등산 폭격기'였던 선동열은 일본으로 넘어가 초반기 적응의 문제로 잠시 고전했으나, 곧바로 원래의 위용을 되찾고 '나고야의 태양'이 되었고 구단 최고의 등번호를 팀의 최고 투수에게 이어받게 하는 특별한 전통을 지닌 주니치 드래곤스의 '그 번호' 20번을 달고 선수 생활을 했고, 현역 11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이 1.20였다.(한 시즌만이라도 그 정도 자책점이 나오면 꿈에서나 볼만한 대단한 기록인데 통산 방어율이라니!)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스타 군단 삼성에 우승 DND를 심고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가서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선입견을 불식시켰고 최초로 야구 국가대표 전임 감독이 되었다.

모두 알다시피 2018년 국가대표팀 선발과정에서 불거진 병역 특혜 논란에 연루되어 국정감사장에 서게 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불명예' 사퇴를 하게 된다.

평생 야구밖에 몰랐고 정직한 승부의 세계에서 '원칙과 순리'를 좌우명으로 살았던 저자에게는 여러모로 크나큰 충격이었으리라.

선동열은 사건 이후 아마도 본인의 야구 인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겠고, MLB 최고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로 선진 야구를 배우러 가기 전 우리에게 <야구는 선동열>이란 책을 선물한다.

코리안 시리즈가 끝나고 야구팬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 아주 적절한 기획이다.(비슷한 시기에 <야구하자, 이상훈>도 출간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한, 일에서 뛴 선수 생활에서의 결정적 장면들(특히 일본에서 초창기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 감독으로서 가지고 있는 지도자론, 국정감사에 대한 소회, KBO에 대한 쓴소리를 포함한 야구 개혁론 등을 풀어놓는다.

오랜 시간 야구를 일상의 기쁨으로 즐겨왔고 그의 경기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팬 서비스다.

현역 시절 그의 투구 모습을 상대편에서 질투와 경탄의 마음으로 직관하기도 했고, 야구 시즌 없는 일상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는 내게도 과거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이었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레전드들의 이름들과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회상하게 하는 추억 여행이었다.

투수와 타자로 구분하여 언급한 존경하는 선수들과 그에게 영광을 선사한 감독들에 대한 기억은 소중하다.

당대 최고의 투수로 '국보급'이었던 그는 MLB에서도 스카우트의 손길이 뻗쳐 오지만 서슬 퍼런 안기부라는 국가 폭력의 개입 속에서 '국내용'으로 소비되고 만다. 그 결과 프로야구팀은 오직 해태 타이거스만 있나 싶을 정도의 타이거스의 우승은 계속 이어졌고, 광주 민주화운동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던 호남 사람들은 다소나마 한풀이를 할 수 있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고 개인에겐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심지어 일본 진출 때도 '가네 못 가네' 말이 많았던 그 과정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선동열이란 이름은 타이거스 전력의 90% 이상, 수치로 과하다면 적어도 심리적으론 그랬다.

흔히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지 아마!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선동열도 손가락은 짧고 뭉툭한 편이라고.

절친한 후배 KT 이강철 감독은 선동열보다 손가락 매듭 하나가 더 길고, 한화 단장이 된 정민철과는 5㎝나 차이가 났고, 그래서 그는 포크볼을 익힐 수 없었다고 한다.

프로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최동원과의 맞대결도 물론 주요 내용으로 소개된다.

저자는 최동원이 자신의 롤 모델이었으며 그의 어깨를 보고 야구를 배웠노라 한없이 몸을 낮춘다.

영화 <퍼펙트게임>으로도 만들어진 그 유명한 사직구장에서의 15회 무승부 게임 다음 날 저녁 최동원의 초대로 단골 식당에서 만난 두 사람은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니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 이상으로 절친한 선후배였던 모양이다.(선수끼리 교류뿐 아니라 부친끼리의 교류도 아낌없이 주고받는 사이였다고)

격의 없이 다가와 스스럼없이 대하는 최동원의 모습이 살갑게 그려진다.

그 역시 너무나 그리운 이름이다!


국감장에 선 정운찬 KBO 총재는 '국가대표 전임 감독은 불필요하고 집에서 TV로 선수를 본다'고 선동열 감독을 질타했다. 그래도 같은 편 아닌가?

총재가 KBO를 100% 대표한다고 보긴 그렇지만, 그래도 저자가 KBO에 좋은 감정을 가지긴 힘들 거다.

관계자가 보면 낯 뜨거워질 정도로 이번엔 저자가 KBO에 대해 본인 최고 무기 돌직구를 던진다.

그들의 무능함과 비전 없음에 대해.

투수의 영향력이 결정적인 운동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래도 야구는 엄연히 단체 운동이다.

나 혼자 아무리 잘 해도 '퍼펙트게임'은 할 수 있을지언정 '노히트 노런'은 할 수 없다.

선동열의 빛나는 영광에도 당연히 누군가의 헌신과 조력이 있었다. 야구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하며 그들 존재의 고마움을 새삼 발견하는 저자가 페이지마다 느껴진다.

야구는 유일하게 '희생'이 있는 스포츠다.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희생타.

이 책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감동은 '맺음말'에서 나온다.

그의 빛나는 인생을 위해 희생타만 쳐 온 가족들에 대한 절절한 헌사... 특히 결혼을 하는 둘째 딸을 보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정리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였다고.

메이저리그로 적지 않은 나이에 연수를 가는 그는 분명 지금보다 더 좋은, 발전한 사람으로 돌아올 것이다.

물론 그 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나라 야구에 기여할 거고.

아무렴, "야구는 선동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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