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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일 때 더 잘한다 -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내향인의 섬세한 성공 전략
모라 애런스-밀리 지음, 김미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평점 :
마케팅 회사 '우먼 온라인(Women Online)'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인이자 팟캐스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저자는 <나는 혼자일 때 더 잘한다>(원제 HIDING IN THE BATHROOM '화장실에 숨기')를 통해 기존의 성공 신화에 소심한 반격을 가한다.
대부분 하루에 열몇 시간씩 일하면서 업계의 공룡이 되었다는 그런 신화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한 가지 트랙만을 뛸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단거리가, 누군가는 중장거리가, 누군가는 마라톤이 맞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현재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외향적인, 사교적인, 사무실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지가 중요한, 성공의 사이즈로만 평가하는 그런 약육강식, 무한 경쟁의 세계관이 지배한다. 저자는 이런 행동 양태를 '성취 포르노'라고 일갈한다.
이 같은 전투적 태도의 최종 목표는 경력의 도약, 립프로깅Leapfrogging이다. 성공의 계단을 최대한 높이 한번에 오르기 위해 사람들은 에너지를 단숨에 쏟아부어 결과를 만들어내려 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 기업가 셰릴 샌드버그가 쓴 <린인>은 이런 철학의 전방위 교과서 격인데, '더 노력하고 더 많은 일을 해내지 않으면 실패라는 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과 삶의 조합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저자는 '너무 린인하다가는 인생에서 꼬꾸라질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본인도 모르게 번 아웃할 수 있다는 거다.
"광범위한 인맥을 형성하고 성장률과 매출액을 한없이 늘려야 한다는 극심한 부담을 느끼다 탈진해서 일터를 떠나야만 하는 불행한 중역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라."(P 44)
"인생에는 직업 외에도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다."(P 50)
"성공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무언가 이뤄냈을 때 마침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식의 목표 달성 중심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프로테스탄트 노동관과 산업혁명을 가져온 칼뱅주의의 오랜 잔재다. 하지만 경력은 당신이란 존재의 한 요소일 뿐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경력 쌓기에만 집중하면 다른 기회들은 놓치게 된다."(P 60)
포모증후군 FOMO Syndrome - Fear of Missing Out
자신만 세상의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일종의 고립 공포감 - P 22
저자는 이런 현상의 배후로 포모증후군을 지적한다.
SNS의 발달로 세상 모든 일을 공유하다 보니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나가는 인생을 사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게 되고, 나는 주말에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데 팔로우하는 동료는 어디선가 폼 나는 세미나에 참석하는 내용을 공유하고... 뭐 이러다 보면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남과의 비교는 인간의 천성이니 이를 피할 순 없다. 그리고 비교 또한 자기보다 못한 걸 비교하기보다는, 항상 내가 못 가진 걸 비교하게 되니 좌절감에 빠지기 쉽다. 적당한 비교는 경쟁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만 지나친 비교는 역효과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다.

태생적으로 은둔형 내향인인 저자는 과거 원하지도 않는 외향인 비즈니스 우먼 행세를 했지만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이란 걸 체감하고 내향인들의 경전과도 같은 책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떠올린다.
결국 <나는 혼자일 때 더 잘한다>는 <콰이어트>의 사상적 기반 위에 저자의 실전 체험이 결합되어 같은 내향인들에게 실제적인 사업상 도움을 줄 수 있는 팁으로 무장한 책으로 완성되었다.
굳이 오만가지 사교 모임에 참석해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최소한의 영향력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원한다면 일주일에 며칠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과 개인생활의 양립을 꿈꾸는 게 저자의 지향점이다. SNS 같은 IT 기술의 발달도 내향인들에게는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여기에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도 많이 개발되고 성공자들도 나오고 있다.
이 길을 선택함으로써 잡지 표지에 얼굴이 실리는 정도의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내향인인 본인이 만족하는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니까.
이건 본인들의 선택일 뿐, 자신이 성공의 무한궤도에서 경쟁하겠다 하면 그대로 하면 될 일이다.
저자는 '결코 이렇게 하는 게 답이다'라는 주장은 펼치지 않는다.
'이런 삶의 방식도 있으니, 당신이 성공의 사다리에서 피곤함을 느끼고 지친 내향인이라면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니?' 정도 은근한 권유에 가깝다.
또 하나의 팁으로 '적합한 노력 appropriate effort'라는 개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항상 최선을 다하라는 문화적 기대와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무언가를 잘해내지만 지나치게 감정을 쏟아붓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이 개념을 대중화한 불교계의 스승, 샐리 켐튼은 적합한 노력은 분투까지는 아닌 노력이라고 설명한다."(P 58)
적당히 '대충주의'가 아니라, 중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숨을 돌릴 여유를 만들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앰으로써 온전히 일에만 몰입하고 그 과정을 음미하란 의미라고 한다. 매사에 완벽주의자거나 과잉성취자로 키워진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장 내 위계질서니 라인이니 회식 문화니 하는 조직 생활에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워라벨을 중시하는 내향인들에게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