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이달의 장르
가랑비메이커 외 20인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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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으로 나온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는 문장과장면들의 비정기 간행물 프로젝트 《이달의 장르》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달의 장르》는 매호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제한 없는 장르와 분량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데, 첫 시리즈(vol.1)의 주제는 '아버지'다.

이 시리즈는 다수의 필진이 참여하고, 그 형식 또한 인터뷰와 수필, 소설과 시, 일기, 사진과 그림 등 다양한 방식을 총동원해서 주제를 담아낸다. 한마디로 형식 불문!

책을 기획하고 출간한 '고준영의 딸' 고애라(가랑비메이커)가 전면에 나서기는 하지만, 21명의 필자들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들은 아니다. 개중에는 본인 이름의 책을 낸 분들도 있다는데 아마도 독립출판의 형식을 띤 모양인지 이름만으로 알만한 저자는 없다.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들 중 'one of them'이라고 봐도 되겠다. 글솜씨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표방하는 모양새다.

집에 있는 먼지 묻은 각자의 앨범을 펼쳐보기 바란다.

어릴 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진이 있다. 형제자매와 찍은 다수의 사진, 엄마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보이고, 어쩌다 간간이 거의 '로봇' 표정을 한 아빠가 나오는 인증샷 같은 가족사진도 보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이 없음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어릴 적 대부분 '나의 어린 시절'을 찍어 준 사람이 아빠였기에, 그는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사진밖에 존재하지만 늘 그림자처럼 함께였던 투명인간 같은 존재, 바로 아빠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헌신과 희생...


'아빠'로 불렸던 그도 이제 어깨는 좁아지고 머리숱은 빠진, 누군가의 보호자가 아닌 보호를 받아야 할 '아버지'가 되었다.

찬란했던 '아빠의 청춘'은 이미 지난 지 오래고, 이 글에서 아빠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는 자녀들 대부분이 당시 '아빠'의 나이가 되었고, 또 다른 자녀들의 '엄마'나 '아빠'가 되었다.

추측건대 대략 자녀들의 나이는 40대가 많은 듯 보이고, 아버지들의 나이는 60대가 대부분이고 많다고 해야 80대 초반이다.

생물학적으로 엄마는 아들 바보, 아빠는 딸 바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대부분 필자는 딸이다. 딸이 늙어가는 아빠를 바라보는 마음은 무뚝뚝한 아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애틋하다.


자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인 드문 경우가 있고, '절대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사연들은 대부분 이 중간 선상에 위치하는 이야기들이다.

어렸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빠의 모습이 이제, 자녀들이 어쩌다 어른이 되니 당신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하고, 때론 용서도 하고... 늙었지만 여전히, 언제나 돌아가 쉴 수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인 당신의 존재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을 접할 때 감정의 저지선이 무너질 거로 마음의 무장해제를 한 상태였는데, 의외로 그런 부분이 많지 않았다. 가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정도 그 이상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모든 아버지가 아직 생존 상태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고 추모하는 분위기와는 감정선이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곁에 있음에 감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흔한 말이지만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있을 때 잘해"

존재만으로 고맙고 힘이 되지만, 그 존재가 영원하진 않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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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맛 - 무엇이 당신의 독서를 가로막는가 5가지 맛으로 알아보는 인생 독서법
김경태 지음 / 프로방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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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리더(leader) 치고 엄청난 독서가(reader)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런 거 보면 '독서는 성공으로 가는 필수 조건'이란 가정은 누구도 반박하기 힘든 세상의 진리다.

나는 한 조직의 리더가 아니라고 피하려 들지 말자. 적어도 당신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리더 아니던가!

스마트폰이 현대인의 일상을 잠식하기 전에는 그래도 지하철에서 간간이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지금은 종이로 된 읽을거리를 읽는 이는 소수 종족이요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이다. 오죽 반가우면 누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무슨 책을 읽는지 유심히 살피게 된다.


<일년만 닥치고 독서>에 이은 김경태 작가의 두 번째 책은 역시 독서를 소재로 한 <독서의 맛>이다.

저자는 독서 3부작을 구상하며 <일년만 닥치고 독서>는 기초, 이번 책은 실전, 세 번째 나올 책은 심화 편으로 만들려고 계획했다 한다.

'독서의 맛'의 5미(味)는

"독(讀)한 맛 : 당신은 원래 책을 좋아합니다

색다른 맛 : 책에 로그인되셨습니다

행동하는 맛 : 닥치고 독서하라

묘한 맛 : 취하지 않으면 독서가 아니다

변하는 맛 : 단언컨대 독서입니다"

다섯 가지 맛의 차이는 크지 않다. 기승전 '독서'로 귀결될 뿐.

책을 좋아하는 독자는 책에 관련된, 책을 소재로 한 책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책이나 도서관 이야기, 독서론, 서평집...

<독서의 맛>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시종일관 독서를 권하고 독서의 세계로 어떻게든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독서 예찬론이자, 어떻게 하면 독서력을 올릴 수 있나 방법을 제시하는 실전 독서론이고, 지독한 독서의 과정을 통해 저자 스스로의 인생이 변했다고 고백하는 자기계발서다.

이미 나는 독서의 효용가치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고,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독서 중독자라면 <독서의 맛>을 읽는 재미는 덜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이 정도 수준의 고수라면 저자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경태 저자는 전업작가를 꿈꾸지만 아직은 삼성 계열사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투잡을 한다.

그는 늘 '독서법', 소설, 자기계발서 3종의 책을 가지고 다니며,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읽고 쓰는 자신만의 황금시간을 가진다. 책은 절대 깨끗하게 보지 않고 밑줄도 색깔 별로 긋고, 중요한 부분은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페이지를 접기도 하고, 필사까지 하며, 감명받은 책의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강의를 찾아 듣길 즐긴다.

향후 유학을 준비하며, 1년에 한 권씩은 책을 내고자 하는 야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삼성 그룹의 업무 강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쩌면 내 모든 에너지가 사무실에서 100% 소진될 수도 있지만, 대오각성의 깨달음을 얻은 저자는 회사 업무조차 본인의 자아 성장과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 활용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회사 따로, 개인의 성장 따로 이따위 이분법 사고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독서를 말하곤 했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더랬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재미라는 측면에서, 독서의 적은 너무 많다. 유튜브를 비롯한 동영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혹에 비하면 평면의 흰 종이 위에 펼쳐진 활자로 이루어진 책의 흥미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일단 영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이 그냥 눈으로 보는 순간 접수가 되지만, 책은 두뇌의 되새김질을 거쳐야 한다. 영상이 떠먹여 준다면, 책은 스스로 먹고 소화까지 시켜야 한다.

아직까지 '독서의 맛'을 모르는 독자들에겐 책을 가까이 하고픈 동기부여를, 일정 수준 이상의 독서 고수들에겐 단지 다독으로 그치지 말고 그 이상 선을 넘기를 자극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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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 -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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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es)는 제목만으로는 무슨 내용일지 감이 잘 안 오는 책이다.

이 책은 <타이거 마더>로 유명한,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에이미 추아의 2018 년작으로 그녀의 5번째 저서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저자의 남편은 <살인의 해석>을 쓴 제드 러벤펠드이고, 이들 부부는 <트리플 패키지>란 공저도 낸 바 있다.


"정치적 부족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부족 본능'이 있는데,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족적 정체성은 '국가'가 아니라 '인종, 민족, 지역, 종교, 분파' 등에 기반을 둔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우리가 남이가?' 정서를 기반으로 한 패거리 문화쯤 되려나!

"인간은 그저 조금 부족적인 게 아니라 아주 많이 부족적이며, 부족 본능은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왜곡한다." - P 57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부족이 고유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무언가를 가졌다고 믿고 싶어 한다. 이것이 부족적인 본능의 모든 것이다." - P 241

'정치적 부족주의'란 프레임으로 세계를 보면 많은 현상이 새롭게 보인다. 중국계이긴 하지만 저자 역시 미국인이기에 세계 도처에서 '세계의 경찰'을 자임한 미국이 왜 이렇게 헛발질을 했는지 납득할만한 설명이 이어진다. 미국의 군사·외교 관련자들에겐 필독서가 될 책이다.

미국의 눈으로 보면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베네수엘라는 그냥 하나의 국가일 뿐이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이 나라가 아시아에 붙었는지, 중동에 붙었는지 구분조차 어려울 수 있고, 베트남인이 아닌 그냥 일개 '동양인'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나라들에서 벌어진 문제들은 국가란 개념으로는 해석이 안 되고, 민족이나 종교, 인종 등 저자가 제안하는 '정치적 부족'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해답이 나온다.

미국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패배로 기록된 베트남전은 주로 공산화의 도미노를 막기 위해 미군이 개입했으나 땅굴전에 능숙한 베트콩을 당해낼 수 없었던 전쟁이자, 월남 패망 이후 수많은 '보트피플'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하지만 저자는 아직까지도 실패의 원인 진단이 부족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오늘날까지도 미국은 베트남전쟁이 왜 그렇게 잘못 돌아가게 됐는지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배한 핵심 원인은 베트남의 민족(국가)주의가 가진 '민족적인' 속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 P 54

베트남, 특히 남부는 '시장 지배적 소수 민족'인 화교가 경제를 장악하고 있었고 오랜 기간 일반 민중과 소수 화교의 반목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지원한 남베트남은 애당초 다수 인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구조였기에 시작부터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인 거다.

"요컨대,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의 정권은 남베트남 사람들더러 화교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부의 형제들을 죽이라고 요구하는 셈이었다." - P 71

역사적으로 중국,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나 독립의 의지를 놓은 바 없는 강인한 베트남의 투쟁력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분명 미국의 입장에서 놓친 부분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보트피플'도 대부분 일반 국민이 아니라 기득권을 잃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화교였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베트남전을 다룬 두꺼운 책에서도 접하지 못하는 통찰력을 이 책의 2장 "베트남 : '별 볼 일 없는 작은 나라'에 패배를 선언하다"는 제공한다.

베트남뿐 아니라 이 책에서 개별 국가로 예를 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베네수엘라, 미국 모두 '정치적 부족주의'란 프레임이면 많은 현상이 보다 정확하게 이해가 된다. 마치 고차 방정식을 푸는 새로운 마스터키가 생긴 듯하다.

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는 미국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는지, 탈레반, 알카에다, ISIS는 어떤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서구의 시각에서 '테러리스트'에 불과한 이들 전사들이 그곳에서는 '힙'하고 '쿨'한 이미지로 소비되는지, 왜 알카에다와 ISIS는 서로 경쟁 관계가 되었는지, 시아파와 수니파의 오랜 반목의 원인은 무엇인지, 미국 눈에 가시 같은 존재 우고 차베스는 어떻게 베네수엘라의 국민 영웅으로 아직도 추앙받고 있는지...

오사나 빈 라덴이나 차베스는 정치적 부족주의의 달인이었다.

"극단주의를 파악하는 데서 핵심은 빈곤 자체가 아니라 집단 간 불평등이다." - P 144


전 세계 지식인들의 예상과 희망을 뒤엎고 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일목요연한 설명이 이어진다.

인구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백인들은 불안하다. 언제부터인가 흑인은 물론, 넘쳐나는 아시아, 남미인들로 인해 유색 인종, 이민자가 다수인 사회가 되어 가는 분위기인지라 심지어 백인이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는 의견마저 나온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젠 미국의 백인들은 두 개의 부족으로 분열돼 있는데, 하나는 소득 수준이 높은 고학력자, 전통 인텔리 계층인 WASP의 적자들로 주로 도시/연안 지역에 거주하며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다.

다른 부족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계급으로 '러스트 벨트'를 비롯한 중서부나 농촌 지역에 거주하며 상대적인 박탈감이 심하고 그 분풀이로 인종차별적인 경향마저 보이며, 앞에 언급한 인텔리 부족에 비해 수적으로 훨씬 다수다.

트럼프의 당선은 이들 노동자 계층 백인들이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트럼프를 택한 결과다.

우리 모두가 목격하고 있듯이 트럼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개인이 제정신이 아닌 것은 드물 일이지만

집단은 제정신이 아닌 게 정상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P 128


오늘날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전 지구적 평화와 번영은 커녕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인종 분쟁이 확산됐고 민족주의, 근본주의, 반미주의의 강도가 높아졌으며 징발, 축출, 재민족화 요규 등이 벌어졌고,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 본 적이 없는 규모의 인종 학살도 두 번이나 있었고, 진주만 공격 이래로 미국 본토에 대해 벌어진 가장 큰 공격이 있었다." - P 125

이 책을 읽으니 그나마 아직까지 단일민족 신화가 굳건히 유지되는 한국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보수니 진보니 하는 갈등이 있지만 <정치적 부족주의>에 등장한 나라들의 사례에 비한다면 애교 수준이다.

좋은 책이란 모름지기 기존 지식의 얼음을 깨는 지적 쾌감을 선사하거나, 아니면 책을 읽은 이후 작으나마 행동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에이미 추아 교수가 신뢰할만한 저자임을 재차 입증하는 <정치적 부족주의>는 전자의 예에 해당하는 탁월한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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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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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 엄니 김수미의 인생 상담이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연재된 <시방 상담소>에 소개된 속 답답한 다양한 사연에, 김수미는 특유의 쌍욕으로 응답하는 욕쟁이 고민 상담가로 활약했는데 그게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상담 연령은 10대에서 40대에 걸쳐 있고, 크게 내용은 "나 / 일 / 가족 / 인간관계 / 돈 / 남과 여" 6개로 구분되어 있다.

 

브라운관은 물론 때때로 스크린에서도 인상적인 연기 활동을 해왔고, 맛깔난 음식 솜씨로 관련 사업을 펼치기도 하고, 몇 권의 책도 낸 팔방미인 김수미는 큰 굴곡이 없는 인생을 살아, 별다른 고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도 과거 돈 문제로 고생을 했던 적이 있고, 젊은 시절 외박이 잦고 바람을 피운 적 있는 남편에다 속 썩이는 아들도 있었다니 역시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장관도, 대통령도, 재벌가 사람들이라고 고민이 없을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최소한 가족 중 한 명은 골칫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 가정이 있다면 그 가족은 정말 복받은 가정일 테고.

다양한 상담 사례를 보니 어떤 것은 '뭐 이런 걸로 고민하나' 하는 것도 있고, '나도 이런 고민했었지'하는 내용도 보인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할 수밖에 없지 않나.

거기에 대한 김수미의 답변은 약간의 욕설이 포함된 시원시원한 돌직구다.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맛집에 가서 지청구를 청해 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71세를 살아 인생 공중파, 지상파, 산전수전 공중전, 육해공군 다 겪었다는 저자의 연륜과 번뜩이는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데, 대부분은 '간단한 게 최고'(Simple is the best)로 파악된다. 오래 묵혀서 좋은 고민은 없다. 바로바로 해소되지 않는 고민거리는 암세포로 변할 확률이 높다.

이래저래 고민하지 말고 인생 직진, 정면돌파의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견지할 것!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는 나이 드신 분들은 '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데, 그 당시에는 왜 그리 그 일에 그렇게 온 마음을 빼앗겼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무조건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라는 철학으로 세월이 약인 건 분명 아니겠지만, 당시 죽을 만큼 괴로웠던 일도 지나고 보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깨치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터널을 지날 때 가장 어두운 순간은 출구가 나오기 바로 직전이라고 하지 않나.

인생만사 어둠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버티면 희망의 빛을 만나게 된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신께서는 인간이 견딜 만한 고통을 주시지

그냥 아파 죽을 고통은 주시지 않는다." - P 288

 

가족이든 친구든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토로하고, 고민을 함께 나누어 볼 만한 멘토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운아일 게다. 마땅히 그런 멘토가 없다면, 시시때때로 이 책의 여섯 개 챕터를 들춰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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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일을 냅니다 -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이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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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구도심 을지로에 수상한 가게가 생겼다.

인쇄소를 비롯한 타일, 아크릴같이 요즘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업종이 중심인 이곳의 막다른 골목 2층에 소주나 맥주가 아닌, 용감하게 '와인 바'를 차린 사람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이다.

'아로파 Aropa'는 나눔과 협동의 가치를 아우르는 단어로 남태평양 아누타라는 섬에서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단어라고 한다.(이 단어는 하와이로 넘어가서 아예 인사말이 됐다. 알로하~)

이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사람들이 경제공동체 청년아로파를 만들었고, 그들의 첫 결과물이 바로 을지로 와인바 '십분의일'이고, <십분의 일을 냅니다>(이하 <십분의일>)는 십분의일 초대 사장인 이현우가 그 과정에 대해 쓴 책이다.

 

청년아로파의 운영 방침은 이렇다.

기존 멤버 중 새 멤버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총회에서 신규 멤버를 추천하고 기존 멤버의 만장일치로 선발 여부가 결정된다. 만장일치인지라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멤버 영입이 안 된다.

십분의일은 멤버가 열 명이라 십시일반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멤버라면 월급의 10%를 회비로 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멤버의 숫자와는 무관하다.

본인 소득(기본급)의 10% 회비는

- 회사원 : 매년 한 번 월급명세서 공개

- 프리랜서 : 최근 3개월 소득의 평균

- 백수 : 최소 회비 10만 원

이런 거룩한 규칙으로 갹출되며, 전업으로 일하는 사업장 대표에게 이 돈의 일부가 고정급으로 지급되는 구조다.

정관에 근거하여 움직이고, 주요 사항은 매월 총회를 거쳐 결정되며 각자 적절한 임무를 부여받고 순번에 따라 가게에 나와 시시때때로 일을 돕는다. 전업인 사업장 대표 1명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직업이 있는 멤버들이고, 이익공동체이긴 하지만 이들의 느슨한 연대는 기존의 틀로는 정의되지 않는다. 가장 흡사한 형태가 협동조합인 듯하지만 그와도 다르다.

2인이 하는 동업도 힘들다는데 '이런 식의 운영이 가능할까, 수익은 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은 성업 중이고, 이후 '빈집 ; 비어있는 집'(와인 바), '아무렴 제주'(게스트 하우스), '밑술'(양조장)로 총 4개의 사업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저자 이현우의 전직은 드라마 피디였단다. 그래서인지 그가 쓴 이 책은 일단 재미있고 맛있게 읽힌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고, 몇몇 에피소드에는 작은 후일담까지 배치해 놓아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2016년 10월 가오픈을 하고, 장사가 잘 될까 고민한다.

'과연 내년에도 여기서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2019. 10. 22.

3년째 여기서 맞이하고 있다.

감사하고 지겹다.

내년엔 다른 데 가야지.」 - P 159

저자가 그랬듯, 십분의일 멤버들이 그랬듯 대부분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직장 생활을 하면 작게라도 내 사업을 하는 꿈을 꾸고, 자영업을 하다 보면 코로나19와 관계없이 또박또박 급여가 나오는 봉급쟁이 생활이 그리운 법이다.

많은 독자들은 <십분의일>을 읽으며 자극받고 '나도 주위 지인, 친구들과 한 번 도전해 봐?'하는 생각이 들 거 같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전업이 아니라면 급여의 1/10만 내고 그래도 내 가게니 하는 생색도 낼 수 있고, 고단한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도 만들고... 손해만 안 보면 할 만하지 않을까!

망해봐야 1/10이고, 그래도 10명이 홍보 영업하고 함께 머리 맞대면 낫지 않겠는가.

당장 추리소설을 함께 읽는 모임 멤버들과 북 카페 모델에 적용해 보고 싶을 지경이다.

저자는 식욕, 성욕 다음으로 인간의 세 번째 욕망은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무리 짓고 싶은 욕구'를 꼽는다고 한다. 본인의 성향이 여기에 부합하는지, 십분의일 모델에 도전하기 앞서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할 점검사항이다.

저자는 비교적 낭만적으로 청년아로파의 결성과 십분의일의 안착을 그려 냈지만 그게 그리 수월한 일만은 아니었을 거다. 비가 새서 물을 받아야 하는 가게를 낭만으로 볼지 궁상으로 볼지는 당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십분의일은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사업 모델이 확장하고 있기에 이런 책도 나오게 되었다.

과정이 아름다운 데다 결과마저 기대 이상인 이런 미담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좋은 책은 읽고 나서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낸다.

일단은 힙지로에 위치한 스웩 넘치는 '십분의일'을 방문해 보자. 그래서 시그니처 메뉴라는 '짜파게티 그리고 계란 치즈'에다 와인 한 잔하고, 혹시 사장님인 저자가 있다면 책 잘 읽었다고 수줍게 사인도 요청해 보고... 이단은 그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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