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이달의 장르
가랑비메이커 외 20인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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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독립출판으로 나온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는 문장과장면들의 비정기 간행물 프로젝트 《이달의 장르》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달의 장르》는 매호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제한 없는 장르와 분량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데, 첫 시리즈(vol.1)의 주제는 '아버지'다.

이 시리즈는 다수의 필진이 참여하고, 그 형식 또한 인터뷰와 수필, 소설과 시, 일기, 사진과 그림 등 다양한 방식을 총동원해서 주제를 담아낸다. 한마디로 형식 불문!

책을 기획하고 출간한 '고준영의 딸' 고애라(가랑비메이커)가 전면에 나서기는 하지만, 21명의 필자들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들은 아니다. 개중에는 본인 이름의 책을 낸 분들도 있다는데 아마도 독립출판의 형식을 띤 모양인지 이름만으로 알만한 저자는 없다.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들 중 'one of them'이라고 봐도 되겠다. 글솜씨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표방하는 모양새다.

집에 있는 먼지 묻은 각자의 앨범을 펼쳐보기 바란다.

어릴 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진이 있다. 형제자매와 찍은 다수의 사진, 엄마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보이고, 어쩌다 간간이 거의 '로봇' 표정을 한 아빠가 나오는 인증샷 같은 가족사진도 보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이 없음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어릴 적 대부분 '나의 어린 시절'을 찍어 준 사람이 아빠였기에, 그는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사진밖에 존재하지만 늘 그림자처럼 함께였던 투명인간 같은 존재, 바로 아빠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헌신과 희생...


'아빠'로 불렸던 그도 이제 어깨는 좁아지고 머리숱은 빠진, 누군가의 보호자가 아닌 보호를 받아야 할 '아버지'가 되었다.

찬란했던 '아빠의 청춘'은 이미 지난 지 오래고, 이 글에서 아빠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는 자녀들 대부분이 당시 '아빠'의 나이가 되었고, 또 다른 자녀들의 '엄마'나 '아빠'가 되었다.

추측건대 대략 자녀들의 나이는 40대가 많은 듯 보이고, 아버지들의 나이는 60대가 대부분이고 많다고 해야 80대 초반이다.

생물학적으로 엄마는 아들 바보, 아빠는 딸 바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대부분 필자는 딸이다. 딸이 늙어가는 아빠를 바라보는 마음은 무뚝뚝한 아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애틋하다.


자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인 드문 경우가 있고, '절대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사연들은 대부분 이 중간 선상에 위치하는 이야기들이다.

어렸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빠의 모습이 이제, 자녀들이 어쩌다 어른이 되니 당신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하고, 때론 용서도 하고... 늙었지만 여전히, 언제나 돌아가 쉴 수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인 당신의 존재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을 접할 때 감정의 저지선이 무너질 거로 마음의 무장해제를 한 상태였는데, 의외로 그런 부분이 많지 않았다. 가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정도 그 이상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모든 아버지가 아직 생존 상태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고 추모하는 분위기와는 감정선이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곁에 있음에 감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흔한 말이지만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있을 때 잘해"

존재만으로 고맙고 힘이 되지만, 그 존재가 영원하진 않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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