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팅 하이 getting high - 영원을 노래하는 밴드, 오아시스
파올로 휴이트 지음, 백지선 옮김 / 컴인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아시스는 90년대 브릿팝을 대표하는 맨체스터 출신 영국 밴드다. 데뷔 당시 영국 언론이 '제2의 섹스 피스톨즈'로 수식했던 오아시스는 결국 '제2의 비틀스'로 판명되었다. 그 어떤 밴드도 감히 비틀스와 비교되진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생각해 본다면, 오아시스의 위상을 간략히 정리하는 수식이라 하겠다.

오아시스는 94년도에 데뷔했고 2009년도에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악명 높은 갤러거 형제의 불화에 비하면 15년이란 예상을 뛰어넘는 활동 기간과 8장의 공식 앨범을 남겼다. 그들은 할 만큼 했다.

* 브릿팝 ☞ 1990년대에 등장한 밝고 경쾌한 복고풍의 영국 로큰롤 음악 (P 175)

대중음악 평론가로 노엘 갤러거와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파올로 휴이트가 쓴 <게팅 하이>는 오아시스 연대기가 아니다. 94년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로 출발, 그들 최고의 명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95)를 발표하고 다음 앨범 작업을 준비하는 1994~1996년 3년간의 '가장 결정적인' 시기를 집중 다룬다. 이 시기는 오아시스의 탄생인 동시에 전성기였기에 오히려 집중도가 높은 효과적인 집필 방식이다.

"2집의 제목은 미국에 있을 때 어떤 여자가 노엘에게 전화를 걸어 맨 처음 한 인사말이었다. 사실 이 말은 미국 고교생들이 매년 무대에 올리는 <바이 바이 버디 Bye Bye Birdie>라는 뮤지컬의 주요 곡인 <The Telephone Hour>에 나오는 가사로 미국의 학생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었다." - P 480

"노엘은 자신의 1~2집 앨범이 팝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는 말까지 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비틀스조차도 1~2집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노엘은 작지만 중요한 문제 하나를 고려하지 않았다. 노엘은 참고할 25년 역사의 팝 음악이 있었지만 비틀스는 없었다." - P 565

데뷔와 동시에 영국 음악계는 물론 세계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공룡 밴드 오아시스의 하루도 조용하게 지나가지 않는 '술과 마약의 나날들' 평지풍파가 숙취와 약 기운까지 느껴질 정도로 묘사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오아시스는 5인조 록밴드다. 하지만 [오아시스 = 갤러거 형제]로 정의되어 왔고 이는 이 책을 통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아시스 음악의 핵심은 노엘 갤러거가 쥐고 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독설가 노엘은 명곡 자판기일 뿐 아니라 보컬 욕심까지 숨기지 않는 오아시스의 브레인이고, 존 레논의 영혼이 자기 몸으로 들어왔다고 믿는 괴팍한 싸가지,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 리암은 보컬을 담당하는 오아시스의 프런트맨, 얼굴마담이요 섹스 심벌이고, 타고난 록스타가 갖춰야 할 덕목인 종잡을 수 없는 천방지축 기행, 예민한 감수성으로 과대포장되곤 하는 지랄맞은 성격을 갖췄다.(활자 읽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뭔가 꾸준히 배우길 질겁하는 그가 그래서 선택한 게 보컬이었다고)

나머지 멤버들은? 아쉽지만 '갤러거 형제와 아이들'이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위치에 불만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이 먼저 '레인'이란 비틀스 곡에서 이름을 딴 밴드를 결성해 있었고, 거기에 리암이 합류하면서 오아시스란 이름을 제안했고, 마지막으로 노엘이 합류하면서 클럽 밴드에서 국민밴드로 용이 된다.

비틀스(폴 매카트니), 폴 웰러, 버트 바카락 등 노엘에게 영향을 준 영웅들, 맨체스터 시티를 향한 무한 애정, 쇠락해가는 맨체스터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출신 성분, 창립 멤버지만 실력 향상을 위한 노력이나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퇴출된 드러머 토니 맥캐롤과의 악연, 당대의 라이벌 '중산층 대학생으로 구성된 밴드' 블러와의 혈전, 폭력을 휘두르고 가정에 소홀했던 아버지 갤러거와 늘 형제를 지키고 오랫동안 리암과 함께 살았던 어머니 페기(록스타가 엄마랑 살다니...), 나머지 잔여 멤버들(!), 술과 마약(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있진 않으나 그루피들과의 섹스)으로 위태위태했고 실제 크고 작은 사건으로 점철된 공연과 방송 인터뷰 등등. 그리고 이 모든 걸 뒤덮는 상위 변수, 주먹다짐은 물론 팀 이탈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갤러거 형제의 기 싸움.


"리암은 이런 건방진 태도를 아주 좋아했다. 마음에 안 들면 대놓고 욕하는 태도 말이다. 오아시스는 이런 태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밴드였다." - P 110

"그리고 이 긴장감의 중심에는 리암이 있다. 관객은 리암의 충동적인 성격과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익숙했다. 리암과 노엘의 관계가 얼마나 격동적인지도 잘 안다. 노엘과 리암이 무대 위에서 부딪칠수록 둘의 불꽃 튀는 시너지는 배가됐다." - P 156

"놀랍게도 그의 아버지 토마스는 리암을 애지중지했다. 노엘이나 폴과 다르게 리암은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이 한 번밖에 없다.(중략)

아버지의 편애는 노엘에게 상처가 됐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유명인 중에서도 노엘과 리암의 관계가 유독 복잡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 P 237~238

"노엘은 무엇보다도 음악이 중요했다. 음악 없이는 오아시스는 물론이고 그 어떤 밴드도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리암에게는 반항적인 태도가 담기지 않은 음악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핵심은 반항 정신이었다. 반항 정신이 없이 음악을 하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처럼 될 거라고 했다." - P 369~370

"이 사진들에서 드러나듯, 오아시스는 축구 경기장에서 성장한 밴드이자 축구를 음악만큼 중시한 1990년대 최초의 밴드였다.

최다 관객 기록을 갱신하고 대중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곡을 쓰며 백만장자가 될 노엘 갤러거에게 인생 최고의 날을 고르라면, 아마 주저하지 않고 1989년 엑스터시에 취한 맨시티의 팬들과 함께 키팍스 스탠드에서 맨시티가 맨유를 5-1로 이기는 모습을 지켜본 날을 고를 것이다." - P 378~379

"그즈음 세상은 오아시스 편과 블러 편 둘로 양분된 듯 보였다. 축구에서는 칸토나(오아시스)와 시어러(블러)로, 스누커에서는 로니 오설리번(오아시스)과 스티븐 헨드리(블러)로 편이 갈라졌다.

가장 알맞은 예시로는 당시 엄청난 속도로 팔린 어빈 웰시의 소설 <트레인스포팅>이었다. 영국의 노동 계급 출신의 작가가 자신의 뿌리와 1990년대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콧대 높은 문단을 박살낸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어빈의 세계관이 오아시스와 같다면, <피버 피치>와 <하이 피델리티>로 출판계에 파란을 일으킨 또 다른 작가인 닉 혼비는 블러와 같았다." - P 539

"1990년대는 1960년대와 비슷했다.(중략)

쾌락주의와 마약, 모드족, 스쿠터, 비틀스 등 1960년대를 대표하는 요소들은 1990년대 팝 문화의 근간이 됐다.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경제였다. 1960년대의 십 대들은 대부분 가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영국 사회는 이미 커진 빈부 격차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 P 540~541

"어릴 때 리암과 두 형은 어머니를 아버지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매번 종교가 어머니의 발목을 잡았다. 그 때문에 세 형제는 더 오랫동안 폭력과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리암은 공격성으로 분노를 표출했고 노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으로 아버지에게 맞섰다. 그 수단은 바로 음악이었다.(중략)

오아시스의 성공은 곧 아버지를 향한 노엘의 복수였고, 복수심은 노엘이 끊임없이 곡을 쓰게 한 원동력이었다. 갤러거 형제의 구세주는 종교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음악은 훨씬 더 나은 세계로 형제를 안내했다. 형제는 다른 무엇도 아닌 음악에서 천국과 구원을 찾았다." - P 544

하지만 어쨌거나 무대 위에 오르면 그들의 마법은 시작되었고 누구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And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we're walking on by

Her soul slides away

But don't look back in anger

I heard you say

세상에! 누가 여기서 떼창을 안 할 수가 있나?

90년대에 가장 높이 비상했던 밴드, 오아시스!

천재는 단 하나의 마스터피스로 말한다면, 오아시스는 'Don't Look Back In Anger', 'Wonderwall', 'Champagne Supernova', 'Some Might Say'가 한 장에 담긴, 영국 역대 판매 레코드 순위 3위에 등재되어 영국 4가구당 1가구가 집에 있다는 90년대 브릿팝을 소환할 때 가장 먼저 언급돼야 할 명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남겼다.

갤러거 형제는 각자 그들의 구원인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앨범으로 그들은 영원불멸이다.

스톤 로지스만큼 성공하면 소원이 없겠다던 그들의 성공 신화는 거의 비틀스에 근접했다.

그저 그런 환경에서 기타를 치고 밴드를 결성한 맨체스터의 아이들이 어디 한둘이었겠냐마는 신은 신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 갤러거 형제에게 '빌어먹게 좋은' 운 이상의 재능을 선사했다. <게팅 하이>는 그 찬란한 기록이다.


"바로 옆에는 끝까지 함께 할 앨런 화이트와 귁시, 본헤드가 있다. 모두 노엘이 또 다른 곡을 연주하길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노엘과 영원히 묶여 있을 동생 리암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리암만 있었다면 오아시스는 영영 데뷔하지 못하고 자멸했을 것이다. 노엘만 있었다면 오아시스는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오아시스가 내린 결론이자, 갤러거 형제가 지금까지도 오아시스의 영혼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이유다. 애증과 신뢰와 존경으로 얽힌 두 사람은 앞으로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 Epilogue, P 6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스티튜트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더운 장마철, '킹 오브 킹' 스티븐 킹의 따끈따끈한 신작 <인스티튜트>다.

10대를 다룬 킹의 작품들은 대부분 걸작들이었다. <그것>, <스탠 바이 미>, <옥수수밭의 아이들>...

게다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TP(텔레파시)와 TK(염력)의 능력자들이다. 그렇다면 이건 바로 킹의 데뷔작 <캐리>를 연상하게 하는 설정이다. 그간의 학습 효과로 볼 때 이번 작품은 다소 실망스러웠던 전작 <잠자는 미녀들>과 달리 기대를 해봄직하다. 10대 소년의 TK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12살 천재 소년 루크 앨리스는 MIT와 에머슨 대학 2군데서 모두 입학을 바랄 정도의 영재다. 어느 날 갑자기 괴한들이 침입하여 부모를 살해하고 루크는 비밀시설 '인스티튜트'로 납치된다. 그곳에는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데 과연 인스티튜트의 목적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걸 빼앗기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여기서 무기로 개조되고 거기로 가서 남는 게 없을 때까지 쓰임을 당했다. 그런 다음 뒤 건물의 뒤편으로 넘어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는 대열에 합류하는데... 그것의 정체는 뭔지 알 수 없었다." - P 358

처음엔 인스티튜트는 불법 기관인지 알았다. 자녀를 차출하겠다는 정식 요청 없이 무자비하게 부모를 죽였으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 시설이 오랫동안 운영되어왔고, 적지 않은 기부금으로 운영이 된다는 점에서 국가 공인기관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선 이토록 오랜 기간 이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탈 없이 지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다소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떡잎부터 다른 TP와 TK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납치해서 결국 초능력 공격대로 만들어 장기판의 졸처럼 쓰고 버리는 게 시설의 미션인데 도대체 왜? 자세한 이야기는 2편에서 밝혀지겠다.

루크를 비롯한 아이들은 시설에서 여러 테스트를 받고 TP냐 TK냐 분류 작업을 거치고, 각자 지닌 능력의 레벨을 평가받는다. 오래된 아이들은 테스트가 끝나면 다른 건물로 사라지고 그 이후 복귀는 없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인권은 개뿔도 보호받지 못하고 그냥 임상실험 대상일 뿐이다. 결국 루크는 어느새 최고참이 되고 시설을 탈출하면서 1편은 끝난다. 탈출 과정은 의외로 간단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삽을 준비한다 → 삽 손잡이가 부러질 정도로 철책 아래 열심히 삽질을 한다. → 소년의 몸이 빠져 나갈만큼 파진 공간으로 철책을 통과한다.

작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넣은 부분이겠으나, 시설에 함께 수용된 아이들을 알아가고 일련의 시험을 거치는 과정이 다소 지루했다. 기억하자. 우린 분량 대마왕 킹의 작품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도 이번 책은 2권으로 끝나지 않나.

문체에도 시나브로 필자의 나이가 묻어날 수밖에 없으나, 다행히 킹은 아직 킹 '옹'(翁)의 낌새는 없다.

늘 킹의 작품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 이번 소설에서도 몇 개의 경구가 보인다.

"이런 식으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누구라도 알다시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영양가가 없기 마련이다." - P 44

"누가 내 말 믿으라고 하면 대개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 P 199

"그의 뒤에서 칼리샤와 아이리스가 똑같이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애라더니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P 206

2편에서 부모 잃은 루크의 천재성이 복수심으로 전환되어 시설 관계자들에게 빅 엿을 먹이고 친구들을 구하는 서사가 그려진다. 더불어 시설의 정체와 그간의 악행 또한 만천하에 드러날 거고, 그 와중에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한 야경꾼 팀 제이미슨은 역할을 부여받을 것이다. 12살 천재의 가족과 존엄을 파괴한 대가는 처절한 응징을 필요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화의 종말 - 하버드 의대 수명 혁명 프로젝트
데이비드 A. 싱클레어.매슈 D. 러플랜트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로불사(不老不死)를 꿈꾸는 인류에게 복음서가 될 강력한 책이다.

누구나 나이 들면 기력이 약해지고, 병원과는 거리가 먼 건강한 삶을 영위했다고 자위하다가도 평생 써야 할 의료비의 대부분을 죽기 전 10년간 쓰고 사망하는 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라이프 사이클이다.

세계 최고의 노화 연구 전문가인 데이비드 A. 싱클레어의 <노화의 종말>(원제 Lifespan)은 이런 당신의 선입견(!)에 반기를 든다. '노화와 장수 연구계의 록 스타'인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에 따르면 노화는 정상이 아니라 '질병'이며, 그 질병은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화는 늦추고, 멈추고, 심지어 되돌리기까지 할 수 있다!"


저자는 SF 작가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노화 생물학 권위자로 학계는 물론 본인의 이론을 의학계를 비롯한 관련 산업계와도 밀접하게 접목하고 있는 인물이기에 콧방귀를 뀌고 넘어가진 못한다. 믿을만하다!

저자는 이 책의 구성을 우리가 아는 것(과거),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곳(미래)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노화 연구의 변천사를 시대순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미래 편을 읽으면 이건 거의 미래 예측서에 가깝다.

하버드 연구실 교수인 데이비드 A. 싱클레어와 저널리즘 작가이자 교수인 매슈 D. 러플랜트와 함께 쓴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연구 과정과 결과를 일반인의 눈높이에 최대한 맞춰 풀어쓴 내용들이다. 물론 외계인의 암호 해독을 하는 듯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으나, 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노화에 대해서 과거에도 연구가 있었지만, 괄목할만한 현재의 성과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미래의 장수 사회를 약속한다고.

저자는 자신감이 넘친다.

"현재의 노화 연구는 1960년대의 암 연구와 비슷한 단계에 있다... (중략) 전체적으로 볼 때 노화는 치료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암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다." - P 52~53

"우리는 노화의 증상들을 한꺼번에 없앨 수 있다. 이 질병은 치료할 수 있다." - P 167

"전 세계에서 탁월한 연구자들이 만병의 어머니인 노화를 치료하려는 전투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 P 436


624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책값도 2만 원을 넘는다.

분량이 많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본문은 500여 쪽이고 나머지는 감사의 말, 인물 소개, 용어 설명 등이고 나머지는 미주와 찾아보기다. 인류의 미래와 자신의 노후에 대해 최고 석학이 설명을 하는데 이 정도 인내심은 필요하다.

아마도 저자는 그간의 연구 성과를 일반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고픈 욕망이 컸던 거 같다. 마치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 백스테이지를 탐방하는 것처럼, 작심하고 많은 내용을 속속들이 공개하는데 데이비드 교수는 이를 '노화의 정보 이론 Information Theory of Aging'으로 명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노화 연구의 최전선이다.

아직까지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 그렇지 현대 의학의 발달은 놀라운 단계에 진입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Barbra Streisand는 털이 곱슬곱슬한 코든드툴리어 품종인 반려견 새미를 잃자 복제했다. 세미는 죽을 때 14세였다." - P 284

"좀 온건하게 표현하자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흥미롭다. 몸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세포를 고치고 가장 재생하기 어려운 세포를 재생할 수 있다면, 몸이 필요로 하는 다른 모든 유형의 세포들 또한 재생하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다. 이 말은 막 다친 척수를 고칠 수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늙어 가면서 손상된 몸의 다른 모든 조직을 재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간에서 콩팥에 이르기까지, 심장에서 뇌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을 말이다. 그 어떤 세포든 불가능하지 않다." - P 301

실제로 저자의 아버지는 훌륭한 아들 덕에, 저자가 처방해 준 메트포르민과 NMN을 복용하고 80세지만 등산을 하고, 몇 시간씩 운전을 끄떡 없이 하며 호주와 미국을 거리낌 없이 여행하는 인생을 산다. 그게 복용하는 약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저자는 이런저런 생체표지추적(우리 몸의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건강 상태를 쉽게 체크하고 신체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한다. 50대지만 신체 나이는 여전히 젊다.

굳이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는 불운한 자들의 기약 없는 장기 기증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3D 프린터를 이용한 인공 장기 연구도 박차를 가하고 있단다. 흥분된다.

지금이야 아직 연구 개발 단계라 상용화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로 다가온다.

신뢰할 수 있는 저자의 이론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화 방지와 수명 연장은 어느 정도 손에 잡힐 듯하다.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결과물들이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석학들이 생로병사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니 플러스될 좋은 일들만 있지 않을까. 지금은 가끔 100세 이상 장수하는 분들이 뉴스가 되지만, 몇 십 년 후에는 120세 정도 사는 경우는 평균값일 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문제는 윤리와 환경이다.

'그렇게 오래 사는 게 모두에게 축복일까? 혹시 자연적인 한살이에 도전하는,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은 아닐까? 그런 세상이 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죽음이 오는 건지? 죽긴 죽는 건가...

지금 현재도 많은 인구로 인한 여러 문제로 지구는 고통받는데, 자연 감소가 없다면 지구는 버텨줄 수 있는지?'

저자도 이런 고민을 책에서 토로한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강한 긍정을 한다. 자신은 증손자, 고손자를 보고 싶으며 아버지도 오래 본인 곁에 머물기를 바란다고. 과학자로서 그는 자신의 할 일을 하고 나머지는 인류가 집단지성으로 길을 찾을 것이라고.

"모든 종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에 가용 자원을 번식이나 수명 중 어느 한쪽에 할당하도록 진화해 왔다. 양쪽에 다 투자할 수는 없다... (중략) 한 종만 빼고.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 P 55

이 어려운 일은 전문가들에게 맡기자. 나중에 혜택을 받으면 감사하고, 우린 그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다행히 '4장 건강하게 장수하는 법'에 나와 있다. 물론 다 아는 얘기다. 실천이 안 돼서 그렇지.

- 육식, 폭식, 간식, 과식, 야식 〈 절식, 단식, 소식

- 땀을 흘리고 몸을 차갑게 하라.

역시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아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가 새롭게 선보이는 경장편 시리즈, '젊은 문학의 새로운 발견' 소설 Q의 일곱 번째 작품 <신라 공주 해적전>이다. 사전 서평단 모집 안내에는 <신라 공주 해적단>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받은 가제본에는 <해적전>이라고 되어 있다. 아무래도 출간된 가제본 제목이 맞겠지?

서평단을 모집하면서도, 가제본을 받고 나서도 작가는 비공개다. 가제본의 어디에도 작가의 이름은 없다.

책을 읽으면서 <체공녀 강주룡>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여장부의 일대기에다 복고풍의 말투를 곰살맞게 다룬다는 점이 빼다 박은 듯 느껴지는데 그 작가 이름은 박서련이다.

통일 신라시대, 어릴 때부터 장보고의 무리에 끼어 세상 풍파를 겪은 여걸 장희와 백면서생 스타일의 한수생의 모험담이 호쾌하게 펼쳐진다. 우연히 백제의 부활을 도모하는 사람들을 만나, 왕가의 후손 풍 태자가 숨겨 놨다는 보물을 찾는 '보물섬' 이야기가 200쪽이 안 되는 분량에 종횡무진 전개된다.

세상 물정 모르고 남자지만 완력과는 거리가 먼 어수룩한 한수생이 위기에 닥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그를 구해내는 장희의 임기응변 활약상이 놀랍기만 하다. 장희는 기본적으로 입담이 센데, 그녀의 '혼이 담긴 구라'는 상대가 누구라도 굴복시키고야 만다. 소설은 장희의 간교한(!) 말발이 처음이자 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계 없는 상상력으로 묘사하여 꿀잼을 선사한 작가의 글솜씨는 실로 신묘한 경지다. 시대에 맞춰 의도적으로 고문체(古文體)를 사용할 수밖에 없으나, 이 또한 별다른 어색함이 없다.

분량이 너무 짧은 게 아쉬울 정도다. 이야기가 '끝없이'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더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어느 한적한 시골, 놀러 온 손자에게 호롱불 아래서 할머니가 이런 옛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지금도 어디선가.

<신라 공주 해적전>은 끝나지 않았으면 싶은 스토리텔링의 마법을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히는 고속도로. 앞차의 뒷좌석에서 딸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이지는 분명 집에 있어야 하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집으로 전화를 하니 경찰이 받고 부인과 딸에게 사고가 생겼음을 알린다.

딸은 죽었다는데, 그럼 내가 본 건 이지가 아니었나? 비슷한 여자아이였나? 세상에 자기 딸도 못 알아보는 아빠가 있을까?

디 아더 피플 FAQ

Q : 명칭을 디 아더 피플이라고 지은 이유가 뭔가요?

A : 인간은 누구나 비극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벌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벌어지기 전까지는요. 우리도 당신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용서하거나 잊어버리는 데서 위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정의를 구현하도록 서로 돕는 데서 느끼죠.

Q : 정의라니 어떤 것 말인가요?

A : 그건 개인별로 다릅니다. 하지만 범죄에 걸맞은 처벌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Q : 대가를 지불해야 하나요?

A : 돈이 오가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라도 우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우리는 기브 앤 테이크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요청하고 신세를 갚는 시스템으로요.

Q : 사람을 살해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나요?

A : 수락할 만한 요청이고 이례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모든 요청이 실행됩니다.



영국 작가 C. J. 튜더의 세 번째 소설 <디 아더 피플>은 법의 단죄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사람들이 만든, 다크 웹으로만 접속이 가능한 사적 복수를 추구하는 비밀조직 '디 아더 피플'이 존재한다는 신박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누군가 당신의 딸을 성폭행했는데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한다면.

운전자가 당신의 가족을 치고 지나갔는데 면허가 취소되고 그만이라면.

의사가 과실로 당신의 아이가 죽었는데 경고만 받고 끝난다면.

'디 아더 피플'은 품앗이로 이어진다. 누군가가 내 억울함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주었다면, 나 역시 언젠가는 나중에 행동으로 갚아야 하는 것. 도움만 받고 약속을 안 지키면 '디 아더 피플'은 당신을 처벌한다.

다수의 추리소설에서 다루었던 교환 살인보다, 익명성이 담보된 디 아더 피플은 훨씬 진일보한 언택트 점조직이다.

빼어난 스릴러를 읽는 즐거움은 점으로 연결된 인물들이 나중에 선으로 이어지면서, 작가의 큰 그림을 파악할 때다. <디 아더 피플>도 그런 예에 포함될 수 있겠으나, 기본 설정에서 큰 점수를 주기 힘들다.

'아내와 딸이 죽었는데 남편이 시체 확인을 하지 않고 장인이 대신한다고? 딸이라고 했다 하더라도 의학적인 확인 절차는 없는지?' 이 지점에서 좀처럼 납득이 안 된다.

딸이 바뀌었다는 기본 전제를 지키기 위해 고안된 몇 가지 지나친 우연은 작품의 개연성을 심각히 떨어뜨린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는 '복수'다.

<디 아더 피플>은 '연쇄 복수 스릴러'를 표방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복수의 쾌감보다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없이 이어지는 복수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개운하지 않고 찜찜하다.

억울한 희생자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적인 복수 스릴러를 알고 있다.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합당한 법의 처벌이 있을 수 있을까? 피해자 가족들은 이를 간다.

천애 고아라도 누군가는 애정을 가진 사람이 있을 거고, 결국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디 아더 피플의 컨셉은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후속작 개발이 시급하다.

우린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존재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_디 아더 피플)이 필요한 순간이 당신에게도 생길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애당초 접속할 생각조차 하지 마라! TOO DANGEROU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