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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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瞻星) 정호승은 시인이다.

시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이기에 그의 시집을 읽은 적은 없지만,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으로 읽었다. 일반 독자들은 이런 산문집으로 정호승을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 시인이다. 80년대 중반 가수 이동원이 불러 큰 인기를 얻은 <이별노래>가 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곡이란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며 썼으나 김광석의 목소리에 실린 <부치지 않은 편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도 사용되었고, 시인이 쓴 시 중에서 그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단 한 편의 시로 꼽는다는 <산산조각>은 추미애 장관이 최근 인용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에세이로는 7년 만에 낸다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시를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산문으로도 큰 인기를 얻은 저자가 시와 산문이 한 몸인 책으로 엮은 게 바로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인데 그래서 이 책은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인 동시에 '정호승의 산문이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저자가 고른 시 60편이 실려 있고, 거기에 대한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정호승은 이 책이 시 해설집이거나 평론집이 아니라 했으니 본인의 시에 대한 해설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 한 편의 시가 쓰였는가' 뒷배경에 대해 주로 말한다. 대부분 창작의 기원을 밝히지만, 저자의 《한마디》 시리즈처럼 향기로운 그의 산문은 지나간 인생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 제격이다.

저자는 이제 70대에 접어들었다. 평균 수명은 연장되었으나, 아무래도 이젠 다가올 찬란한 미래보다는 지나간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을 돌아보는 나이이고, 이제는 '인생은 이런 거다' 후배들에게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연령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산문집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상당하다. 추억 돋는 장소 섬진강변 정자 섬호정과 경주 불국사, 시적 감수성을 일깨워준 정호승 시의 모성적 공간 범어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의 원작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바친 찬사, 무덤을 찾을 정도인 윤동주에 대한 사랑, 가톨릭 신자지만 불교에 대한 애정, 백두산 여행 등을 그의 시 60편과 함께 읽다 보면 거의 600쪽이 한달음이다.

또한 내용의 많은 부분은 직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할애된다. 어느덧 노년이 된 저자는 무뚝뚝하지만 늘 소나무 같은 사랑을 보여준 아버지와 궁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시를 습작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진혼곡을 바치며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부모님 외에 법정 스님,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황순원, 시인 천상병이 추억 속의 인물로 등장하며 이외에도 저자를 문인의 길로 이끌고 격려한 은사들, 땅 위의 직업이 얼마나 축복받은 지를 알려준 이름 없는 광부, 우리 사회의 사표(師表) 김수환 추기경이나 훈맹정음을 만든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박두성, 아들의 성화에 의해 기르게 되었지만 17년이나 함께 한 바둑이까지 많은 인연들이 정호승의 일생을 이룬다. 더불어 시인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 20여 장도 곁들여져 저자에겐 추억의 앨범을 넘기는 듯한 회고록의 성격도 띤다.

"인생에는 형식이 없다. 인생에 형식이 있다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쓴맛을 보지 않고는 결코 단맛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다." - P 187

"나도 누군가가 나를 때려주어야만 내 존재의 종소리를 낼 수 있다. 내 삶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하나의 종으로서 내 존재의 맑은 종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 P 261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이전 산문집 《한마디》 시리즈를 인상 깊게 읽은 기존 독자는 물론 새로운 세대의 누구라도 진한 감동과 여운으로 이끌 책이다. 아울러 웃다가 울다가 책을 읽는 동안 얻게 되는 인생의 지혜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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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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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는 김은진이 쓴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부제처럼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에 대한 놀랍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우선 '올해의 표지 디자인' 상이라도 주고픈 공들인 표지가 눈을 끄는데, 표지 정중앙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뚫려있고, 그 사이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중 한가운데 위치한 '아담의 창조'의 아담의 모습이 보이는 구조인데, 첫 장의 우측은 잘려 나가 입체감을 준다. 책의 내용에 걸맞은 표지 디자인은 석윤이가 담당했는데, 표지에서부터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아직도 우리는 고전 회화 대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이걸 위해 몇 시간의 비행시간을 참고 견디며, 찰나의 순간을 위해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 줄을 선다. 유럽 여행의 핵심은 미술관 순례가 아니던가.

대부분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 이 작품들이 비교적 좋은 상태로 유지가 돼서 관람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데는 분명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별로 드러나지 않고 음지에서 일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고 미술 애호가들은 이들에게 큰 은혜를 입고 있다.

보존가로 일한 저자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미술품 치료, 복원, 재생, 유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펼쳐 놓는데, 분명 미술을 다루는 소재지만 내용의 상당 부분은 화학을 필두로 한 과학이다.

미술 작품은 아티스트가 작업을 완성한 이후부터 세월의 흐름을 견뎌내야 하는 숙명에 놓인다. 치열한 판정을 거쳐 소수의 작품들만 보존의 영광을 얻어 후세에 전달될 자격을 부여받지만 그다음부터는 과학의 영역이고, 여기서 보존가와 보존과학자가 등장한다.

보존가는 실제적인 작업을 담당하고, 보존과학자는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 분담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보존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손상이 발생했을 때 가장 원본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한다. 순간의 판단 착오가 원작의 훼손을 일으킨다면 이는 복원 자체가 거의 불가하므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피 말리는 직업이다. 심혈을 기울여 복원 작업을 해도 원작을 망쳤다는 비난과 논란에 휩싸이기 쉽다.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회화는 기본적으로 습도와 빛의 관리가 중요해서 박물관은 대부분 어둡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림도 나이를 먹고, 변색되거나 오염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때 그림의 생명 연장술을 시도하려면 최우선의 원칙은 '원본 보존'이다. 시대는 흘렀지만 원본의 오리지널리티에 최대한 근접하게 복원을 해서 창작자의 의도를 살려야 마땅하지만, 세월은 흘러 재료부터 당시 것을 사용하긴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보존과학자의 제대로 된 과학적 분석과 아주 약간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보존가의 상상력이 결합되어야 하겠다.

이에 반해 뭉크나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유명 화가는 그림을 의도적으로 자연 상태로 놓아두는 방식으로 '숙성'시키기도 했다. 뭉크가 작업한 스튜디오의 많은 작품들은 지붕이 없는 넓은 공간에 그냥 걸어 두었기에, 비와 눈을 맞고 때로는 매서운 바람과 먼지를 견디며 시간의 아픔을 맛보도록 했다. 그가 자신의 그림을 그렇게 두기를 바란 이유는 그런 세월의 흔적도 작품 일부라는 소신 때문이었다고. 뭉크나 리히텐슈타인이 그저 그런 화가였다면 이 작품들은 모두 폐기 처분되었겠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았기에 보존가들은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책에 소개된 다채로운 사례는 '예술을 유지 · 보존하기 위한 과학의 헌신'이다. 특히 고흐의 <들꽃과 장미가 있는 정물> 아래 숨겨져 있던 '2명의 레슬러' 그림을 찾아내는 과정은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

미술품 복원과 치료는 서구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신기술이 개발되어 발전되는 분야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실정은 걸음마 단계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라고 한다.

그림을 쉽게 접하게 하고 읽어주는 책들은 무수히 많았다. 미술 관련 도서를 즐기고 시시때때로 미술관, 박물관을 가는 독자라면 <예술가의 손끝>은 필독서다. 아울러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도 좋은 길라잡이가 될 신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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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사회의 종말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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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교수가 쓴 <탄소 사회의 종말>(부제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이하 <탄소 사회>) 제목을 보고 과거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 석탄이나 석유로 대표되는 탄소 사회를 회고하면서 한 시대의 종말을 통해 '다음 세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전망하는 책으로 지레짐작했었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었다. 지은이는 인권학자였고 <탄소 사회>는 부제에 오히려 집중한 '사회와 인권의 관점에서 설명한 기후위기 입문서'다.(사실 그렇게 보자면 <탄소 사회의 종말>이란 제목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작명이 아닌가 싶다.)

우선 도입부 '들어가며'에서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따지는 대목부터 뼈 때리는 통찰을 제시한다.

"코로나19가 왜 발생했는가? 가장 단순하게는 박쥐, 천산갑 같은 야생동물을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면서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생태계가 다양한 생명 사슬로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병원균이 소수의 생물종에만 집중되지 않는 '희석효과' 덕분에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생물다양성이 줄어 생태계가 단순해질수록 병원체의 확산효과가 커진다.

유엔환경계획 UNEP은 산업형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가축이 매개 역할을 하여 야생동물과 인간 사이에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는 연구도 발표했다. 이런 공장식 축산의 배후에는 자본주의의 거대 농축산업이 있다.(···)

또 지구화로 이주, 여행, 운송이 급증해 바이러스의 이동이 용이해졌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는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 수렴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 P 10

모든 이를 마스크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결국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중국의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병으로 알았던 무지한 날 일깨우는 신선한 도입부다.

인권학자인 저자는 일반인들이 별로 시급하지 않게 생각하는 기후위기에 대해서 집요한 질문 5가지를 던지며, 그걸로 책의 5부를 구성했다.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거다. 하지만 이게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냐고 한다면, 의견은 엇갈릴 수 있다. 중요도에서나 우선순위에 있어서나.

조효제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내내 상기시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뚜렷한 사시사철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봄 · 가을이 없어졌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여름은 또 왜 이렇게 습하고 비가 많이 오는지 마치 동남아 지방의 기후와 점점 닮아가는 듯하고, 지루한 여름이 끝났다 싶으면 가을 옷을 입을 새도 없이 바로 날씨는 쌀쌀해진다. 우리에게도 이상 기후변화는 피부로 와닿는다.

"그래서 앞으로의 여름은 항상 비 피해, 폭우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이 됩니다." - 환경학자 김해동, P 35

타고 다니는 오래된 SUV가 저감장치를 부착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미루고 미루다 얼마 전 장치를 달았다. 10여 년 전 차를 살 때는 경유차가 좋다 뭐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제는 차를 못 바꾸는 신세도 서러운데 노후 경유차라 시내에 진입하면 벌금을 물린데나 뭐라나. 아직도 쌩쌩하기만 한데. 이 사례 역시 매연 절감이라는 환경 이슈, 탄소 사회의 종말에 대한 가장 피부에 와닿는 사례가 아니겠는가.

화석 연료에 의존한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끝없이 팽창했고, 그 결과가 한계에 다다른 작금의 기후위기를 유발했다. 주로 선진국이 위치한 북반구는 이미 성장의 과실을 따먹고 '불공평한 혜택'을 입었기에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데, 기후 문제가 발생하자 전 세계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며 아직 발전이 더딘 남반구에게도 공동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기까지 해서 세계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다. 

"과거에는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생태 비용을 외부화할 수 있었지만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이제 남반구까지 이런 양식을 본받았으므로 외부화할 수 있는 '외부'가 사라졌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기후위기, 생태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 P 99~100

"인류의 1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인구를 가진 북반구 선진국들이 '대기의 식민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함부로 배출하면서 개도국들도 함께 사용해야 할 대기환경을 미리 선점해버린 것이다." - P 100

"더욱 충격적인 것은 196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0개 회사가 전체 온실가스의 3분이 1 이상을 뿜어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 12개가 국영기업이고 나머지는 민간기업이다.(···)

누적분 상위 10위 회사는 사우디아람코, 셰브론, 가즈프롬, 엑손모빌, 이란국립석유, BP, 로열더치셸, 인도석탄, 페멕스, 베네수엘라석유 순이었다." - P 113 

이러한 '북반구 대 남반구'의 갈등은 개인의 차원으로 가면 피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 이주민, 주거 환경이 열악한 주민, 유색인종 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부자들은 위기가 닥쳐도 스스로 안전을 도모할 수 있지만 이런 약자들은 우선적으로 피해의 직격탄을 맞는다. 개발도산국에서는 기후위기가 문제가 되어 가장이 실직하게 되면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된다.

"예를 들어 2011년 열대성사이클론이 남태평양의 바누아투섬을 두 차례 연이어 강타하여 큰 피해를 초래했다. 그 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이클론 이전보다 무려 300퍼센트나 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이상기후 때문에 가뭄이 장기화되어 농사를 망쳤을 때 농부들이 심리적 대응책으로 술과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흔히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 P 184

이게 세대 이슈로 넘어오면 이기적인 현재 세대가 근시안적인 행동으로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래세대의 '불확실한 효과'를 위해 오늘 나의 '확실한 이익'을 양보하기는 어렵다." - P 128 

결론적으로 이 모든 과정은 파렴치한 '사다리 걷어차기'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실제로 분쟁과 갈등을 부추긴다는 사실 또한 이제는 상식이다.

'역사상 최초의 기후갈등'으로 소개되는 수단 다르푸르를 시작으로 시리아, 예멘 같은 곳에서 일어난 분쟁은 환경 요인과 정치 요인이 결합되어 무장 충돌로 이어져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전 세계에서 국제 평화 유지 인력이 제일 많이 파견되어 있는 10개 나라 중 8개국이 기후변화의 영향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소말리아, 콩고,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다르푸르), 아베이(남수단)가 그런 나라들이다." - P 276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도 기후변화의 영향이 그 저변에 깔려 있다.

"원래 건조한 중동 지역에 기후변화로 강수량과 저수량이 더욱 줄어든 상태인 데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공평한 물 통제 정책까지 더해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 1인당 하루 물 소비량으로 비교하면 팔레스타인은 80.9리터에 불과한 반면, 이스라엘은 245리터에 달하는 실정이다."  - P 265

이쯤 되면 환경과 기후 이슈는 무기나 다름없다.

또한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 CSIS는 2007년 펴낸 「기후변화 결말의 시대」 보고서를 통해 예상되는 기후위기에 대한 세 가지 섬뜩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온이 2040년까지 1.3도 상승할 경우, 질병 창궐, 경제 충격, 국가들 간의 자원 전쟁, 지정학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둘째, '극심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40년까지 2.6도 상승할 경우, 팬데믹 만연, 난민 급증, 광신적 종교 활동, 무장 충돌, 핵전쟁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째, '재앙적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온이 2100년까지 5~6도 상승할 경우, 인간 사회에 상상 불가능한 결과가 초래되고 기후 붕괴와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동시다발로 터져 나올 것이라고 한다." - P 266


"현재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늦지만 마지막인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를 경제성장과 바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김아진(초등학생), P 299


책의 내용은 논문까지는 아니어도 보고서 수준으로 시종일관 빡빡하고, 동어반복인 느낌이 많아 다소 지루했고, 그래프나 도표, 통계 같은 시청각 자료도 전혀 없기에 읽는 맛은 덜했다. 기후위기를 논하면서 재미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건가?

<탄소 사회>를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문제는 심각한데,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해서 의식이 깨어 있는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기후위기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또한 심각성은 느끼지만 일개 개인이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정말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계의 영향력 있는 정상들과 석학들이 모여 해법을 제시하고 더 늦기 전에 이를 정확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문제 제기에만 그치지 않고 5부 '전환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을 통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도 제시해 놓았다.

꼭 기후위기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분이 아니라도, 여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많은 걸 얻어 갈 수 있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책이다.


"그러나 희망은 객관적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의 창조물임을 기억하자. 한편에 과학의 법칙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연대심, 정의감 그리고 창의적인 적응력이 있다. 양쪽 끝을 민주시민의 행동으로 잇는다면 실존의 세기를 건너는 희망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나오며, P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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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을 키우는 방법 - 별난 내과의사가 알려주는
조왕기 지음 / 린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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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남자라면 '기운 센 천하장사'의 꿈을 꾸지 않는 자가 없겠지만 유달리 한국은 더 심한 듯하다. 몸에 좋다고 표현은 하지만 실제로는 정력에 좋다 하면 그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섭취하려는 의지의 한국인들이 많다. 또한 식욕이나 성욕 둘 중 하나라도 욕구가 떨어지면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내리막길로 간다는 이론도 남성들 사이에서는 굳건한 믿음이다.

본인 이름을 내건 내과를 운영하는 조왕기 원장이 쓴 <별난 내과의사가 알려주는 정력을 키우는 방법>(아무도 몰랐던 부교감신경의 놀라운 힘)은 그 제목만으로 많은 남성들에게 복음이 될만한 책이다.(이 책처럼 추천사 목록이 길고 분량이 긴 책은 처음이다.)


저자는 오랜 기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전공인 양방 외에도 한방, 명상, 기공 등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해서 환자들에게 '원스톱 치료법'을 제공하려는 의욕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정력을 내세우지만 이는 미끼에 불과하다. 정력 따로 건강 따로가 아니기 때문에 정력만 강하게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좋아야 정력도 따라서 좋아진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론을 설파한다. 따라서 정력 감퇴의 대표적인 발기부전은 오장육부 기능이 무너지기 수년 전부터 나타나는 경고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부교감신경은 발기를 담당하고 교감신경은 사정을 담당한다. 이 책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교감신경'의 활성화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예상 독자들이 가장 민감히 찾아볼 정력 강화(발기부전, 정력감퇴, 성욕저하) 치료법으로는 수기법, 자가발전식 사정법, 풍선불기법을 들고 있는데 내용이 글로만 읽기엔 좀 단편적이라 아쉬웠다.


눈에 띄는 제목과 달리 '정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 많은 내용이 할애되진 않는다. 일반적인 건강 관리법이라 볼 수 있는 자율신경 활성화 방법이나 식사관리법으로 내용은 흘러간다. 여기에다 깨알 팁으로 '급성 복통을 치료하는 법'이라든가 '귀가 잘 안 들리는 분을 위한 회복법' 등이 추가된다. 저자는 단순히 정력 증강만을 위한 방법은 언급할 생각이 없고, 두루두루 건강을 잘 관리하면 결과적으로 정력도 좋아진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만 보고 혹 해서 집어 든 많은 독자들은 살짝 '낚였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그런 1급 비밀을 폭로하진 않기 때문이다. '정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비법을 찾는 이들에게나, 일반적인 건강론을 찾는 이들 모두 만족시키기 애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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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뉴욕이다
이여행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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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까지 3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으니 아마도 도시 숫자로 보자면 40~50개 도시는 다녔으리라.

뉴욕에 체류한 적은 없어도 미국 동부에 몇 달 머문 적이 있어 뉴욕은 자주 들렀었다. 방문한 많은 도시 중에서도 뉴욕의 이미지는 특별하게 남아있다. 도시 자체가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용광로 같았고,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활력이 넘쳤다. 브로드웨이에서 4대 뮤지컬이라는 작품들을 감상한 경험이 아마도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을 수도 있겠지만, 이해도 못 하면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뒷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Hearts of Darkness>(1991)를 보고, 큰 화면으로 포르노를 틀어주는 음습한 성인 극장을 호기심에 찾기도 하고, kg으로 파는 한인이 운영하는 간이 뷔페식 가게에서 허기를 다스리기도 했다.

필명으로 짐작되는 이여행이 쓴 <뉴욕은 뉴욕이다>는 뉴욕의 현재 모습을 일별할 수 있는 간략한 책이다.

좌측 페이지에는 사진이, 우측 페이지에는 사진에 소개된 핫스폿을 설명하는 기본 구성을 취한다.

오랜 세월 뉴욕을 상징했던 브로드웨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센트럴 파크, 월스트리트(의 황소), 매디슨 스퀘어 가든, 뉴욕타임스, 타임스퀘어, 할렘, 코니 아일랜드, JFK 공항, 리틀 이태리, 뉴욕 증권거래소, 브루클린 다리...

도시는 멈추지 않는다.

뉴욕 역시 9.11 테러의 아픈 기억을 딛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대체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비롯해서 과거 열차노선으로 쓰였던 곳을 공중공원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도시 계획에도 귀감이 된 '하이라인', 허드슨 야드에 새로 들어선 거대한 조형물 '베슬'(Vessel), 월가의 명물 황소 앞에 생긴 동상 '겁 없는 소녀'(Fearless Girl), 9.11 테러 이후 평화를 기원하는 '그라운드 제로' 등이 늘 새로운 "New" York의 이미지를 만든다.

몇 년 전 LA는 다시 갈 일이 있었으나, 뉴욕은 안 간 지 오래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눈으로나마 뉴욕에 대한 팬심을 되살려본다.

이민자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도착하던 관문이었던 뉴욕은 이제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이 되었다. 배트맨의 고담 시 모델은 뉴욕이었고, 뉴욕을 너무나도 사랑한 마틴 스코세이지나 우디 알렌은 경력 대부분의 작품을 뉴욕을 배경으로 찍었고, 폴 오스터는 뉴욕 3부작을 바쳤다. 뮤지컬의 본산 브로드웨이는 여전히 클래식과 신작이 각축전을 벌이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꿈꾸며, 운동권의 구호였던 '양키 고 홈'의 양키를 팀 이름으로 한 '뉴욕 양키스'는 MLB 최강의 프로야구팀이다.

뉴욕은 여전히 24시간 지하철이 다니고, 기마경찰이 순찰을 도는 도시다.

뉴욕은 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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