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베프, 로봇 젠가 그래 책이야 13
신채연 지음, 한호진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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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새 냉장고를 구입했다.

새 냉장고를 들여오던 날 나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아이구 참 오래 쓰셨네요.”

 

직원들은 고장난 우리 집 옛 냉장고를 끌어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냉장고와 거의 20년을 같이 지냈으니 말이다. 이윽고 직원들은 우리의 옛 냉장고를 양쪽에서 부축하다가 번쩍 들어서 데리고 나갔다. 그러자 몸에 기운이 쭉 빠지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냉장고. 그는 항상 우리 집안의 중심에 있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은 매일 같이 그의 팔을 한번 이상은 꼭 잡았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속을 들여다보았으며 그의 몸속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 식구들이 떠들고 웃고 싸우고 고민하는 것들을 모두 들었고,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도 그는 점잖게 비밀을 지켜주었다. 그는 우리가 집을 팔고 사고 이사를 하고 집안 어른들과 이별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입학하고 졸업하고 유학을 가고 돌아오고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우리 가족사의 산 증인이었다.

 

나의 추억은 곧 그의 추억이었다.

돌아보니 친구도 이런 친구가 없었다.

 

, 다만 전자제품일 뿐이야. 그저 세간살이일 뿐이라고!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전날 밤 나는 헤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따듯한 물걸레로 20년을 같이 지낸 그 친구의 몸을 닦아주며 속으로 말했었다.

 

장고야, 생각해 보니 넌 우리 집에 온 이후 단 하루도 휴식을 취해본 적이 없네. (맞는 말이다 그는 이삿날에도 겨우 두어 시간 코드를 뽑았을 뿐이다.) 그동안 너한테 신세 많이 졌다. 정말 애 많이 썼다. 고마워…….’

 

냉장고도 이럴진대 하물며 로봇 친구가 나온다면? 나의 베프 로봇 젠가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젠가와 무무 이야기에 공감했다. 미래의 어느 날 결국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의 절친이 로봇이며, 로봇과 가족을 이루며 사는 시대. 멋진 로봇 친구가 집안의 중심에 있어서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엄마아빠의 비밀은물론 내 비밀도 들어주고 상담해주며,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옆에서 나를 지켜봐주는 내 존재의 증인. 그래서 가족보다 더 가족이며 친구이상인 존재. 그런 로봇이 각 가정에 다들 상비되어 있는 시대.

 

하지만 그날이 천천히 느리게 오기를 바란다. 그때엔 젠가도 제법 철이 들어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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