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딱 붙은 아이들 난 책읽기가 좋아
최은옥 글,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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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딱 붙은 아이들』책은 진작 사놓았는데 이제야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쩜 딱 요즘 얘기구나 싶었다. 연일 메르스가 화제다. 현재 3천여 명이 격리되어 있고, 나날이 격리자가 늘어 전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상태로 세 아이들이 칠판에 딱 붙어버린 사건. 그후 학교 당국자와 학부모 등 어른들이 보이는 각양각색의 태도와 반응은 어느 날 돌연 우리 안에 떨어진 폭탄, 메르스에 대응하는 정부의 행태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블랙 코미디 같은 이 상황극은 어른인 나에게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웃기는(혹은 웃기지도 않는) 어른 캐릭터 중 누구에 속할까.

 

자로 댄 듯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면서 언성만 높이는 권위적이고 신경질적인 교장 캐릭터일까. 자식의 안위보다 자신의 위상, 자신의 성취가 우선인 방송국 리포터 동훈이 엄마 캐릭터일까. 무조건 책에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박사? 부르르 달려가 무당을 불러온 민수 할머니는 어떤가. 아니면 남 모르게 빠져나가 당국에 신고한 보건 선생님은……?

 

때로 권위적이고 신경질적이며 남에게 보이는 나를 중시하는 나, 무슨 일이 생기면 천착하고 본인의 의지로 신중히 시도하기보다 남들이 그걸 어떻게 해결했는지부터 알아보려는 나. 기복신앙의 전형인 나. 신종 바이러스를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가장 무서워하는 나. 아울러 국가가, 정부가,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절대 안전하게 보호하리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어리석은 나. 그러므로 나는 본 작품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어른들의 합집합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떤가.

 

반 친구들은 하교후 어른들 몰래 교실을 찾아온다.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칠판에 붙은 친구들이 걱정되어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칠판에 쩔꺽 붙어버린 두 팔, 얼마나 아플까. 계속 서 있어야 했으니 다리는 또 얼마나 아플까. 화장실에도 가고 싶을 거고 배도 무척 고플 텐데. 콧등이 가려울 때 간질간질 등이 간지러울 땐 어떡해야 할까. 친구들의 고통과 불안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그들의 발길을 교실로 향하게 했다.

 

게다가 친구들은 낑낑 무언가를 다들 들고 왔다.

 

비누를 갖고온 아이 식용유를 들고온 아이 샴푸나 린스를 갖고 온 아이 세탁용 가루비누를 봉지째 들고 온 아이……. 아이들은 저마다 들고온 그것들을 죄다 섞어서 칠판에 발라본다. 그러면 슈퍼 울트라 킹왕짱 미끄러워서, 금방 뚝, 잘 떨어지리라는(!!) 확신을 갖고.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 분명하다. ‘소통’의 부재는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거라고. 소통 없는 관계란, 곧 칠판에 쩔꺽 손이 붙어버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황과 같은 거라는 걸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이토록 속도감 있는 전개로, 두근두근 가슴을 졸이며 읽게 만든 작가의 역량에 탄복한다. 인상적인 장면들도 많았다. 가장 좋았던 건 반 친구들이 슈퍼 울트라 킹왕짱 미끄러운 용액을 제조해 칠판에 듬뿍듬뿍 칠하고는 세 박자 친구들을 한시라도 빨리 분리해내려고 용을 쓰는 장면이다. 

 

어떤 약도 어떤 해결책도 없는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포와 절망으로 옭아맬 때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초지일관 허둥대기만 하고 부서별로 제각각 다른 말만 하면서 결론적으로는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일까. (물론 그들의 체면과 위상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친구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맹목의 마음으로 기름을 비누를 샴푸를 낑낑거리며 들고 나타난 우리들의 친구를 보자. 그 앞뒤 계산 없는 순수한 마음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사람이 우선인 그 귀한 마음이 어느때보다 절실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결국 우리에겐 우리뿐이다. 우리를 지킬 사람도 우리밖에 없다.

그러니 더 기를 쓰고 소통해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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