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에서 그 녀석을 만났다 독깨비 (책콩 어린이) 67
이혜령 지음, 이영환 그림 / 책과콩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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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같은 반이었을 때 나를 무수히 괴롭히던 녀석 기태. 

올해 4학년이 되면서 녀석은 다른 반이 되었다. 

그래서 우린 만날 일도, 엮일 일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복도에서 만난 그 녀석 기태는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얘길한다. 

어딘가 고분고분하면서 힘이 빠져 있다. 

작년에 내가 알던 그 녀석이 아니다. 


기태는 4학년 7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그반의 우등생이고 회장이며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차지혁에게 밉보였고, 반아이들은 한무리가 되어 기태를 소외시킨다. 키크고 운동 잘하고 기고만장 뭐든 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던 어제의 강자 기태가 오늘은 약자가 되었다. 처지가 바뀐 기태는 소외된 자의 심정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의외다. 옆에서 그걸 보는 나(정재현)는 깨소금 맛을 느끼면서 기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나를 억누르던 놈이 남에게 억눌리는 걸 보는데 왜 기분이 안 좋을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내가 꼼짝 못하는 존재는 남들도 다 꼼짝 못하고 굽실대는 존재여야 내 비굴함이 정당성을 찾는 거니까. 내가 못난 놈에게 당해왔음을 인정하면 내 존재는 더욱더 초라해지는 법.)


이 작품집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뒤에 실린 <타이밍>이 <복도에서 녀석을 만났다>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상황을 헤쳐나갈까. 


당하는 아이가 복수를 하려면 최소한의 무기는 있어야 할 것이다. <복도에서 녀석을 만났다>의 나에게 그것은 말빨이다. 나는 작년에도 지금도 힘만 셀 뿐인 기태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할말은 하고야 만다.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강자 앞에서도 꿀리지 않고 끝까지 말할 수 있는 뚝심(자존감)이 있다. 


그렇다면 기태의 무기는 무엇인가. 

무엇이 있어야 자기보다 강자인 치지혁을 이길 수 있을까. 

기태의 무기는 어제의 적이었던 나다. 

기태는 말빨센 나의 마음을 가졌다. 

이 작품이 재밌는 이유이다. 


기태는 복도에서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야 정재현! 나, 너한테 할말 있는데... 불라불라불라,"


작년 한해동안 당하고 당해오는 동안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기태.

기태에 대한 내 마음은 꽝꽝 얼어붙은 빙산.

그것이 시나브로 봄눈처럼 조금씩 녹아내린다.


단지 복도에서 만났고, 보았고, 녀석이 내게 말을 걸어왔을 뿐인데 

이런 기적이 일어났다. 


진심이 진심을 만나 힘을 얻었다.

우리는 이렇게 친구를 만들고 

우리는 이렇게 성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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