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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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어느 페이지엔가 설이가 곽선생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대목이 있다.

"내가 시현의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저를 계속 키우실 건가요."

 

그러나 설이가 그토록 좋아하고 존경에 가까운 감정으로 지며보았던 곽선생은 설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저 입을 벌린 채 떨리는 시선으로 설이를 바라보기만 한다. (곽선생도 지금 혼란스러운 상태이리라)

 

설이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선생님은 내가 시현의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내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나를 끝까지 사랑하면 키우겠다고 뜨겁게 말하지 못했다.

그 분은 조건법 문장이 아닌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할 줄 몰랐다.

하긴 시연에게도 하지 못한 일을 나에게 바랄 순 없는 거였다.

아버지 학교에서는 그분께 그런 걸 가르쳐야 할 것이다.

 

곽은태 선생님의 반석 같은 어깨에서 엉덩이춤을 추며 자랐을 시연을 한없이 부러워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두드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우리의 교육은 언제가 되어야 학생 부모 선생님 모두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우며 행복한 시스템이 될까. 부모인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할 때 조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네가 공부를 잘해야 내가 널 예뻐하고, 네가 100점을 맞아와야 내가 널 더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부모인 우리조차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내 사랑이 조건을 담은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건 아닐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조건이 없다. 그냥 그 자체의 사랑이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더 행복해질 거야. 아이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거야. 덜 고생하고 더 편안할 거야. 그래서 아이를 닦달하고 더 다그치고, 그것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착각했던 거다.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단 한마디는 흔들림이다. 어깨의 흔들림. 어른이라고 흔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은 우리 어깨 위에서 어지럽고 멀미하고 너무 힘들다는 것. 이제 우리. 흔들림을 멈추고 조금은 편안한 길을 가도 되지 않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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