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과학 수업에서 우리는 ‘유효숫자‘를배운다. 유효숫자들의 개수는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양의 정확도를 반영한다. 예컨대 모래 10자루의 무게가 12.6kg에서 13.3kg 사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모래 1자루의 무게는 1.3kg이며 이때 유효숫자는 두 개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여론조사는 최소 3퍼센트포인트의 오차를 지녔으며 대개는 그보다 더 큰 오차가 나는데, 이것은 최고의 선거 예측에서도 유효숫자가 한 개만 있는 수치(이를테면 70%)로 확률 예측값을 발표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0이 아닌 숫자가 두 개 이상 들어 있는 예측값은 오해를 유발한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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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는 명료한 이론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자신의 예측에 대해 가장 큰 자신감을 보였고, 가장 정확하지 않은 예측을 했다.
테틀록의 조사 결과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장기적 안목으로 세세하게 예측하는 것이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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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말하기 보다 ‘듣기‘가 훨씬 어려운 행위라는 것을 최근 들어 깨달았습니다. 듣는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만약 상대가 없었다면 혼잣말(모놀로그) 혹은 말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 대화(다이얼로그)가 됩니다. "아.." 하는 맞장구 하나로 풍성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변합니다. 토론이란 ‘말하는기술을 겨루는 일이겠지만, 뭔가 그것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평가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듣기‘라는 행위, ‘상대의 마음이나 생각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지금 사람들이 가장 잃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명 저는 ‘자기표현‘이라는 말에서 모놀로그적인 ‘일방통행‘의 냄새를 감지하는 거겠지요.
- P58

제가 도착하자 천천히 책상 서랍에서 상자를 꺼내더니 "어디서 받은 건데 난 안 쓰니까 고레 짱 줄게"하며 책상 위에 툭 놓았습니다...
그때 야스다 씨의 회사 사람이 "고레에다 씨, 카르티에시계 받으셨지요. 그건 야스다 씨가 어디서 받은 게 아니라일부러 산 거예요. ‘근데 그 녀석, 시계를 전혀 안 차잖아하고 푸념하셨어요" 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시계는 지금도 안 찹니다. 하지만 칸 국제영화제 같은 특별한 행사에 갈 때는 반드시 찹니다. 본인은 레드카펫 같은곳은 절대 걷지 않았겠지만 시계만이라면 괜찮겠죠, 야스다씨.
- P123

그건 <공기인형>에서 인용한 요시노 히로시 씨의 <생명은>이라는 시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은 그 안에 결여를 품고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

영화 속에서 저는 결여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타자를 향해 열린 가능성이라고, 배두나라는 존재를 통해 소리 높여 선언했습니다.
그런 제가 상실로 인해 의욕을 잃고 있어서 어쩌겠다는건가 하고 깨달은 것이지요..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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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당신은 무언가 늘 찾아서 배우는 나를 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고 싶다"라고 했는데, 나는 하루하루는 되는 대로 살면서도 인생 전체는 성실하게 살고 싶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비현실적인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거나,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면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공연히 발이 저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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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다가 H가 말을 건넨다. 출근하다 대학자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단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자의 물음에 대학자는 ‘파겁()‘의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단다. 파겁은 익숙하여 두려움이 없고 겸손하고 관대해지는 경지를 말한다.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

딱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나 잘 알기에 두리움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런 경지가 있기나 한가. 그건 종교 아닌가.
하긴 어떤 이에게 공부는 이미 종교다. 각자가 가진 두려움의 무게와 깊이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연구자에게는 공부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자 신념이기도 하다. 글쎄, 나는 그렇게까지 거창한 의미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내 몫이 있겠지.
내 속도대로,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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