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마을 주치의! - 의사 일과 사람 6
정소영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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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보면 우리들의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가지를 쳐서 외적은 것은 물론 내적으로도 갖추어야할 것들도 가르쳐 주고 있어 진정한 직업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내일의 꿈을 품고 키워가는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잇다. 또한 지금의 나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는 계기도 갖게 해준다. 그것도 글과 함께 실려 잇는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림의 현장감이 글에 녹아들어 생동감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우리 마을 주치의’ 말만으로도 믿음이 전해져 온다. 비 오는 날 마음껏 뛰어놀던 지원이는 그날 밤, 감기에 걸려 식구들의 걱정을 듣게 된다. 열이 나고 기침도 심해 식구들은 지원이 이마에 얼음봉지를 올려놓고 따뜻한 물에 귤을 먹이며 간호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지원이는 엄마 손을 잡고 ‘우리 가정 의원’을 찾아갔다. 이 의원의 의사선생님, 하얀 가운을 입고 목에는 청진기를 걸고 웃음 짓고 있는 여의사 선생님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고 병을 치료해주는 의사 선생님은 환자들이 아프지 않게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진료실 안에는 체온계, 혈압을 재는 기구, 상처를 소독하거나 꿰매는데 쓰는 도구들 등 여러 가지 의료기기들이 갖추어져 있다. 지원이는 아기 때부터 이 병원에 다녔기 때문에 편안하게 진찰 받을 수 있었고 약도 받았다. 그리고 밥 잘 먹고 물 많이 먹고, 푹 쉬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이 병원에서는 아침이 가장 바쁜 시간으로 환자들은 기다리느라 지루한 시간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다음으로 소현이가 예방주사를 맞으러 들어왔는데 울음을 터뜨렸고 그러면 몸 상태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 선생님은 안경과 함께 붙어있는 커다란 코, 그 밑에 콧수염이 달린 재미있는 물건으로 소연이의 호기심을 끌어 진찰을 했다. 이번에는 어르신들을 진료할 시간이다. 감기로 오신 지화자 아주머니는 영양제 대신 맛있는 음식을 드시게 하고, 뇌졸중을 앓고 계시는 김만록 할아버지에게는 핏줄이 다시 막히지 않게 하는 약과 짜고 기름진 음식을 드시지 말라는 당부를, 당뇨 진단을 받은 고양순 할머니께는 음식을 적게 드시고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처방을. 이렇게 노인들은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병을 많이 앓기 때문에 약도 중요하지만 매일 운동을 하고 음식도 잘 가려 먹어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 건강한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나는 가정의원의 모습에 반가웠다. 규모는 작지만 소아과부터 내과, 외과까지 함께 치료하는 모습이 우리 동네에 있는 병원과 같기 때문이었다. 나도 지원이처럼 아기 때부터 그 병원을 다녔기 때문에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의사선생님이 식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그마한 진료실은 대부분 아는 얼굴들로 마치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도 준다.

내 꿈은 약사이야.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한 번은 밤중에 급체를 하는 바람에 동네 약국에 갔는데 약사님이 사관을 따주고 약도 챙겨주어 낳은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내 꿈을 이루려는 것이 내가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는 것 보다는 나 혼자만의 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 보다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을 하고 졸업하고 나서도 취업을 하지 못해 몇 년 때 취업 준비생으로, 어니면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선배들을 보며 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 더 커져 약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곤 했었다. 그래서 작년에 도전을 했지만 실패했고 이번 여름방학 때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는 것으로 재도전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또 다시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집중을 하지 못하곤 한다. 그러다가 책 속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을 보니 기본적으로 내가 갖추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마음가짐이었다. 자신만의 명예나 부보다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힘이 되어주는 그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야 직업을 통한 만족감도 얻게 될 것이고 그 만족감으로 다시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환자가 아닌 서로 함께 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이 책속에는 감기는 왜 걸리는지, 감기를 이겨내는 방법, 예방주사는 왜 맞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사선생님이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들려주어 아이들에게 색다른 재미도 갖게 해주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운동 삼아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그 때도 마주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진료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오후진료를 시작한다.

꽃님이 할머니는 걷기도 힘들고 무척 피곤하다고 하셔서 지난번에 여러 가지 검사를 했었는데 오늘 그 결과를 보니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높아 운동을 해야 한다고 당부를 들였다. 다음으로는 우리 병원에 처음 온 어린이 환자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감기는 늘 달고 살고, 아토피까지 앓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아 상담과 놀이로 마음도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한테 보냈다. 환자들이 뜸해지면 의사선생님은 진료의뢰서를 쓴다. 환자들 중 더 자세한 검사와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에게는 진료의뢰서를 써서 맞는 의료 기관을 소개해준다. 뿐만 아니라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의학책과 연구 자료를 보며 늘 공부해야 하고 검사 결과를 살펴봐야 하고 국민건강보험 공단에 진료비도 처리해야 한다.

나는 의사선생님의 하루를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환자를 아프지 않게 도와주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우리가정 의원처럼 동네주민 위주의 병원이다 보면 그 곳을 찾는 화자들이 그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마치 식구처럼 느껴져 굳이 진료실이 아니더라도 만나게 되면 건강을 챙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의사로서 고혈압, 당뇨로 고생하시다가 의사선생님의 관심으로 7 년 만에 멋쟁이 신사로 다시 태어난 한용삼 할아버지를 뵐 때면 뿌듯하지만 고치기 어려운 병을 앓고 계셨지만 왕진 갈 때마다 늘 반겨주시던 홍순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다시 또 진료실에서 환자를 맞을 수 있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도록 도와주어 아픈 사람들이 병이 나아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난 의사선생임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 선생님은 의사라는 신분으로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보다는 작은 마을의 주치의가 되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는 것이다.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돌보며 그 속에서 기쁨과 희망을 얻어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는, 진료를 할 때도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세한 설명으로 궁금증을 풀어주고 치려할 때도 미리 알려주고, 낫기 위해서 해야 할 일도 알려주고, 선생임의 자상한 웃음이 그려진다. 또 마을 주민과 함께 운동모임도 하고 건강학교도 운영한다고 하니 우리 의사선생님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도 내 꿈을 이루려는 바탕에는 이렇게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이웃으로,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겠다. 그래서 어젠가는 우리약사님이 되어야겠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편다. 우리 약사님이 되기 위한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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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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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널 겁주려 할 때 가장 먼저 마음을 읽어줘야 해. 그럼 절대로 더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가끔씩 어떤 누군가는 고마워‘라며 인사말도 건넬 테니까.” 책속에서 알게 된 이 말이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든든함으로 가슴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책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그 누구에게라도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다. 특히 글과 함께 실려 있는 그림은 마치 작품을 연상하게 할 만큼 한참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찾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 어린 소년의 순수한 마음, 지금 자신의 모습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칼포니는 플로리다 숲 속 작은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어린여자 아이로 시를 잘 지어 자신의 마음을 시로 표현하곤 했다. 칼포니에게는 버기호스라는 강아지가 있어 언제나 함께 했다. 평화로운 숲속 마을에 위기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칼포니는 생선 파는 일을 하는 아빠를 돕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선다. 마을에서 제일 지혜로운 아비타 아주머니에게 들은 비밀의 강을 찾아 버그하우스와 숲으로 들어간다. 칼포니가 준비한 것은 낚싯대와 물고기 밥으로 쓸 종이 장미꽃, 그리고 코끝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는 아비타 아주머니의 말씀 뿐, 그런대도 아무 걱정이나 의심도 없이. 이럴 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비밀의 강이 있는지, 없는지, 코끝이 가리키는 대로 가는 게 가능한지, 이러 저리 재보고, 따져보느라 감히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내가 물고기를 잡는 게 이로운지, 해가 되는지부터 고민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순수한 마음이 없다는 사실에 괜히 민망스러워진다. 칼포니가 숲에 들어가자 거짓말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코끝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 갈 수 있도록 토끼가 나타나고, 파란 어치가 고개를 돌리게 하고. 그렇게 해서 찾아간 비밀의 강, 그곳에는 정말 많은 물고기들이 있었고 칼포니는 나무에 묶어둔 배를 타고 원하는 만큼의 메기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나와 메기들을 뻣뻣한 실유카 이파리를 이용해 엮어 낚싯대에 꿰어 집으로 돌아올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나는 마치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또 다른 그림들이 숨겨져 있어 마치 비밀의 숲에 온 듯한, 나무들 가지와 잎 사이에 숨어있는 물고기의 모습, 삼나무 주름 사이로 보이는 얼굴, 부엉이의 깃털 하나하나에 또 다른 부엉이가 숨겨있는 그림을 찾을 때면 비밀을 풀어가는 즐거움도 갖게 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비밀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날이 어두워져 숲 속의 짐승들이 칼포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칼포니는 메기를 먹잇감으로 내어주며 숲길을 나오게 되었다. 만약 칼포니가 메기를 주지 않았다면 큰 변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칼포니도 속으로는 짐승들이 두려웠지만 자신이 지었던 시처럼 오히려 짐승들의 마음을 먼저 잃어주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고 메기를 줄 수 있었다. 비밀의 강에서 얻은 메기는 자연이 준 선물이기 때문에 배고픈 짐승들에게도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나눔은 칼포니의 아빠에게, 다시 또 마을 사람들에게 계속 이어져 결국 마을이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맞게 되면 누구를 탓하거나 의존하려 하기 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하나씩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칼포니는 어려운 시절이 얼른 지나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해주었다. 비밀의 강은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찾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원할 때 눈을 감고 마음을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간절함으로, 순수함으로, 누구에게라도 아낌없이 나눌 수 있을 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책장을 덮고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본다. 비밀의 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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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3번 안석뽕 - 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271
진형민 지음, 한지선 그림 / 창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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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3번 안석뽕’제목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은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나의 초등학교 때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는 무심하게 남겼던 일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초등학교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가 치루어지는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를 엮은 것으로 아이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학교, 나아가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솔직하고,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만한, 그러면서도 무심하게 지나쳤던 상황을 재미있게 펼쳐 보여 읽는 이에게 공감을 갖게 한다.

 

이 이야기는 문덕 초등학교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 후보 등록 마감일인 금요일을 시작으로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안석진으로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다. 석진이네 집은 문덕 시장에서 떡집을 하고 있고, 석진이는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같은 반 반장인 고경태가 전교 회장 후보로 나서 괜히 거들먹거리자 친구인 기무라와 조조의 부추김으로 석진도 회장 후보가 되어버렸다.

엉겁결에 회장후보가 된 석진은 월요일부터 시작된 고경태의 화려한 선거유세를 보고는 나름 작전을 세웠고, 급기야는 석진이 제일 싫어하는, 시장사람들이 부르는 석뽕을 이름대신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기호 3번 안석뽕’이라는 문구를 넣은 손 팻말을 손에 들고 본격적인 선거유세에 들어갔다. 기무라는 휴대용 오디오를 틀어 팔도 민요 메들리를 운동장에 울리고, 조조는 할머니 고무줄 치마에 머릿수건까지 쓰고 입술에는 빨간 립스틱에 이마와 양쪽 뺨에는 연지곤기를 찍고, 긴 가래떡을 손에 들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석진은 한복을 입고 돗자리 위에 앉아 화선지에 붓글씨를 써내려 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큰소리로 안석뽕을 외쳤다.

석진이와 친구들은 후보가 내세워야 할 공약에 대해 고민하다가 철학관 거봉 선생의 조언으로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알아보게 되었고 5가지 공약을 완성하게 되었다.

 

나는 석진이가 전교 어린이 회장 후보가 된 것이 무척 반가웠다. 왜냐하면 나도 6학년 때 전교 회장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석진이와 같은 기호 3번으로, 나는 그 때 우리 반 회장으로 처음부터 전교 어린이 회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석진이의 마음과는 좀 다르긴 했지만 석진이가 선거유세를 하는 과정은 나도 겪어보았기 때문에 쉽게 마음에 와 닿았다. 석진이처럼 친구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준비물을 만드느라 밤늦도록 머리를 맞대고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석진이가 꼴찌들을 위한 주제로 한 것에 비해 나는 친구들이 원하는 소리를 들어주는 신문고가 되겠다는 주제로 손 팻말을 들고 . 갑자기 가슴이 쿵쿵거린다. 그 때의 기억으로.

나는 석진이의 색다른 공약을 보며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들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험은 일 년에 한 번만, 나머지 공부는 없애고, 수학시간을 줄이고, 6학년 수학여행은 공짜로, 급식도우미는 엄마들 대신 선생님들이 하는 것으로.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님들이 보기에는 장난스럽고 어이없는 약속이지만 실상 학생들에게는 공감 가는 내용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무거워진다. 그 약속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에, 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들의 마음을 대놓고 드러낸다는 것만으로도 통쾌해진다. 석진이의 말처럼 일등부터 꼴등까지 다 좋아하는 학교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요일부터 석진이는 조조, 기무라와 함께 교실을 돌며 선거유세에 나섰다. 조조는 중국 사람을, 기무라는 일본 사람처럼 옷은 물론 말투까지 흉내를 내서 가는 곳마다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석진의 담임선생님은 한 반에 회장 후보가 두 명이면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은근히 회장 후보 사퇴를 종용했고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부반장 서영지로부터 선거를 진지하게 하라는 따끔한 충고도 들어야 했다. 게다가 석진은 같은 반 친구로, 시장골목 슈퍼집 딸인 백보리, 백발마녀의 부탁으로 피마트에 가서 바퀴벌레를 풀어 놓는 일을 보게 되었다.

목요일, 석진은 선거관리 위원회로부터 선거유세 때 가래떡을 떼어 준 것이 유권자에게 음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고경태는 음식제공을 약속했다는 이유로 1차 경고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실에서 방송유세를 했는데 석진은 기무라가 거봉 철학관에서 몰래 가져온 신통방통 부적을 몸에 갖고 있었으면서도 너무 떨려서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게다가 학교 공부가 끝나고 떡집에 오자마자 경찰차를 타고 파출소에 가야 했다. 피마트에서 백발마녀가 바퀴를 풀어놓는 장면이 몰래 카메라에 찍혔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피마트는 소독을 이유로 영업을 정지한 상태였으니.

석진이 아버지가 피마트 점장에게 무조건 용서를 구하는 반면 백발마녀의 엄마인 슈퍼아줌마는 오히려 큰소리로 피마트가 시장 옆에 들어선 것에 대해 근본적인 잘못을 따졌다.

 

나는 목요일 석진이의 힘든 하루를 보며 안타까워졌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은근히 후보사퇴압력을 받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서영지로부터 쌀쌀한 눈총을 받고, 게다가 백발마녀을 따라간 것 밖에 없는데 바퀴벌레 사건으로 파출소에 가야 했으니.......

그 뿐인가? 기무라가 철학관에서 몰래 가져온 신통방통 부적이 힘을 빼는 부적이었으니. 솔직히 말하면 백발마녀의 바퀴벌레 사건도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한 피마트의 잘못이다. 육십년 동안 이어져 오는 문덕시장을 삶의 근거지로 살아가고 있는 시장사람들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으니, 석진이 부모를 비롯한 시장사람들이 장사를 뒤로 하고 피마트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덕적으로 보면 그 곳에는 피마트가 들어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피마트는 법적인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신고를 하고는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이럴 때는 백발마녀를 용기 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아마도 석진이 엄마가 파출소에서 나온 후, 석진이에게 오천 원을 주며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으라고 하는 마음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금요일, 회장선거 투표 날, 석진은 피마트 사건이 학교에 알려져 학교명예회손으로 후보자격이 상실 될뻔 했지만 교감선생님의 도움으로 면하게 되었다. 석진은 마지막으로 강당에서 연설을 했고 결과는 2등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석진은 그제서야 자신이 멋진 회장이 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2학기 때는 다시 한 번 선거에 나가기로 했다.

나는 석진이 회장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기표소에서 투표할 때 나는 다른 후보에 기표를 했었다. 자신을 찍는다는 게 잘못된 것으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당연한 것은 한 표라도 더 모으기 위해 자신에게 기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를 기다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을 조이고, 막상 결과가 나왔을 때 불과 몇 표 차이로 떨어졌다는 사실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마 석진이도 그랬을 것이다.

다른 후보들처럼 집이 잘 살지 못해도, 공부를 잘 하지 못해도, 엄마가 예쁜 멋쟁이가 아니어도, 석진이는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아버지의 믿음이, 내색은 잘 하지 않지만 자상한 엄마의 따뜻함이, 언제나 함께 하는 친구들의 우정이, 거칠어 보이지만 정으로 함께하는 시장사람들의 웃음이.......

석진이가 말했던 것처럼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먼저 생각하고 뭘 물어뜯어야 같은 일이 다신 안 벌어질지 잘 판단한 다음 행동하는 현명한 사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좋아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가진 자와 못가진 자, 힘 있는 자와 약한 자, 우리 모두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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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 자신에게 거는 모두의 기대가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텐데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2013 최고의 너브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피겨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는 것, 그리고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갖게 해주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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