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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들 : 우리는 매일 다시 만난다
앤디 필드 지음, 임승현 옮김 / 필로우 / 2023년 10월
평점 :
사소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텍스트. 큰 범위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새롭고 신선한 어떤 것들은 항상 존경받아야 한다.
동성애나 다양성 존중에 대한 몇 번의 문구를 본 뒤에 ‘애 게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이성 백인이라고 말한 뒤에 나의 무지한 선입견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익숙하지 않은 주제로 시작해 익숙한 주제로 끝나는 아쉬운 전개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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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카락 이야기는 갑자기 뜬금없다 생각했는데 한 번도 헤어컷에 대한 고찰을 담은 이런 글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미용실을 갈 때면 긴장하곤 한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란 물음에 대한 대답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대답을 모른다. 그냥 짧고 깔끔하게 잘라주세요. 그리고 후회한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은 이게 아닌데. 근데 며칠 지나면 자연스럽게 보이면서 멋져 보인다. 자뻑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이발만큼 쉽게 처음 보는 타인에게 나만의 공간을 내어주는 행위가 없다(멀쩡한 상태로).
2..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큼 긴장되고 긴장되는 이벤트가 없다.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떠드는 게 아닐지, 아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마무리를 해야 될지.
내 경험 중에 가장 곤욕적이었던 해외 출장지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건넬 때인데, 프랑스 기차에 배치된 휴대폰 충전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 옆에 앉은 중년의 남성이 불어로 머라 했는데 못 알아듣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을 때. 미국 출장 중 거리 건물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옆에서 담배 피우는 넥타이를 맨 직장인이 관광객인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다가왔지만 갑자기 어버 거리며 거절했을 때(둘 다 너무 무안했다). 인천 공항에서 터키인이었나 배기지 클레임이 어디냐고 물어보는 패신저에게 갑자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하애지면서 대충 떠돌고 그 자리를 도망친 기억까지. 아무튼 몇몇 가지가 더 생각나긴 하는데 모르는 사람(혹은 다른 언어) 과의 스몰 토크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겐 공포감이요, 참으로 불편하다.
3.. 이젠 통화다. 전화 통화는 참 어렵다. 침묵을 참을 수 없다. 상호보완적인데 눈치 보기 바쁘다. 동시에 즉각적인 매체이고 빠르다. 무섭고 편한 인류 과학의 결정체이다.
4.. 자동차. 거대한 모바일. 가장 작고 효율적인 메카닉 유닛. 가장 은밀하고 밀착 공간.
5.. 음식을 통한 뻘쭘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아쉽다.
6.. 클럽에 마약이라니. 문화적인 차이인가.
7.. 오늘도 센트럴 파크를 가보는 대신 유튜브로 접한다.
8.. 많은 인간들이 안전한 공포의 스릴을 즐긴다. 극장 경험이 가장 대표적이다. OTT에 밀려나고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매체가 아니라 콘텐츠이다.
9.. ‘악수’란 나에겐 무기가 없고, 적대적인 감정이 없다는 근원이 상식 아닌가. 코로나 이후로 이런 문화도 사라지고 있지만, 참 코로나가 많은 걸 변화시킨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