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대화하기, 진부할 수가 없는 전개. 구역질 나는 군상들과 강강술래하기. 외형적으로 범죄 소설이지만 들여다보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외면해버리는 블랙 코미디. 왜 대문호 대문호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이 소설을 비유하자면,/아주 매끈한 세단을 타고 1차선을 그리며 아주 여유롭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고속도로와 국도 그리고 비포장도로를 실시간으로 교차하다 역주행하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가?/아주 이쁘고 맛있고 조그마한 귤을 잘 먹고 있는데, 순식간에 덜 익은 바나나가 되었다가 수박이 되었다가 코 막고 먹어야 되는 두리안을 맛본 적이 있는가?3장에서 나오는 광란의 알코올 정신 상태를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한, 숙취에 토할 것 같은 마력의 문체.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범인과 결과가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인간 군상들의 휘몰아치는 심리 상황 및 리드미컬한 전개에 있다. 그렇다고 장르적 재미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이게 발표된 지 130년이 넘은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뒤처진 구름은 따라잡지 못할까 봐 두려운 듯 그 뒤를 서둘러 쫓아갔다. -61p로맨스 소설에서라면 너무 멋지고 감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추악한 것들이었다. -84p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의 문제예요. -115p힘겨운 기억이 눈부신 기억을 금방 억눌렀던 것이다. -179p인생이 다 지나갔다. -2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