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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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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이 책을 본 것은 대학입시가 끝나고 난 겨울방학 때였다. 그러니까 내가 20살이 되던 해, 시험이 끝나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바로 그 때였다. 시립도서관 서고에서 다른 책들보다 빨간 바탕의 하얀 글씨의 이 책이 유독 눈에 띄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책 겉 표지의 모딜리아니의 <넥타이를 맨 여인> 역시 나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난 책을 도로 다시 서고로 집어 넣고 뒤로 돌아섰다. 이유는 지금은 내가 이 책의 감성에 젖어들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난 책이란 그것을 읽어야 할 시기가 따로 있었고, 나중에 10년 정도 지난다면 이 책이 공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를 위해서 이 책을 아껴두기로 했다.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 때 이 책을 읽었다면 난 이 글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는 버려야할 것보다 얻어야 할 것이 많았던 시기였으니까. 물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의 나이도 아직 30에 는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20이었을 때보다는 이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아껴두었던 이 책을 꺼내 보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글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서글펐다. 전반적으로 그랬지만, 특히 이 글 초반의 몇 페이지는 정말 나에게는 절실하게 다가왔다. '내가 이제는 갈 수 없게 된 그 수많은 [가지 않은 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 못 이루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놓치게 되는 그 수많은 것들이 나에게는 지금 너무나 아쉽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심정과 30에 이르러서 이 글을 읽는 심정은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때는 지금보다 좀 더 밝은 분위기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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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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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나로 하여금 다른 도시의 이야기를 하라고 하지 말라. 바로 이 곳에서 수년동안의 나의 불안, 나의 희망이 그물 안에 얽혀 들었던 이 유일한 도시에 대해서 지껄이게끔 나를 내버려다오. 단정치 못한 커다란 어부처럼, 거대하고 무심한 강변에 자리잡고 앉아 변함없이 부패한 은빛의 어획물을 낚아들이는 이 도시의 모습을 나는 보고 있다. 은 빛깔의 불안을, 부패한 희망을. < 잉게보르크 바하만, <삼십세> 중에서 >

서울 생활 12년째지만, 이 넓은 서울시 안에서 특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나 가보고 싶은 곳이 별로 없다. 서울 시내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탁한 공기와 자동차와 시커먼 먼지, 그리고 깨진 타일, 많은 사람들, 그래서 너무 걷기 불편하다는 것 등이다. 이 책에서는 매일 신촌거리를 왔다갔다하면서 영등포를 지나다니면서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나면서 내가 느꼈던 편치 못함의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책에 공감이 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지은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건물이 그리고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거리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머금었다가 품어내는 스펀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지은이가 그토록 매섭게 이 거리에 독설을 퍼부었던 것 같다. 지은이는 이 거리 자체가 아닌 거기에 담긴 형식주의, 허례허식, 권위주의와 암울한 역사, 압축성장의 그늘에 침을 뱉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의 분노는 이해가 간다. 그러한 분노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우리 나라에 없을 것이다.

'21세기는 그렇게 분노로 시작되어야 한다. 거리를 걸으며 분노하라.'( 301p~302p )

맘껏 분노하자. 그리고 침을 뱉자. 그래서 우리의 거리에 스며든 온갖 나쁜 것들을 다 쫓아내자. 하지만, 지은이의 말대로 21세기를 분노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분노가 아닌 애정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패'했을지 모르지만 이 거리에서 '희망'을 낚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거리를 외면하지 않고 애정을 가지고 돌볼 수 있다. 분노는 좌절과 무관심을 낳을 뿐이다. 애정을 가져야만 저자와 모든 사람이 희망하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이렇게 삭막한 거리를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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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동녘문예 6
김산 지음, 조우화 옮김 / 동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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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과 <체 게바라 평전>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덕분에 여러 가지로 비교되는 두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세계가 과연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가, 또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면 왜 불가능하고,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젊은 시절, 이런 문제로 고민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던가? 하지만, 이 문제의 해답은 누구도 쉽게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김산'과 ' 체 게바라'는 '행동과 실천'이라는 방식을 택한 사람들이다.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모순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고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된다. 둘 다 의학을 공부했으며, 둘 다 조국을 위해서 나아가서는 전세계를 위해서 타국에서 생을 마쳤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을 때와 <아리랑>을 읽을 때와는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체 게바라 평전>의 경우는 실감도 안가고 그의 행동이 절실하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 <아리랑>의 경우에는 책을 읽는 도중에 책을 덮고 한숨을 내쉬면서 천장을 바라보고거나 창 밖을 바라보는 일이 자주 있었다.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것이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저기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대척점 어느 곳에서 이름도 복잡한 사람들, 그리고 말로만 들었던 투쟁해야하는 세력이 아닌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늘 들어오고 아직도 우리의 동포들이 사는 만주라는, 상해라는 그리고 연해주라는 곳에서 일본 제국주의와의 싸움은 너무나 절박하게 나에게로 다가왔다. 조국강토의 식민화라는 모순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김산'은 오늘날 실천적 지식인이 부족한 우리의 역사현실에서 커다란 귀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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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행정가 - 한국형 지도자론 나남신서 615
이종범 외 지음 / 나남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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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과의 학생으로서 행정학을 배우면서 늘 고민했던 문제 중의 하나는 '과연 우리가 배우는 이 학문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행정학의 대부분이 미국의 역사를 배경으로하여 나온 이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행정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미국의 이야기이지 우리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으로 행정을 '공공 욕구의 충족과 문제 해결'과정이라고 정의 할때 공공의 욕구라는 것은 우리 국민의 욕구이고 문제라는 것 역시 우리나라라는 토양을 바탕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나라의 행정학은 특히 우리와는 전혀 정서가 다른 미국의 행정학은 무엇을 하는데 참조는 될 수 있겠지만, 주된 것은 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환시대의 행정가>라는 책은 내가 그 동안 꼭 읽어 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전에 교수님으로부터 이 책의 소개를 받으면서 '우리나라 행정가들을 다루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책에서 나의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국에도 존경받을만한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한다. 한국적 지도자론을 말하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배경이 다른 곳과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서론 부분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60년대 이후 90년대 초까지 한국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고 이 시기의 변화는 단순히 경제적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정치적 변화까지도 포함한다.'

즉 이 책의 제목인 '전환시대'는 그 동안 우리가 겪었던 시대를 명명하는 말인 것이다. 이 전환시대라는 의미는 군부독재, 다원주의사회로의 진전, 경제적 발전 등을 포함하는 의미로 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시대'의 중심에 저자는 행정가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틀을 바탕으로 하여 7명의 행정가를 각각 분석하여 '전환시대의 한국형 행정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냐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에 따라 앞으로 요구되는 행정가 상(像) - 시민형 행정가 - 를 설명하고 있다.

난 이 책의 전제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공감을 했다. '우리 나라의 역사분석면'에서 적절한 지표를 이용해서 짧지만, 간명하게 '전환시대'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전환시대'를 앞에 서서 행정가들이 이끌고 갔다는 사실 역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회의가 들었다. '압축성장'이라고 불리울 만큼 서구사회가 몇 백년에 걸쳐 겪은 일을 30년 정도에 이루어낸 우리로서는 과거의 행정경험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적절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결론 부분에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행정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행정가의 모습은 각각 다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소위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근대화시절 즉 60∼70년대 경제성장기에는 '김현옥'같은 인물이 필요했었지만,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어서 시장경제에 순응해야만 했을 80년대의 경제안정기에는 '김재익' 인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학렬' 과 같이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지금 이 시대 바람직한 지도자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 곳곳에서 긍정적인 인물로서 언급되고 있는 '강경식'이라는 인물이 IMF환란의 주범으로서 전국민을 암울한 터널 속에 몰아넣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근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몇가지 비판받아야할 사항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한국적 행정학의 모색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고 해결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언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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