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크 로스코> 전에 갔다가 “왜 이 작품이 위대한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 했다는 회사 동료를 본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유럽 여행을 갔다가 루브르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고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는데 난 왜 별 감흥이 없을까 하며 의아해 한 경우도 있다. 그만큼 “그림 감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보는 것과 감상하는 것은 좀 다르기 때문이다. 야구규칙을 알고 야구를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수천 년의 미술 역사에서 다양한 방식의 ‘그림 감상법’이 존재했지만, 그 중에서도 비교적 쉬운 그림 감상법이 있어 같이 나누어 보고자 한다.
주인공 찾기
일반적으로 서사구조를 가진 그림에서 주인공을 찾고 그 주인공과 얽힌 이야기를 알면 그림의 해석이 쉬워진다. 주인공 찾기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聖畵)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파란색의 옷을 입고 있다. 특히 그 주인공이 성모 마리아라면 울트라마린이라고 불리는 파란 색 치마를 입고 있을 것이다. 울트라마린은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닌 파란색을 가리킨다. 쳐다보고 있으면 왠지 푸르고 깊은 그 색깔의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듯 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알아보기도 쉬운 이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을 중심으로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림의 맥락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파란색은 성모마리아의 색
13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회법전은 가톨릭 전례복의 색을 표준화하는데 성모상에 파란색을 칠하도록 규정했다고 한다. 이후 파란색은 성모마리아의 색이 되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는 파란색 옷을 입었는데, 이 때 당시 르네상스 화가들은 파란색을 위해 울트라마린, 아주라이트, 스몰트(연한 남색물감, 화감청), 인디고(남색, 쪽빛)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이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색을 낼 수 있는 것은 울트라마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값이 황금만큼 매우 비쌌다. 반면 아주라이트는 그에 비해 가격이 쌌으나 다소 회색조를 띠었고 유리산업과 관련해 베네치아에서 생산된 스몰트는 변색이 심했다. 인디고도 주로 염료로 사용되었고 변색 문제 때문에 물감으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한다.
울트라마린은 고가수입품
색도 아름다운데다가 비싸기까지 했으니, 그 당시 그림을 주문하였던 부자들 혹은 가톨릭 성당에게 신앙심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재료는 없었을 듯하다. 울트라마린이 비쌌던 이유는 수입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울트라마린의 어원은 ‘바다(marine),’멀리’(ultra)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울트라마린의 원료는 청금석인데, 당시에는 바다 건너 저 먼 동방의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질 좋은 청금석이 나온다고 알려졌다. 이 청금석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있었고 이 청금석은 황금 다음으로 비쌌다.
그림 1 <암굴의 성모>
따라서 당시에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은 화가에게 그림을 그릴 때 울트라마린을 칠할 부분과 정확한 양, 금액까지 명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그림에 쓰는 양을 속여 횡령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그 당시 기능공 취급을 받았던 화가의 지위를 생각하면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 할 것이다. 심지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도 1483년 <암굴의 성모>(그림 1)를 그릴 때 이렇게 작성된 계약서가 전해내려 온다고 하니, 울트라마린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응용하기
그림 2 <수태고지>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몇 가지 그림을 감상해보면, 그림보기가 훨씬 재미있어진다, 우선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로렌초 디 크레디의 <수태고지>(그림 2)를 보면 그림 속 마리아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다. 왜 화필 성스러운 성화에 이렇게 강렬한 색깔일까 하는 물음도 해결된다.
그림 3 <최후의 심판>(부분)
이 밖에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그림3)을 보면 역시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하나씩 이야기를 이해하면 된다.
그림 4 <그리스도의 매장>
여기에 더해 영국 내셔날 갤러리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그리스도의 매장>(그림 4)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이 그림 속에서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없다. 대신 오른쪽 아래 부분이 비어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여자는 일반적으로 막달라 마리아로 추측이 되는데, 원래는 청색이었고, 스몰트를 써서 변색이 되어 갈색으로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빈공간은 성모마리아를 그리려다가 못 그린 것이고, 이유는 비쌌던 울트라마린을 구하지 못했던 까닭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비싸고 좋은 울트라마린은 성모마리아 스몰트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쓰이는 것이 그 때 방식에는 적합하기 때문이다.
해석은 당신의 것
마지막으로 이러한 해석방식에는 정답이 없으니 맘껏 즐기라고 말을 더하고 싶다. 작가의 의도는 알 수가 없고, 설령 알 수가 있더라도, 그것은 작품과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해석은 그림을 보는 사람의 것이고, 명작일수록 시대에 따라 해석주체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그 생명을 연장하기 때문이다.
참고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