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없는 십일 월이 가고 있다
가을비는 장맛비처럼 내렸고
낮에도 밤처럼 어둠이 내렸다
창밖의 곶감에도 곰팡이가 내렸다
그렇잖아도 핑계가 필요한
애들은 꾸물꾸물한 날씨 따라
들썩이다가 그마저도 지쳐버렸다
더 이상 날씨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해보다 비보다 추위에 덜덜거렸다
아직 떨어지지 못한 잎들은
추위와 바람에 시달릴 일만 남았다
십일 월이 간다고 해서 보니
흐르는 시간 위의 어느 한 점에
잠시 머물다 지나온 것인데
영원을 다녀온 듯 멀게 느껴지누나.
인생이란
삼시세끼 좇다 보면
저물지도 모르지.
별난 게 있을 것도 같았고
깨달음이 있을 때도 있었지.
삶은
생각만큼 무겁지도
생각만큼 가볍지도 않은데
나는 자꾸 무겁거나 가볍게
닦달을 하는지도 모르지.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때에도
관성의 법칙은
우주를 지배하고
우리를 떠밀지.
우리의 삶이
인과적이지 않아도
불평하지 말아야지.
비논리란 상대적임을
가끔은 알아야 하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
오늘 하루는
그냥 나처럼 살았다고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이
한 몸에 있었더라도.
그것이 전부일지라도
어떤 시인은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그 섬에 가고 싶다며
시가 끝나버렸다
하루 동안의 쓸쓸함을
하루 동안의 부대낌을
바다처럼 품어주는구나
오늘 나는 바다에
섬 하나 띄운 거로구나.
너를 만난다는 것은
섣부른 욕심에 걸려
한 발도 더 못나가는 것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자꾸 나는 이렇다고 말하는 것
말로 다 못한 것들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 채 가두는 것
그래서
피로하지만 나를 넘어서는 것
봄빛보다 차분한 가을빛 뒷산이
그친 비로 더 맑아졌다
적절한 농도로 단풍이 들더니
무더기무더기 어우러져 있었다
나의 가을도 너처럼
반짝이는 초록빛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섞이며 바래가는
단풍 빛이면 좋은 것을
홀로라도 멋쩍지 않고
같이라도 어우러질 줄 아는
가을빛 산이면 좋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