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에 우물 하나는

생겨야 하는 거였구나

움직임도 둔하고

욕구도 잠재적인데

어제와 오늘 사이

희망의 틈도 없는데

 

앉은 자리에 웅덩이라도

패여야 하는 거였구나

바닥이 무서워

어둠이 두려워

가라앉을 것만 같아도

깊어져야 되는 거였구나

 

해도 해도 안 된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됨에 대한 불의한 시선이

내장된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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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피었네

개나리도 피었네

개화를 기다리며

언제쯤 필까

나무의 시간을

궁금해 했지

 

 

벚꽃, 피었네

개나리도 피었네

겨우내 말이 없더니

꽃으로 말을 하네

일 년에 며칠로도

충분하다네

 

 

벚꽃, 피었네

개나리도 피었네

아무리 기다렸어도

여기저기서 피우면

꽃도 꽃같지 않다고

한눈팔지 않는가

 

 

벚꽃, 피었네

개나리도 피었네

그 긴 겨울 지나고

꽃으로 돌아오니

무슨 상징이길래

이다지도 아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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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라고 다 애끓는 건 아니에요

정도 정리가 되는구나 싶어요

이제 우리는 궁금해 하지 않아요

어제의 안녕도, 오늘의 근황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말해요

 

정이라고 다 한 가지겠어요

파도 넘실대는 바다 같은 날

물결 잔잔한 호수 같은 날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겠어요

고여 있거나 흐르거나

 

그래도 정이라고 말하잖아요

정의 역사도 늙어 가나 봐요

이젠 팔다리 없는 것들이라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해요

잡지도 못하고 닿지도 못해요

 

그러나

정이라고 다 애끓는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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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무모한 일이다

처음부터 참고할 것은 없었다

허허벌판을 지나

나지 않는 길을 나서는 것

오늘 무모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지나간 것들을

편애하려는 것이다

 

 

여린 새순이 시작하고 있다

낯선 세상 속으로 몸을 내민다

웅성대며 수군거리는 소리

무모한 거야 무모한 거야

꽃이 되고 잎이 되기 전에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모두 잎이 되지는 않는다  

 

어제는 종일 먼지인지 안개인지

모를 길을 모른 척 걸었다

저녁이 되면 느닷없는 피곤에

낮의 무모함을 탓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모하지 않으려

봄 내내 창밖만 바라보며

분별력만 헤아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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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짓누른 무거운 말들이

방향 없이 사납게 떠다닌 밤

봄비 내린 자리에 떠도는

봄공기로 채워지는 아침

 

문을 열어젖히고

이불이며 카펫이며 발판들을

턴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가

봄기운 머금은 봄을 들이겠는가

 

가장 좋고 훌륭하다는 뜻이

내가 알던 최선의 뜻이 아니니

다하라고 소박하게 말하기엔

크기도 무게도 만만치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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