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지나는 법

 

 

지나본 길이라면 알 수 있다

얼마쯤 가면 터널이 나오는지

얼마쯤 가면 터널이 끝나는지

 

준비도 없이 터널을 지날 때

빛에서 어둠으로

어느새 동행이 바뀌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터널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어둠이 아닌 척 눈이라도 감거나

빛에 대한 절박함으로 기도라도 하거나

그럴 밖에 .......

 

지나보지 않은 길 위에서

만나는 캄캄한 것들이여

너로 인해 한 시기 시들어도

터널을 지나는 법이 그렇듯이

 

우리 시든 채로 그저 시든 채로

시든 잎을 떼어내지 말고

그 자리를 쉬이 뜨지 말고

버티거나 기다려 보지 않겠나

 

 

      1. 19. 짧은 시간이 흐른 뒤 써 보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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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있는 눈

 

 

 

지난번 내린 눈이 남아서

그늘마다 푹푹 쌓여있다

미처 치우지 못한 눈은

덕지덕지 기운 옷처럼

울퉁불퉁하고 초라하다

 

안 올 때는 기다려지고

올 때는 그토록 반갑더니

있어주니 그 마음 다르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

어디 그뿐이랴

변했다 탓하지 말자

극과 극은 통한다던데

그런 소리라도 해보자

 

좋아하지도 못하고

싫어하지도 못하고

갇히기보다는

허튼 짓이라도 해보자

 

 

 

 

    2015. 1.6 걸어가는 길에서, 집밖 풍경에서 만나는 눈과 식어버린 마음에 대해

                 거룩한 접근을 하는 것 같아 어깃장 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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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지에 갔었네

 

 

의림지에 갔었네

푹하니 상쾌하더니

울툴불퉁한 얼음길에

힘주며 걸었네

저 논에는 얼음 없는데

발자국 따라 얼었네

 

새해에도

큰소리 났지만

소리없이 사는 법을

익히기는 어렵네

 

의림지에 호수는 없었네

바람이라도 있는 날이면

수면을 흔들던 물결은

사라져버렸네

얼음을 덮은 눈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 있을

겨울 호수

 

우리도 한 시기 저렇게

죽은 듯이 있을수 있을까

우리도 저들처럼

말없이 인내할 수 있을까

 

연밭에 말라빠진 연대들이

별 볼일 없이

버려진 듯이 있다가

봄이면 기적처럼 올 때까지

우리도 기다릴 수 있을까

 

울퉁불퉁한 얼음길

울퉁불퉁한 마음

우리들 삶이란

조각보 같아서 

자투리 조각이 모여

남루함을 넘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1.6  새해가 벌써 엿새째라..

                 신념에 차 보여도 늘 소심하게 염려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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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의 가로등

 

 

있지, 저 공원에 등들이 마음에 와 닿아

예전에 전혜린의 책에서 보았던 가스등처럼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어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같은 등이 켜지는데

오늘 유난히 그 빛이 말이야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빛이란 뭘까, 잠깐 생각하고

빛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생각하고

빛나는 것은

주변을 밝게 한다는 것은

제 스스로 밝아진다는 것은

좋은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말야

요즘엔 말야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여

빛은 빛나는 그 모습 그대로

바람은 그 냄새와 촉감 그대로

햇빛은 그 따뜻함 그대로

그건 말이야

본연의 모습 그대로가 좋다는 거야

이래서 저래서가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가 좋다는 거야

태곳적부터 있어왔던 그 모습

요즘엔 말야

그 모습 그대로 느끼게 돼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말이야

오늘도 주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저 체육공원의 반짝이는 등들이

참 마음에 들었어

무심하게 켜진 저 등들이

이만큼 떨어진 내 마음에 물드는 거야

사람이 마음속에 들어올 때처럼

사물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거야

꽤 감상적이니 않은가 말이야

때론 감상적이어야 하지 않은가 말이야.

 

 

 

           12.31. 저녁에 주방 창문으로 본 공원 등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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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修身)

 

 

 

우리는 어쩌면 지나가도 될 일에

의미를 달려고 애쓰는지도 모를 일

우리의 분노가 머무는 곳에서

우리의 갈등이 깊어지는 곳에서

우리는 한동안 머문다

 

지나가야 할 것과 머물러야 할 것

힘써야 할 것과 힘쓰지 않아야 할 것

의미가 있는 것과 의미가 없는 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섞이고 많아지는 말들

부당하다고 펄떡거리는 감정들

 

우리는

아무데서나 머물지 말아야 한다

 

지나가야 할 곳에서

우리를 헐값으로 넘기고

덤까지 주면서

머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지나갈 일에 매달리지 말고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2014년 12월 31일.

   진실도 감정적으로 몰아붙이면 우스워진다.

   새 해에는 속속들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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