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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 - 우리의 인생이 어둠을 지날 때
권수호 지음 / 드림셀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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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읽고 났을 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작가...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지? 내 마음속,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갔나? 

나 역시 쓰는 사람이다. 출간 작가는 아니지만 쓰는 게 그저 좋은 사람이라 글쓰기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했다. 

글을 쓰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어떻게 느껴질까를 염두에 두며 1부를 다시 읽어봤다. 작가는 절대 독촉하지 않는다. 글 쓰는 것이 참 쉽다며 희망 고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는 힘들다고 고해성사한다. 그러면서 글쓰기가 힘들긴 하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증거를 여기저기에 슬쩍슬쩍 흘려둔다. 그러다가 우아하게 한 마디를 남긴다.

글을 쓴다는 것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변주곡이다. 빨라져도 느려져도 괜찮다. 여전히 나의 노래는 재생 중이니까. 비록 연주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 속도 조절이 잘 안 되고 중간중간 틀리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 노래는 스스로 끝내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연주자로 나선 내가 이번 생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는 없겠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두드리고 , 연주하고, 듣는 과정이 즐겁다면 중간에 틀리고 음이 어긋나고 어설퍼도 괜찮은 거 아니겠나. 그러니까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p88)


책에는 여러 꿀팁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첫 문장 쓰는 법, 한 줄 요약으로 글의 방향을 잡는 법, 퇴고하는 법 등 작가가 스스로 터득한 글쓰기 노하우, 일명 영업비밀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그런데 압권은 2부다.

2부에서 작가는 일타강사로 변신한다. 글감을 찾는 방법을 '관찰', '경험', '행복', '삶의 의미'를 통해 알려주는데, 작가가 썼던 에세이를 예시로 보여준다. 특별한 설명도 없다. 그런데 읽으면서 자꾸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맞다! 나도 저런 경험 있는데?"

2부를 다 읽고 책을 덮을 즈음이 되면 작가가 쌓아 놓은 빌드업에 감탄하게 된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라고 했지만 각각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의 일상도 빛나는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급기야 입에서 "그렇다면 나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의 마음을 꿰뚫는 점쟁이이자 꿀팁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일타강사이기도 하며 글을 쓸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페이스 메이커였다.

독자에서 시작한 우리는 어느새 글쓰기 비법을 전수받는 제자이자 즐거운 글쓰기, 가벼운 글쓰기를 함께 이어나가는 크루가 된다.

반복된 일상으로 지쳐가는 마흔 즈음에, 혹은 마흔과는 상관없는 어느 때든, 글쓰기가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선물 같은 책.

책 중간중간에 그려진 연필도 선물 같다. 손에 꼭 쥐고 즐겁게  써보자. 그게 무엇이든.



흐린 기억 속 제삿날은 성대한 잔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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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 - 엄마가 어디 있지?
김두경 지음 / 부카플러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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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상 어디에든 존재하는 엄마의 사랑을 과학 원리와 접목시켰다는 것이 놀라운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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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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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하던 참이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정점으로 치달았던 젠더이슈와 공정 담론, 그 끝나지 않는 논쟁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다.

후안 엔리케스의 <무엇이 옳은가>에서는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적 윤리란 없으니 오만함을 떨치고 학습과 실천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말했다. 김누리 교수는 <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두 권의 저서를 통해 능력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일상의 민주화, 존엄주의 교육을 통한 개혁을 주장했다. 마이클 샌들은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승자에게는 오만을 남기고 패자에게는 굴욕만을 안기는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했다. 하지만 승자들에게 겸허할 것과 패자들에게는 '제비뽑기 입시'같은 개인화된 해결책만을 제시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여전히 공정 담론에 대해 갈증을 느끼던 차에 만나게 된 책이 바로 김정희원교수의 <공정 이후의 세계>였다.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저자는 허울뿐인 공정 담론에서 벗어나 다른 질문, 다른 삶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개별주의적 존재론에 기인한 능력주의와 공정 프레임을 넘어서서 관계적 존재론에 기반한 정의의 개념을 다시 세우자는 것이 책의 요지다.

1부 <공정의 해체와 재구성>에서는 공정 담론을 무기로 기득권과 이해관계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정에 대한 공론화를 막고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공정', '능력에 따른 보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무조건 중립적이고 합리적이라 여겨지지만 오히려 사안이 갖고 있는 실체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감춰진 사실과 맥락을 보려는 시도도 차단한다. '공정, 불공정'여부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차별, 혐오를 조장하고 갈등을 극대화한다. 이때다 싶어 정치는 이를 적극 활용한다.

p19 지금 한국 사회에서 손쉽게 내세워지는 공정이라는 가치는 전 사회에 걸쳐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로서의 공정, 또는 사회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원리로써의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공정하지 않다"는 외침은 많은 경우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 억울함, 박탈감 등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p25 문제는 한국 정치가 (한국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의 근본적 요인과 구조적 기원을 탐색하려 애쓰기보다 오히려 이런 심리를 적극 이용하면서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능력에 따른 차별,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개념 앞에서 늘 주저하던 나였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 무엇인 문제지?'라는 질문에 대해 머릿속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답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명료해졌다. 능력이라는 것은 '순수한 개인적 성취'가 아니라 마이클 샌델이 강조하는 '운' '신의 은총'에 더해 경제적 계급과 구조적 불평등의 영향을 받는다. 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절대적으로 순수한 개념이 아닌데 어떻게 능력에 따른 차별과 보상이 공정할 수 있을까.

p96 능력의 개념은 진공관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가부장제, 이성애 중심주의, 인종주의와 같은 지배 논리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저자는 공정 담론과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구성 비율 변화 역사를 보여준다. 1969년 두 명의 흑인 음악가들이 심사과정에서의 인종 차별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선발과정에서는 오디션장에 장막이 설치하는 절차가 추가되었다.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된 것. 놀랍게도 이 절차 하나로 0%였던 여성 연주자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현재 남녀 성비는 50대 50이 되었다. 하지만 최초에 문제를 제기했던 흑인 연주자는 여전히 106명의 연주자 중 단 한 명이다. 왜 그럴까? 단순히 시험제도, 평가절차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교육에 들어가는 재원과 정보, 인맥 등을 흑인들은 여전히 누릴 수 없다. 이러한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능력에 따른 보상과 차별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불공정이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능력주의'가 이미 충분히 비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 개혁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고... 공정에 가려진 차별과 혐오 덕에 부와 권력, 계급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굳이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 담론을 해체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비판에 귀 기울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선택적 무지'와 '전략적 무지'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선택적 무지는 특정 영역에 대해 선택적으로 무지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으로, '우리 장애우'라는 표현을 썼던 대선 후보가 반복되는 지적과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차별적 언어 습관을 고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선택적 무지'의 상태로 살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으며 무지와 무감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기득권의 덫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전략적 무지란 사람들의 의심, 정보의 부족이나 불확실성, 허위정보를 이용해서 무지 혹은 거짓을 적극적으로 구성, 조작, 유지하는 것으로 백신 음모론이 대표적 예다.

시종일관 날카로운 저자의 지적은 선택적, 전략적 무지자들을 향한 일침으로 느껴졌다. 이제 모른 척 좀 그만하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공론장으로 나와 이야기하자고 말이다. 그래서 허망했다. 과연 저자의 일침이 가 닿기나 할까? "응~ 아니야~"라면서 귀를 막고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져 다수가 된다면, 선택적 전략적 무지를 일삼던 사람들이 이젠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선택적 전략적 인식'을 하려나?

2부 < 다시 쓰는 정의론 >에서 저자는 '돌봄'과 '정의'를 바로 세워 다른 세상을 꿈꿔보자고 한다.

인간은 모두 근본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관계라는 '관계적 존재론'에 입각해 자신만을 돌보자는 게 아니라 사회 개혁을 위한 '돌봄'의 개념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번아웃'을 예로 든 것이 인상적이었다. 번아웃은 나의 내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직, 사회 구조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급진적인 자기 돌봄에 더해 구성원 서로를 돌보는 문화, 사회에 돌봄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문화를 만들자고 한다.

또한 저자는 모두가 존엄하고 모두에게 정의로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보편적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한다. 이미 충분한 소득과 자산을 보유한 기득권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애초에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 '완전한 자유경쟁'이란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자유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국가 복지 정책의 수혜를 입기 위한 경쟁에 또 뛰어들어야 한다.

저자는 경쟁, 비교, 선별의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치를 찾자고 하며 '한 사회의 보편적 이상을 설정하고 그 이상에 모두가 분명히 도달할 수 있도록 배분의 수준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보편적 정의는 실현될 수 있다'(p163) 고 강조한다.

한 사회의 평등적 이상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배분 방식과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조직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의의 원칙과 기준을 '분배정의, 절차 정의, 관계 정의, 정보 정의'의 개념으로 제시한다. 정의는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구조와 문화이자 일상적 실천이라고 말하며 (p212) 공동체가 할 일은 구조와 문화를 쇄신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문제는 정치였고 해결책도 정치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제쳐두고 정치공학적 계산에만 매달리는 정치를 '유예의 정치'라고 칭한 저자는 대안으로 '정체성의 정치'와 '예시의 정치'를 제안한다.

정체성의 정치는 차별, 혐오, 폭력의 원인은 사회구조에 있다는 주장이다. '젠더, 계급, 인종, 장애유무, 성적 지향, 나이, 종교, 언어, 민족, 국적, 학력, 출신지역'등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교차적으로 형성되며 그에 따라 억압, 불평등, 차별의 양태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흑인이면서 퀴어인 여성의 경우 억압 체계와 불평등이 다층적이다. 따라서 투쟁, 저항의 대상은 백인, 이성애자, 남자 등의 상대 진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국주의', '자유시장경제', '가부장제'라는 것이다.

p225 젠더, 계급, 인종, 장애 유무, 성적 지향, 나이, 종교, 언어, 민족, 국적, 학력, 출신지역 등 모든 범주들은 다르게 겹쳐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억압, 불평등, 차별의 양태도 달라진다. 또한 이 범주들은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만들어낸다.

p228 억압된 모든 이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가부장제라는 정치경제적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시의 정치'는, 소수만 누리는 자유가 아닌 모두의 해방을 우리 삶 안에서 실현하면서 대안 세계를 우리의 현재 속에 구축하려는 협력과 연대의 노력이다.(p230) 기득권들이 강요하는 유예의 정치, 쉽게 말해 '급한 것부터 해결하고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라는 달콤한 말에 말려들어서는 안 되며, 미래의 정치적 이상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원하는 가치와 이상을 가진 사회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고도 지루했던, 답을 찾지 못해 답답했던 공정 담론에 종지부를 찍을 때다.

태생이 정의롭지 못한 '능력주의', 능력주의에 기댄 공정 담론, 거기에 편승해 세대 갈등을 부추기고 기득권을 지킨 정치. 이것들과 결별할 때다.

인간은 모두가 존재 자체로 존엄하다는 것이 정의이다.

내가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듯 상대도 당연하게 나의 존엄성을 인정할 것이라는 믿음,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믿음, 이 가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하는 사회. 이것이 공정한 세상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정의와 공정에 대해 가열차게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실천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 그것만이 남았다.

국민들의 처절함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싸움에 정신이 팔린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낀다거나,

우리가 가진 고난과 고통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싶다거나,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남겨줬으면 하는 모든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공정하지 않다"는 외침은 많은 경우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 억울함, 박탈감등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 P19

‘온전한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차별과 불평등을 외면하게 만든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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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즐겁게 - 우리말의 어원과 유래를 찾아서
박호순 지음 / 비엠케이(BMK)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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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즐겁게>라는 책 제목만 보고, 정확히 말하면 '즐겁게'라는 단어에 홀려 서평단에 신청을 했다. 디베이트를 가르치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늘 단어와 어휘의 한계를 절감하는 내게 서광이 비치는 기분이랄까. '우리말의 어원과 유래를 찾아서'라는 부제에서는 스펙터클한 모험, 여정을 기대하기도 했다.

처음 책을 펼쳤던 순간, 살짝 당황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책을 휘리릭 넘겨보는데,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한자와 한자풀이를 보며 '아... 어쩌지....'라고 안절부절했다. 하지만 나의 당혹스러움은 성급한 것이었음을 첫 챕터만에 인정하게 됐다.



책은 모두 다섯 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언어'에서는 우리말의 어원과 역사적 근거를 밝히고 있다. '얼굴', '사랑', '말', '한참'등의 단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에 대한 여러 설들을 소개하고 저자만의 독창적인 관점도 첨가한다.

'얼굴'은 정신, 넋, 혼, 마음, 생각을 의미하는 '얼'과

꼴이나 모양을 뜻하는 '굴'이 합하여 '얼굴'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p13)

단어의 어원과 유래를 무미건조하게 소개하는 책이었다면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단어에 자신만의 관조와 통찰을 담아내 표현하곤 한다. '사람'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설명한 것이 그 예다. '사람'과 '사랑'은 뿌리가 같은 말이라, 사랑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어원사전에 정리되어 있다고 소개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사람'이란 글자에서 'ㅁ'을 떼어다가 모난 곳을 지극한 정성으로 갈고닦아 'ㅇ'을 만든 다음, 떼어낸 글자에 다시 끼워 넣어주는 그 과정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P27)

2장 민속에서는 전통문화의 토대가 된 우리 민속에 대해 설명한다.

이미 <우리 민속의 유래 1,2>를 편찬했던 저자답게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의 깊이와 넓이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히 '천간'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태어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고 죽는 식물의 한살이를 묘사한 것이라며(p113) 저자는 '갑'과 '을'이 사람들의 심보에 의해 본뜻을 상실한 채 사용되고 있음을 섭섭해한다.



3장 역사에서는 꼭 알았으면 하는 역사 속 단어에 대해 알려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호가 의미하는 바를 읽을 때는 숙연해졌다가 '동곳'에 얽힌 정조의 일화에서는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다.

고구려 국호의 의미는 '크고 높은 성'으로 '세상 가운데 가장 높이 세운 나라'이고, 백제 국호는 '큰 물'로서 '대 해상 국가'를 의미하며, 신라는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서 널리 사방을 받아들인다'라는 뜻을 담았다.

(p146)

4장 식물과 지명에서는 우리 주변의 식물과 지명의 유래에 대해 얘기한다.

'이팝나무'의 이름에 대해 설명하면서 저자는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백성들을 위해 전제 개혁을 실행한 '이성계가 내려준 밥'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 홀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밥그릇에 흰 꽃을 수북이 담았다는 선비의 이야기, 24절기 중 입하 절기에 꽃을 피워 입하나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가지 한계를 지적하며 '입쌀밥나무'에서 '이팝나무'로의 음운변화 과정을 설명해 준다. 나무 이름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자료조사를 했으며 연구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장 교훈에서 저자는 우리의 고유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동방예의지국', '순국', '호국', '열사', '의사', '태극기', '애국가'를 설명하는 저자의 자세는 진지하고 엄숙하다. 단어 하나에 깃든 우리 민족의 숨결까지 귀하게 여기는 듯하다.

'태극기'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19년 3월 1일 조선의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 선언을 하던 때부터였다고 한다. 나라를 빼앗긴 조선 백성들은 기미년 3월 1일 정오에 탑골 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치기로 되어 있었다. 이날 참여할 모든 백성들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태극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였는데, 그때만 해도 '조선 국기'라고 부르던 명칭을 일본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을 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p276)

'즐겁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

내가 덜컥 서평단을 신청하게 만들었던 책 제목 <국어를 즐겁게>는 제목 값을 했다. 국어의 즐거움뿐 아닌 '우리 것'의 즐거움을 제대로 알게 해주었다. 우리 말, 우리 풍속, 우리 역사, 우리의 것이라 불릴 여러 것들에 얽힌 이야기를 읽다 보니 말 한마디, 생각 한 조각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책임감이 올라왔다. 흐뭇하고 기쁜, 즐거운 경험이었다.



역동적이고 활발하게 국어를 활용하는 요즘의 우리는, 더욱 진지한 자세로 국어를 대해야겠다.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해준 우리말과 우리것에 대한 애정이 저자만의 것이 아님을, 오늘을 살며 우리말을 쓰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태도임을 마음에 새겨본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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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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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보다 빨라졌다. 줌이 뭔지도 몰랐던 1년 전과 달리 이제 웬만한 회의나 강의는 화상으로 진행된다.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 VR, AR 등에서 맴돌며 어물쩡대던 용어들은 '메타버스'라는 핫한 단어로 수렴되었고 멀게만 느껴지던 과학기술들이 순식간에 속속 상용화되고 있다.

​<마지막 레벨업>은 미래의 과학기술을 다룬 SF 소설이라고 하기엔 인간의 상상력이 한계에 다다랐나 싶을 정도로 새로울 것 없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상현실 게임, 드론 택배, 화상수업, 스마트 워치, 모바일 페이 등이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큼 다가온 메타버스 시대를 십분 활용하여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동화임은 분명하다. 익숙하고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라는 설정은, '판타지아'라는 게임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해준다. 소설에 흥미를 갖고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수학, 과학 영재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슈피리어 스쿨'에 다니는 선우는 공부도 곧잘 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학생이다. 그런 선우에게 범호라는 아이의 협박과 갈취가 시작됐고 친구 없는 외톨이 생활 역시 시작됐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서포트해 주지만 선우가 진정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부모님, 범호의 괴롭힘으로 방황하는 선우에게 '판타지아'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볼품없는 자신 대신 근육질의 용감한 캐릭터, '지존 용사'로 살 수 있는 곳.

​그러던 어느 날 순간 이동을 하는 수상한 아이 원지를 만나게 된 선우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원지와 판타지아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유를 갈망하는 원지를 돕는 과정에서 자유란 무엇인지, 죽음과 영생이란 무엇인지,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선우'로 거듭난다. 단순히 성장소설이라고 칭하기는 미안할 정도로, < 마지막 레벨업>은 많은 질문을 던진다.

* 가상현실 속 '나'와 현실 속 '나'는 과연 다를까?

실제 현실을 대표하는 선우와 가상 현실을 대표하는 원지의 만남은 가상 공간인 판타지아에서 이루어진다. 현실 세계로 나가지 못하고 판타지아에 갇힌 원지와는 달리 선우는 두 세계를 넘나든다. 현실의 초라한 모습과는 달리 가상 공간 속에서는 근육질의 용감한 용사로 살아간다. 하지만 원지와 친해지고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선우는 변화한다. 현실 세계 속 범호 패거리를 가상현실에서 원지가 혼내주는 장면은 읽는 이로 하여금 묘한 쾌감마저 선사한다. 이 쾌감은 선우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고 선우의 변화에 일조한다. 가상공간 속 지존 용사는 현실처럼 안경을 쓰고 마른 체형으로 바꾸고, 현실에서는 용기를 내 범호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면에 숨겨있던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아내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의 '나'를 일치시키게 된 것 아닐까.

이런 선우의 변화는 소설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숨겨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봐~'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고 멋진 사람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선우를 보며 조금은 자신감을 레벨업 시키지 않을까.

​* 영원한 삶은 행복할까?

판타지아를 만든 하이드의 대표 하상민 이사는 하원지의 아빠다.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그는 딸에게서 유일하게 온전했던 뇌를 판타지아에 연결한다. 긴 잠에서 깨어난 원지는 판타지아 속에서 늙지도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 아빠는 그것이 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지는 선우에게 말한다.

"판타지아는 내게 감옥이야."

"선우야. 나는 네가 부러워. 너한테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다칠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말이야, 꽃이 시드는 세상이 부럽고, 배고픔을 느끼는 네 몸이 부러워. 너는 성장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잖아."

영원한 삶을 저주로 느끼는 원지의 모습은 < 트리갭의 샘물 > 을 연상시켰다. 우연히 발견한 샘물을 마시고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된 터크 가족의 삶은 행복이 아니라 저주인 듯 보였다. 세상 어느 곳에도 발붙일 수 없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 생로병사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영원히 불행한 삶. 꿈꿀 수 없고 선택할 수 없는 삶.

결국 원지는 선우의 도움으로 영생에서 벗어난다. 원지는 행복해졌을까?

​* 원지에게 가상세계 속 새로운 삶을 선물한 원지 아빠의 선택은 옳았나?

딸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신체인 뇌를 통해 딸에게 영생을 주고 영원히 자신의 곁에 두려고 했던 하상민의 모습은 <우주 소년 아톰>의 고명한 박사를 연상시켰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아들을 대신하는 로봇을 만들었던 고명한 박사처럼, 딸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딸의 뇌를 이용해 영생을 주겠다는 이기적인 욕망을 실현시킨 하상민.

그의 욕망은 딸에게서 멈추지 않았다. 영원한 삶을 원하는 각계각층의 저명한 사람들을 판타지아로 비밀리에 이주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일에 자부심까지 느끼고 있었다.

"법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해 비밀리에 진행할 뿐, 나는 이 일에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지. 이보다 더 이타적인 일이 있을까? 판타지아 안에서 사는 것. 그건 새로운 삶을 주는 거야. 현실에서는 살지 못하는 경이롭고, 근사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 말이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선택으로 판타지아에 이주했지만 원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원지에게는 처음부터 영생과 유한한 삶, 가상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오로지 아빠의 일방적인 선택과 결정이었다.

현실 세계 속 선우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금전적인 부분은 물론 온갖 학습 플랜에 있어서 아낌없는 지원을 했던 선우의 부모였지만 한 번도 선우의 의견에 관심 가져본 적이 없었다. 원지도, 선우도 각각의 세계가 감옥 같다고 느낀 이유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무기로, 자녀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필히 부모도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 하이드... 레벨업

Hide : (남이 보거나 찾지 못하게) 감추다. 숨기다.

가상 게임 판타지아를 만든 회사의 이름이 '하이드'이다. 모든 진정한 재미는 아직 숨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졌다고 했다. 책장을 덮으며 기가 막힌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책 제목이 하이드였어도 좋을뻔했다.

하상민은 딸의 죽음을 세상에 숨겼다. 동시에, 현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도 그 사실을 숨긴 셈이다.

선우는 자신의 속마음을 부모에게 숨겼다. 실제 자신의 모습은 가상현실 캐릭터 뒤로 숨겼고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숨겼다.

Level up : 캐릭터의 성장도가 올라가는 것. 레벨이 높을수록 강해지며, 더욱더 센 적을 상대할 수 있게 된다.

선우와 원지의 레벨업은 숨겨왔던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 자신과 상대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내는 것.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해내는 것.

그래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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