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공정 담론과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구성 비율 변화 역사를 보여준다. 1969년 두 명의 흑인 음악가들이 심사과정에서의 인종 차별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선발과정에서는 오디션장에 장막이 설치하는 절차가 추가되었다.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된 것. 놀랍게도 이 절차 하나로 0%였던 여성 연주자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현재 남녀 성비는 50대 50이 되었다. 하지만 최초에 문제를 제기했던 흑인 연주자는 여전히 106명의 연주자 중 단 한 명이다. 왜 그럴까? 단순히 시험제도, 평가절차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교육에 들어가는 재원과 정보, 인맥 등을 흑인들은 여전히 누릴 수 없다. 이러한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능력에 따른 보상과 차별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불공정이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능력주의'가 이미 충분히 비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 개혁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고... 공정에 가려진 차별과 혐오 덕에 부와 권력, 계급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굳이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 담론을 해체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비판에 귀 기울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선택적 무지'와 '전략적 무지'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선택적 무지는 특정 영역에 대해 선택적으로 무지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으로, '우리 장애우'라는 표현을 썼던 대선 후보가 반복되는 지적과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차별적 언어 습관을 고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선택적 무지'의 상태로 살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으며 무지와 무감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기득권의 덫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전략적 무지란 사람들의 의심, 정보의 부족이나 불확실성, 허위정보를 이용해서 무지 혹은 거짓을 적극적으로 구성, 조작, 유지하는 것으로 백신 음모론이 대표적 예다.
시종일관 날카로운 저자의 지적은 선택적, 전략적 무지자들을 향한 일침으로 느껴졌다. 이제 모른 척 좀 그만하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공론장으로 나와 이야기하자고 말이다. 그래서 허망했다. 과연 저자의 일침이 가 닿기나 할까? "응~ 아니야~"라면서 귀를 막고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져 다수가 된다면, 선택적 전략적 무지를 일삼던 사람들이 이젠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선택적 전략적 인식'을 하려나?
2부 < 다시 쓰는 정의론 >에서 저자는 '돌봄'과 '정의'를 바로 세워 다른 세상을 꿈꿔보자고 한다.
인간은 모두 근본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관계라는 '관계적 존재론'에 입각해 자신만을 돌보자는 게 아니라 사회 개혁을 위한 '돌봄'의 개념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번아웃'을 예로 든 것이 인상적이었다. 번아웃은 나의 내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직, 사회 구조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급진적인 자기 돌봄에 더해 구성원 서로를 돌보는 문화, 사회에 돌봄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문화를 만들자고 한다.
또한 저자는 모두가 존엄하고 모두에게 정의로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보편적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한다. 이미 충분한 소득과 자산을 보유한 기득권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애초에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 '완전한 자유경쟁'이란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자유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국가 복지 정책의 수혜를 입기 위한 경쟁에 또 뛰어들어야 한다.
저자는 경쟁, 비교, 선별의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치를 찾자고 하며 '한 사회의 보편적 이상을 설정하고 그 이상에 모두가 분명히 도달할 수 있도록 배분의 수준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보편적 정의는 실현될 수 있다'(p163) 고 강조한다.
한 사회의 평등적 이상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배분 방식과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조직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의의 원칙과 기준을 '분배정의, 절차 정의, 관계 정의, 정보 정의'의 개념으로 제시한다. 정의는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구조와 문화이자 일상적 실천이라고 말하며 (p212) 공동체가 할 일은 구조와 문화를 쇄신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문제는 정치였고 해결책도 정치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제쳐두고 정치공학적 계산에만 매달리는 정치를 '유예의 정치'라고 칭한 저자는 대안으로 '정체성의 정치'와 '예시의 정치'를 제안한다.
정체성의 정치는 차별, 혐오, 폭력의 원인은 사회구조에 있다는 주장이다. '젠더, 계급, 인종, 장애유무, 성적 지향, 나이, 종교, 언어, 민족, 국적, 학력, 출신지역'등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교차적으로 형성되며 그에 따라 억압, 불평등, 차별의 양태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흑인이면서 퀴어인 여성의 경우 억압 체계와 불평등이 다층적이다. 따라서 투쟁, 저항의 대상은 백인, 이성애자, 남자 등의 상대 진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국주의', '자유시장경제', '가부장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