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건축과 건설이 구별된다. 건축과 건설 모두 형태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수용하며기술적 규범을 고려하지만 오로지 건축만이 의미를 추구한다. - P133
건설은물품 저장고처럼 개별적이고 수동적인 효용성을 가질 뿐 다른 의미를갖지 못한다. 도시 변두리의 상점 겸 물류 창고가 그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 P133
건축이 절제의 규범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지만, 거주자의 요구에는 최대한 선의를 다해 응해야 한다. 거주 공간으로서의 적합성에는 상상력도 포함되지만, 무엇보다 거주자에 대한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 - P134
‘지붕’과 ‘기와‘가 동일 어원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토가toge‘2 또한 ‘tegere‘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가? 물론 두 가지모두 보호 역할을 한다. 지붕이 집을 덮어주는 것처럼 토가는 우리 몸을덮어준다. - P140
토가는 천, 다시 말해 ‘직물‘이다. 직물은 라틴어 ‘tela‘에서 왔고, 그것은 ‘texere‘ 즉 ‘tisser 직조하다‘의 어원인 ‘texla‘에서 흔적을 찾아볼수 있다. - P140
여기서 ‘tissu천, enlacement얽힘‘를 뜻하는 ‘textus‘가 파생되었고, ‘이야기의 연쇄’ 곧 ‘텍스트texte‘라는 말이 생겨났다. - P140
집 역시 온갖 자재가 엮임으로써 물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식물성 섬유를 엮어 만든 지붕이나지이 테스트를 읽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 P141
"양털이나 식물 섬유 더미에서 실을 잣는 일에는 기둥이나 목판을 짜는 일과 동일한 정신집중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하면서, 아티카에서 여신 아테나‘가 직조의신이면서 동시에 목공을 수호하는 신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아니라고 덧붙인다. - P142
‘날실(그리스어에서 남성의 단어)‘과 ‘씨실(그리스어에서 여성의 단어)‘을 짜는 직조공의 교직 작업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 결합을 은유한다는 데 주목한다. 그들은 그리스 문화에서 로마 문화로 바뀌면서 "실의 교차가짝짓기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 P142
아연은 오랫동안 ‘인도의 주석‘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아연을 뜻하는 단어 zinc가 ‘주석‘을 뜻하는 독일어 ‘zinn‘에서 파생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연은 파라셀수스 Philippus Paracelsus의 《야금술》에도 나오긴 하지만, 산업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고작해야 18세기 중엽 영국에서다. - P149
<프랑스 촌락과 농부》에서 "인간은 언어 행위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집이 합리적 논리나 자신의 환상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서도 인간은 전통, 관습, 모방혹은 다른 사람의 영향 같은 전혀 다른 고정관념에 순응한다"라고 지적한다. - P151
"정말 경사가 급한 지붕은 다습한 지역의 특성이고, 경사가 약한 지붕은 건조한 지역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물론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많은 사례가 그런 상관관계를 부인한다. - P151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도 평평한 지붕이나 이글루 같은 둥근 지붕을 가진 집이 있고, 덥고 건조한 지역에도 경사가 급한 지붕을 가진 집이 있다. - P151
그의 연구에 따르면 건축적 관례와 관행은 오히려 역사에서 설명될수 있다. 노동자와 상인이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기술과 노하우가 확산되었고, 정복자는 자신의 생활 습관을 식민지 주민에게 강요했다. 어느편이 먼저랄 것도 없이 기술 교배가 느리지만 분명하게 진행되었다. - P151
어떤 집은 빚이나물질적 어려움 혹은 부부간의 불화로 짓눌려 있고, 어떤 집은 사는 즐거움을 물씬 풍기기도 한다. 지붕은 그 모든 것을 표현한다. - P152
풍향계 꼭대기에는 수탉을 매달아바람의 방향을 가리키게 했다. 왜 하필 수탉을 매달았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새벽녘 수탉의 울음소리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실려 있으며, 어느 날 늙은 베드로가 수탉을 잡아 공중에 날렸더니 수탉이 부근의 종루 끝으로 떨어져 꽂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P155
사실 종탑이 교회를 장식하게 된 것은 고작해야 8세기 초부터다. - P155
가스통 바슐라르는 "집은 인간에게 안정의 근거 또는 그에 대한 환상을 주는 이미지의 집적체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 P158
집은 거주자를 안심시킬 수도 있고 불안정한 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다. 집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 P159
지붕에는 두 가지 모순된 속성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방어의 기능인 폐쇄성이고 다른 하나는 소통의 기능인 개방성이다. - P162
지붕의 철학은바로 이런 호의적인 대립 속에 자리한다. 지붕은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노출시킨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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