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체들은 기하 급수적인 비율로 개체수를 증가시키려 애쓰고 있고, 각 세대 동안이나 세대 사이의 특정 시기에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야 하며, 파멸의 위기를 겪어야 한다는 사실

이러한 생존 투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자연의 전쟁이 쉴 새 없이 일어나지는 않고, 죽음은 대개 순간적이며,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왕성하고 건강하며 행복한 자가 살아남아 번영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러한 유리한 변이의 보존과 유해한 변이의 배제를 나는자연 선택이라 부른다.

유용하지도 않고 유해하지도 않은 변이들은 자연 선택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다형적이라 일컬어지는 종에서 볼 수 있듯이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요소로 남겨질 것이다.

1장에서 언급했다시피 생활 환경 조건의 변화는 특히 생식계에 어떤 영향을 줌으로써 변이를 유발하거나 증가시킨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변이가 지나치게 많이 일어날 필요는 없다.

인간이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단지 개체 차이를 조금씩 더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결과물을 얻어 낼 수 있듯이,자연 또한 그러할 것이다.

다만 자연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결과를 얻어 낼 뿐이다.

토종 서식 생물들이 서로 그리고 외부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되어 있어서 더 이상 개선이 필요 없는 그런 지역은 없다.

인간이 체계적인 선택과 무의식적인 선택의 방법을 통해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면, 하물며 자연이 그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선택하지만 자연은 자신이 돌보는 존재의 이득을 위해서만 선택한다.

우리는 시간의 손(hand of time)이 시대의 오랜 경과를 나타내는 흔적을 남기기 전까지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토록 느린 변화를 볼 수 없다.

사회성 동물에서 자연 선택은 전체 군집(community)의 이익을 위해 각 개체의 구조를 조정할 것이다.

성 선택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 간의 투쟁에 달려 있으며, 그 결과는 패배자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자손을 조금밖에 남기지 못하거나 전혀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 선택은 자연 선택보다는 덜 가혹하다.

자연 선택은 오직 극히 소량의 대물림된 변이의 축적과 보존을 통해서만 작용하며, 이 변이들 각각은 보존된 유기체에게 이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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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이라는 용어 또한 정의 내리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는 동일한 계통 집단(community of descent)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를 증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기형은 대개 대물림되지는 않지만 그 종에게 해로운 또는 무익한 어떤 구조상의 상당한 이탈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체 차이는 매우 중요한데, 이는 자연 선택이 작용해 누적될 재료를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체 차이와 관련해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드는 점이 하나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다변적(protean)’ 또는 ‘다형적(polymorphic)’인 속들에 관한 것이다.

종과 변종 사이의 구별이 너무나도 모호하며 임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놀라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종과 아종’ — 몇몇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지만 별개의 종으로 분류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형태들 — 또는 ‘아종과 뚜렷한 특징을 가지는 변종들’ 또는 ‘보다 덜 뚜렷한 특징을 가지는 변종들과 개체 간의 차이’ 사이를 구분하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부모와는 약간 달라진 상태에서 점점 더 달라지는 상태로, 어떤 분명한 방향으로 구조적 차이들을 누적시켜 나가는 자연 선택의 작용(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때문에 변종의 계대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변종도 개체 차이와 비교할 때 단지 편의상 붙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란 단지 그 특징이 뚜렷하고 명확한 변종일 뿐이다.

지질학은 우리에게, 작은 속은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에 그 규모가 대단히 커지는 일이 흔한 반면, 큰 속은 최대치에 도달한 후 쇠퇴하고 결국 소멸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 준다.

여기서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어떤 속의 종들이 많이 형성되는 곳에서는 평균적으로 많은 종들이 여전히 형성되고 있다는 것뿐이며, 이는 사실이다.

프리스가 잘 설명했듯이 작은 종의 집단은 일반적으로 어떤 다른 종 주위로 위성처럼 무리를 이룬다. 그렇다면 변종이란 서로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가지는 형태들의 집단으로, 어떤 형태들 주위 — 그들의 부모 종 주위 — 에서 무리를 이루는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물론 변종과 종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변종들 사이의 차이점은 서로 또는 부모 종과 비교했을 때, 동일한 속에 속한 종들 사이의 차이점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변종은 종과 동일한 일반적 형질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변종은 종과 잘 구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우선, 변종과 종은 중간적인 연결 고리의 발견을 통해서 구별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특정한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구별 가능하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그리고 생명 세계의 모든 부분에서 아름다운 적응을 볼 수 있다.

각각의 사소한 변이가 유용한 경우에 보존되는 원리, 나는 이것을 인간의 선택 능력과 대비해 자연 선택이라 부르기로 했다.

각각의 사소한 변이가 유용한 경우에 보존되는 원리, 나는 이것을 인간의 선택 능력과 대비해 자연 선택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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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스페이스의 전 지구적팽창은 마지막 남은 명백한 운명"을 표상한다. 그것은 바로 공공 공간으로서의 세계다 - P43

하이퍼생태Hyperecology™, 제2의 월든, 혹은 새로운열대우림을 생산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의 품질이 향상된다. - P44

풍경은 정크스페이스가 되었고, 나뭇잎은 손상된다. - P44

나무는고문을 당하고, 잔디는 두꺼운 가죽이나 심지어 가발처럼인간의 속임수를 덮어주며, 스프링클러는 수학적 시간표에맞추어 물을 뿜어낸다… - P44

과거에 정크스페이스의 복잡성은 부속시설들의 단순함을 통해 보상을 받았다. 주차 건물, 주유소,
유통센터가 그러한 시설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모더니즘의 원초적 목적이었던 기념비적 순수성을일상적으로 보여주었다. - P45

요즘에는 서정주의를 대량투여함으로써, 예전에는 디자인이나 취향 혹은 시장과는전혀 무관했던 이런 부속 시설마저도 정크스페이스의세계로 편입되었으며, 정크스페이스는 야외로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 P45

공산주의의 궁핍함을 극복하기 위해 수행되었던동독 재건사업이 남긴 모든 잔재들이 대충 직사각형처럼생긴 청사진에 따라 서둘러 불도저로 제거된 후, 그곳에실패한 일련의 기형적이고 부적절한 공간이형성되었다(이는 분명 현재 유럽의 지배자들의 의도에 따라만들어진 것으로, 그들은 공동체의 돈을 무한히 강탈하면서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는 멍청한 납세자들이이를 눈치 채는 것을 영원히 지연시킨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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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그리스도교인으로, 그의 삶을 모범으로 삼는 것을 진정한 종교적 실천으로 제시하게 된다.

『비극의 탄생』이 니체의 초기 예술론을 대표한다면, 니체의 후기 예술론인 예술 생리학은 『바그너의 경우』(그리고『니체 대 바그너』)를 통해 제시된다.

니체 사유의 결정판은 『우상의 황혼』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들어 있다.

의식은 항상 ‘무엇에 관한 의식’으로 존재한다. ‘지향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의식의 존재 방식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채, 의식과 대상을 분리해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전통 철학의 태도였다.

정적 현상학으로 의식과 대상 사이의 지향적 상관관계를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명

발생적 현상학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상의 발생적 가능 근거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후설은 무엇보다 어떤 이론적 가정도 전제하지 않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방법적 전략을 통해 대상과 그 대상의 의미가 주관에게 주어지는 사태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사태 자체로!’라는 표어는 후설 현상학의 초기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다.

현상학적 기술적 분석의 결과 후설은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된다. 그중 하나는 의식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구조로서의 지향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본질을 직관한다는 사실이다.

1913년에 출간된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I』은 후설의 선험적 문제의식을 포함해 그의 학문 이론적 계획 전반에 대한 입문서이다.

모든 개별 과학들이 받아들이는 가장 일반적인 전제는 바로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후설은 이렇게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전제들을 믿어 버리는 태도를 ‘자연적 태도’라고 이름 붙이고, 현상학은 이러한 자연적 태도를 다시금 정당화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판단 중지’는 자연적 태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믿음의 타당성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방법이다.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바로 ‘순수한 사태’들이다. 현상학은 이러한 순수 사태들을 다루어 냄으로써 다양한 우리의 의식들이 대상을 구성하는 과정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다양한 대상적 의미 일반의 구조적 상관관계를 탐구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정적 현상학이 가진 한계는 해명해야 할 문제를 주로 논리적 가능성의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정적 현상학이든 발생적 현상학이든, 그 주요한 문제의식은 ‘선험적’이라는 데 있다.

후설에 따르면 이 생활 세계가 모든 이론적 구성물들의 가장 구체적인 의미 토대이다. 어떤 추상적인 학문도 궁극적으로는 그 의미의 뿌리를 생활 세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 세계가 없다면, 어떤 이론적 과학도 가능하지 않다.

후설은 주관성으로서의 이성의 참된 권위 회복을 시도한다.

후설은 자신의 시대를 ‘문명의 위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을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상실로 진단한다.

후설은 자신의 시대를 ‘문명의 위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을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상실로 진단한다.

후설의 원전 중에서 가장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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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만에게 있어서 건축의 본질은 다양한형태적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연속되게 만들어내는 변환에 있다. 그는 질감 혹은 벽의 최종적인 조형성에 안주하지 않는다. 대신 관심을 갖는 건축의 전략적 게임을 구성하는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인다. - P194

이제부터는 정면성의 횡적부분을 결정하는 ‘분리된detached‘ 자율적 요소들이 주택의 정면성을 강화하는것을 살펴볼 것이다. 주택을 지탱하는 추상적인 구조 그리드는 희미하다. 테라니도 그랬던 것처럼 코르뷔제식 프레임의 선택적인 사용은 없었다. - P194

중요한 것은 건축가의 창안과 구문syntax 의 사용 및 프로세스를 진행하도록 만드는 초기 움직임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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