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이라는 용어 또한 정의 내리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는 동일한 계통 집단(community of descent)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를 증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기형은 대개 대물림되지는 않지만 그 종에게 해로운 또는 무익한 어떤 구조상의 상당한 이탈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체 차이는 매우 중요한데, 이는 자연 선택이 작용해 누적될 재료를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체 차이와 관련해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드는 점이 하나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다변적(protean)’ 또는 ‘다형적(polymorphic)’인 속들에 관한 것이다.
종과 변종 사이의 구별이 너무나도 모호하며 임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놀라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종과 아종’ — 몇몇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지만 별개의 종으로 분류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형태들 — 또는 ‘아종과 뚜렷한 특징을 가지는 변종들’ 또는 ‘보다 덜 뚜렷한 특징을 가지는 변종들과 개체 간의 차이’ 사이를 구분하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부모와는 약간 달라진 상태에서 점점 더 달라지는 상태로, 어떤 분명한 방향으로 구조적 차이들을 누적시켜 나가는 자연 선택의 작용(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때문에 변종의 계대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변종도 개체 차이와 비교할 때 단지 편의상 붙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란 단지 그 특징이 뚜렷하고 명확한 변종일 뿐이다.
지질학은 우리에게, 작은 속은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에 그 규모가 대단히 커지는 일이 흔한 반면, 큰 속은 최대치에 도달한 후 쇠퇴하고 결국 소멸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 준다.
여기서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어떤 속의 종들이 많이 형성되는 곳에서는 평균적으로 많은 종들이 여전히 형성되고 있다는 것뿐이며, 이는 사실이다.
프리스가 잘 설명했듯이 작은 종의 집단은 일반적으로 어떤 다른 종 주위로 위성처럼 무리를 이룬다. 그렇다면 변종이란 서로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가지는 형태들의 집단으로, 어떤 형태들 주위 — 그들의 부모 종 주위 — 에서 무리를 이루는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물론 변종과 종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변종들 사이의 차이점은 서로 또는 부모 종과 비교했을 때, 동일한 속에 속한 종들 사이의 차이점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변종은 종과 동일한 일반적 형질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변종은 종과 잘 구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우선, 변종과 종은 중간적인 연결 고리의 발견을 통해서 구별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특정한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구별 가능하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그리고 생명 세계의 모든 부분에서 아름다운 적응을 볼 수 있다.
각각의 사소한 변이가 유용한 경우에 보존되는 원리, 나는 이것을 인간의 선택 능력과 대비해 자연 선택이라 부르기로 했다.
각각의 사소한 변이가 유용한 경우에 보존되는 원리, 나는 이것을 인간의 선택 능력과 대비해 자연 선택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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