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가 보기에 가장 엄밀한 철학 중 하나인 후설의 현상학도 이처럼 음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라마톨로지의 문제 설정의 필요성이 입증된다.

데리다가 유령론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재독해하는 것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는 생생한 현실과 가상, 물질과 이데올로기(곧 유령)를 집요하게 대립시키는 마르크스 사상에 함축된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기 위함이다. 이는 기호적 매개와 독립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 초기 작업의 연속이다.

둘째, 이러한 대립은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 혁명의 동력을 이루는 것이 대중의 해방의 열망, 곧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유령론은 초기 저작에서 수행되었던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 작업을 계승하며 확장하는 문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디우는 철학, 진리, 주체의 종말을 선고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에 대항하여 철학의 가능성, 보편적 진리, 진리에 충실한 주체를 구해 내고자 한다.

바디우는 현대의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진리에 기초한 혁명적 정치의 가능성을 선언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존재와 사건』이 순수 존재론이라면, 『세계의 논리』는 진리의 출현 논리를 담은 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디우에 따르면, 예술은 진리를 생산하는 네 가지 절차 중 하나이고, 따라서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철학을 존립게 하는, 철학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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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완성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게."
이런 경우에 미야는 반드시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기는 이렇게 되고, 여기는 이렇게 돼"라고 참견을 한다.

작품의 품격을 정하는 미술을 예로 들면, 미야는 항상 복잡한 건물을 설계하고, 그 건물 안에서 캐릭터를 왔다 갔다 하게 함으로써 재미있는 장면을 만든다.

애니메이터가 캐릭터의 연기를 그릴 때, 가장 힘든 것은 일상의 평범한 동작이다.

영화는 기획도 중요하고 제작도 중요하며 홍보도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배급이다. 만들고, 팔고, 보여준다. 이 단계가 하나로 이어지지 않으면 히트작은 태어나지 않는다.

훌륭한 경영자는 사내의 정보 수집에 빈틈이 없다. 즉, 사내의 도처에 스파이를 심어두고 모든 정보를 수시로 받아보는 것이다.

지브리에는 일명 ‘어항’이라고 부르는 투명한 유리방이 있는데, 그곳에 둘이 틀어박혀 여덟 시간 정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브리의 경우, 작화의 생산 속도는 아무리 기를 써도 한 달에 5분이 고작이다.

미야의 독서는 대부분 그런 식이다. 작가가 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자기 안에서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서 그 안을 즐겁게 돌아다닌다. 그 때문에 미야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책의 제목에는 ‘정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많다. 책 속에 있는 정원을 자기 나름대로 설계하는 것을 즐긴다고나 할까?

그림 콘티를 그리기 전에 우연히 미야와 같이 전철을 탔을 때, 앞쪽에서 중학생 소녀 대여섯 명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초수를 쟀다. 그것을 근거로 그 장면을 설계한 것이다.

"미야 씨, 이노우에 씨의 그림을 따라서 그릴 바에야 차라리 본인에게 그리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미야에게는 그런 발상이 없었는지, 처음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수가 적고 속마음을 잘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가슴 안쪽에서는 뜨거운 덩어리가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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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를 거쳐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는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에크리튀르, 곧 문자 기록을 폄하하고 음성이나 말을 중시하는 태도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어 왔다는 점이다.

데리다는 이처럼 진리 내지 로고스와의 관계에서 배제되고 억압된 문자 기록이 사실은 로고스 자체를 성립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임을 보여 주려 한다.

해체의 일반 전략은 단순히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위계 구조 자체의 탈구축을 시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엄밀한 의미의 탈구축이란, 가령 문자 기록을 음성에 대해 우월한 것으로 확립하거나 서양의 알파벳 같은 표음 문자에 대해 표의 문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 요컨대 ‘음성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기록 중심주의’의 주창을 뜻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언어는 일종의 문자 기록이라는 점이다. 곧 문자 기록은 언어 그 자체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어떠한 매체든 간에 생생한 현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으며, 모든 매체는 항상 재–현적이고 매개적인 지위를 갖는다.

더 나아가 ‘생생한 현존’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생생한 현존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차이들의 체계의 산물이며, 그러한 체계를 통해 성립하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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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건축 전시회 ‘김수근, 사이를 잇는 사람의 가치’ 전시회의 일환으로 출판된 책. 출생부터 타계까지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였다. 부여박물관 등 몇몇 이슈의 관련된 아티클과 공간지에 투고된 김수근 본인의 아티클도 수록되어 있다. 김수근을 회고하고 그의 작품의 변화를 훑어보기 좋다. 덤으로 표지 디자인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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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진실로 본다면 바퀴벌레의 생명도 바퀴벌레로서는 절대 소중하다. 생명의 허무로 본다면 사람이나 바퀴벌레가 다 같이 영원 속에서는 마찬가지로 허무하다.

결국 인간은 개인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아니라 인류의 성장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인간의가치를 올리는 일이다.

인간의 가치는 나를 위한 장수(長壽), 나를위한 권력, 나를 위한 돈보다는 자기와타인의 생활은 위하여 보탬이 되는 일에서 더 발휘된다.

인간의 생명을 의의 있게(有意義)하며, 서로 느끼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돈의 가치도, 권력의 가치도, 생명의 가치도 새로운 의미를 낳게 된다.

시간으로나 공간으로나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가치가 세로(시간)로 이어지고 가로(공간)로 연결된다면, 눈 깜짝할사이가 이어져서 영원을 이룬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가치를 어떤 사람처럼 한 잎의 꽃으로 비유한다면 모든 시간과 공간의 사이(間)가 그런 꽃으로 연결될 수 있다. 환한 아침 햇빛이 드는 사랑방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의 최선의 길, 가치를 공간의 ‘사랑방’을 위하여 잠깐 생각해 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너무 많은 사람을 쓰면, 정말로 친밀하고 본질적인 자기 일은 되지 않을뿐더러, 조직에 압도당해버리니까, 나는 많은 인원으로는 하지 않지.‘ 라는 식의이야기를 했더니, 한국으로 돌아간 그가 자신이 만든 몇백명의 큰 조직을 파산하고, 작은 조직을 만들어 단순하게 건축을 하기 시작한 의외의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건축가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극복하고, 구체적으로 해결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만, 김수근에게는 일본 건축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엄청난 활력, 저력을 느낄니다. 그것은 그의 성장 과정, 한국이라는 배경에서부터시작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은 섬나라인 일본과는 달리, 마치 폴란드처럼 주변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침략에 위협당하거나, 긴 시간 식민지로 괴로운 시대를 보낸 역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과 그가 서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품행과 한국의 가정적인 전통을 지키는 것이 그의 따뜻한인간미와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꼬르뷔제의 영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축을만들었던 모양입니다만, 그 후에 소위 말하는 바우하우스적인 근대건축으로, 최근에는 자신의 느낌으로부터 출발하는 디자인으로 변하게 된 듯합니다. 그는 좋은 것을 흡수해서, 그것을 점점 자신의 것으로 전환해 가는 능력이있습니다.

전쟁 후, 한국에는 김수근이 있었기에 세 번 정도 갔었습니다만, 그의 오피스 <공간사옥>은 꽤 재밌는 건축이라고생각합니다. 현재는 단순한 디자인이 건축이 된다는 풍조가 있어서 건축에서 <인간의 정신>이라는 문제가 비교적소홀하게 여겨져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건축의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한국의 문화에는 매우 독특한 세계가 있고 유니크하고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없는 상당히 날카로운, 샤프한 면이 있는데, 그것을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말한다면 탁․탁 냉엄한 음색을 가지고 있는 장구라는 북입니다.

조선 시대의 것에는 세계에서도 대단히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는 독특한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기 (사기그릇/도자기)는 물론이고 우리 건축가에게 있어서 좀더 관계가 깊고 흥미 있는 것은 조선의 목공예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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