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가 보기에 가장 엄밀한 철학 중 하나인 후설의 현상학도 이처럼 음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라마톨로지의 문제 설정의 필요성이 입증된다.

데리다가 유령론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재독해하는 것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는 생생한 현실과 가상, 물질과 이데올로기(곧 유령)를 집요하게 대립시키는 마르크스 사상에 함축된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기 위함이다. 이는 기호적 매개와 독립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 초기 작업의 연속이다.

둘째, 이러한 대립은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 혁명의 동력을 이루는 것이 대중의 해방의 열망, 곧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유령론은 초기 저작에서 수행되었던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 작업을 계승하며 확장하는 문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디우는 철학, 진리, 주체의 종말을 선고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에 대항하여 철학의 가능성, 보편적 진리, 진리에 충실한 주체를 구해 내고자 한다.

바디우는 현대의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진리에 기초한 혁명적 정치의 가능성을 선언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존재와 사건』이 순수 존재론이라면, 『세계의 논리』는 진리의 출현 논리를 담은 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디우에 따르면, 예술은 진리를 생산하는 네 가지 절차 중 하나이고, 따라서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철학을 존립게 하는, 철학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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