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공원, 농구하는 소녀 ㅣ 여행그림책
천선란 지음, 이주향 그림 / 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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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공원, 농구하는 소녀』는 천선란 작가가 한 달간 독일에 머물며 쓴 에세이다.

 

새벽 네 시, 저자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떠 온전히 나로서만 존재하는 시간에 직면한다. 직업인으로의 삶, 딸로서의 삶을 최우선으로 두느라 작가가 “삭제”해버린 시간이다. 작가는 그 시간을 ‘고독한 적막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시간에 갇혀있다 결단을 내린다. 독일 뮌헨으로 떠나겠다고.

 

그녀에게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간병을 하다 보면 우선순위가 환자에게 맞춰지고, 내 삶은 뒤로 밀려난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우울감과 불안감도 찾아온다. 가족을 두고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이 뒤따르기도 한다. 그 무거운 마음을 늘 안고 산다는 것은 아마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가족에게서 떨어져 독일에 머문 한 달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씹어야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빵,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이리저리 뻗어있는 공원. 그곳에서의 일상에 가슴이 벅찬 이유는 모처럼 마음에 찾아든 여유로움 덕분이었으리라.

 

나는 그런 작가의 마음에 공감되어 몇 번이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주향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따스한 삽화까지 더해져 읽는 내내 위로받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바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그러니 당신 마음 누일 곳 한 군데쯤 만들어 놓으라고.

 

작중 등장하는 소녀처럼 골대에 골을 넣지 못하면 어떤가. 삶이란 게 늘 정확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공을 던질 수 있다면 그뿐이다. 그 정도 여유는 있어야 우리는 또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 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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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6.가을호 - 91호
나가시마 슌이치로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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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미스터리 가을호는 고(故)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 특집으로 문을 열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기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여전히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작가님은 1985년 등단한 이래 2026년까지 106권의 작품을 발표했다고 한다. 연평균 약 2.4권의 책을 발표한 셈이다. 그런 그에게도 약 10여 년의 무명 기간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끈기 있게 작품을 써오신 건지 짐작이 간다. 거의 반평생 동안 글을 써오신 만큼 추리소설에 대한 그의 애정은 얼마나 깊었을까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집에 이어서는 신인상을 수상한 두 작품이 소개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의 이야기를 지나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신인상 수상작은 서로 결이 달라서 더욱 눈길이 갔다. 본격미스터리를 표방하는 김지훈 작가와 사회미스터리를 표방하는 류지원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나는 미스터리 장르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두 작품을 연달아 읽고 나니 같은 미스터리 장르 안에서도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꽤 다른 분위기의 글이 탄생한다는 것이 몹시 흥미로웠다.

 

두 작품 모두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지훈 작가의 『마치 현실의 특수설정과도 같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추리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 주어진 사건을 추리하는 이야기로, 곳곳에 복선이 치밀하게 깔려있다. 처음에는 그저 아무렇게나 산재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단서들이 후반부에서 차곡차곡 회수되는 지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난 본격미스터리 취향인가 보다)

 

김지훈 작가는 ‘추리소설의 낭만은 나날의 평범한 오브제들을 기발한 논리로 재발견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이 됐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이나 말 한마디가 사건을 풀어내는 중요한 단서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추리소설의 쾌감은 배가되는 것 같다.

 

이번 계간미스터리 가을호를 읽으며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특히 후반부에 무경 작가님이 연재하신 <추리소설은 기억한다-추리소설 속의 기억과 현실의 기억>은 나 역시 한 번쯤 의문을 가졌던 부분을 다루고 있어 몹시 공감하며 읽었다.

 

계간미스터리 서평단 활동도 이제 겨울호만을 남겨두고 있다. 한 권 한 권 읽어가며 이제야 조금씩 이 장르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겨울호에서는 또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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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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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욕조』는 프랑스혁명 직후 프랑스 서부의 방데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방데 전쟁은 프랑스 혁명 정부와 반혁명 세력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종교 정책과 징병 등 혁명정부의 강압적인 조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어 대규모 학살로 이어졌다.

 

주인공 시몽 델모트는 공화군 병사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낭트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가 전쟁에 나가 있는 사이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감옥에 갇힌다. 시몽은 그 배후에 낭트의 혁명정부를 대표하는 카리에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샤를로트의 설득으로 카리에르를 직접 죽이는 대신 그의 밑으로 들어가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계획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시몽은 그 과정에서 온갖 끔찍한 일들을 목격하고, 자신 역시 그 폭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시작한 행동이 어느 순간 또 다른 폭력이 되어버린다는 점이 몹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시몽의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낯설지 않다.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혹한 폭력, 이념과 명분을 내세우며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권력을 좇는 사람들. 무엇보다 그러한 사건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실제 역사에 허구를 섞어 이 작품을 썼다. 그리고 그 허구적 장치의 의미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드러나며 긴장감을 팽팽하게 끌고 간다. 덕분에 단순한 역사소설에 머물지 않고, 첩보물을 보는 듯한 스릴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단두대와 욕조』는 혁명이라는 명분 하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신념을 방패로 내세워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신념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시몽 역시 처음부터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도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때로는 분노와 복수심에 흔들리고 때로는 두려움에 움츠러든다. 그럼에도 결국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러한 그의 변화가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와 마음에 들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작품 초반에 시몽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자기가 믿는 것을 위해 싸워야 해.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내가 공화국을 믿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도시 와 내 작업장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너도 그것들을 사랑한다는 건 알아. 우리는 우리가 아끼는 것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해. ❞

 

신념이라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 어쩌면 그것이 신념에 가깝지 않을까.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책장이 술술 넘어갈 만큼 몰입해서 읽었다. 실제 역사에 허구를 절묘하게 섞어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지 않은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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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판박이
아베 코보 지음, 곽형덕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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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디오 방송 '안녕하세요 화성인'의 각본가이다. 어느 날 '나'의 집으로 자신이 화성인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찾아온다. 남자가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이, 그의 아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그녀는 남편이 정신병을 앓고 있어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며, 꽤 위협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자신이 30분 안에 갈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이 전화 때문에 남자를 집으로 들인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남자는 정신병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말을 잘한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가 정말 화성인은 아닌지, 아니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점점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작품은 주로 두 사람의 대화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두 사람의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 남자는 끊임없이 ‘나’의 생각을 뒤흔든다. 그가 던지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스스로를 ‘인간판박이’라고 말한다. 외형도 인간과 똑같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인간과 같다. 그렇다면 그를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반대로 ‘나’는 무슨 근거로 자신을 인간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의 직업과도 연결된다. ‘나’는 화성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방송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실제 화성 탐사선의 발사 계획이 발표되면서 그의 직업은 존폐의 위기에 처한다. 실제 탐사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진다면, 그동안 ‘나’가 방송에서 만들어온 이야기들은 허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와 허구의 경계는 무엇일까.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확실한 것일까.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개념들 역시 사실은 너무나도 불안정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평소 의심해본 적조차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인데, 이 작품은 그 당연함에 균열을 낸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듣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 역시 그렇게 확실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문제에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세계마저 낯설게 느껴진다.

 

짧은 소설임에도 굉장히 심오한 주제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내 머릿속을 흔든 작품이기도 하다. 이 혼란스러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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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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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아’를 향한 열기가 뜨겁다. 그와 함께 원전인 『오디세이아』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양 문학을 비롯해 영화와 예술 작품 곳곳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다양한 작품의 모티프가 된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 역시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자랐다. 언젠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워낙 방대한 분량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현대지성에서 오디오북이 나왔다고 해서 도전해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책을 함께 보내주셔서 오디오북을 들을 여건이 안 될 때는 책 읽기를 병행할 수 있었다.

 

특히 현대지성의 오디오북은 전문 성우가 직접 녹음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에는 AI로 제작된 콘텐츠도 많은데, 전문 성우가 낭독하니 확실히 몰입감이 다르다. 그냥 활자로 읽을 때보다 인물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훨씬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훨씬 파격적이다. 흔히 ‘신’이라고 하면 굉장히 너그럽고 근엄한 존재일 것 같지만, 신화 속 신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인간처럼 욕망하고 질투하며, 때로는 사소한 감정 때문에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우스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게 파렴치한 바람둥이이며, 헤라에게 자신의 바람을 들키지 않으려고 온갖 술수를 다 쓴다. 헤라 역시 그런 제우스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잔인한 복수를 일삼는다.

 

이들의 사랑, 질투, 분노, 복수를 지켜보다 보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구성이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삽화가 들어 있어 글만 읽을 때보다 신화 속 세계를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이름도 낮설기 때문에 삽화가 주는 시각적인 도움이 생각보다 크다.

 

중간중간 원전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해밀턴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오비디우스 등 고대의 여러 작가들이 남긴 작품을 바탕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정리했다. 덕분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처음인 사람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고, 나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을 줄 것이다. 여기에 오디오북까지 더해져 방대한 분량에 대한 부담도 조금은 덜 수 있다. 평소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있었다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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