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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판박이
아베 코보 지음, 곽형덕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9월
평점 :
#도서제공
‘나’는 라디오 방송 '안녕하세요 화성인'의 각본가이다. 어느 날 '나'의 집으로 자신이 화성인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찾아온다. 남자가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이, 그의 아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그녀는 남편이 정신병을 앓고 있어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며, 꽤 위협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자신이 30분 안에 갈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이 전화 때문에 남자를 집으로 들인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남자는 정신병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말을 잘한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가 정말 화성인은 아닌지, 아니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점점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작품은 주로 두 사람의 대화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두 사람의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 남자는 끊임없이 ‘나’의 생각을 뒤흔든다. 그가 던지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스스로를 ‘인간판박이’라고 말한다. 외형도 인간과 똑같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인간과 같다. 그렇다면 그를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반대로 ‘나’는 무슨 근거로 자신을 인간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의 직업과도 연결된다. ‘나’는 화성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방송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실제 화성 탐사선의 발사 계획이 발표되면서 그의 직업은 존폐의 위기에 처한다. 실제 탐사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진다면, 그동안 ‘나’가 방송에서 만들어온 이야기들은 허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와 허구의 경계는 무엇일까.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확실한 것일까.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개념들 역시 사실은 너무나도 불안정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평소 의심해본 적조차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인데, 이 작품은 그 당연함에 균열을 낸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듣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 역시 그렇게 확실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문제에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세계마저 낯설게 느껴진다.
짧은 소설임에도 굉장히 심오한 주제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내 머릿속을 흔든 작품이기도 하다. 이 혼란스러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본 리뷰는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