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그레타 - 지구의 미래를 위해, 두려움에서 행동으로
발렌티나 잔넬라 지음, 마누엘라 마라찌 그림, 김지우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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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다문 입, 결연한 표정.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암팡진 팔뚝.

최근 열여섯 살의 나이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라 논란의 중심에 선 소녀, '그레타 툰베리'다.

처음에 그레타 양에 관한 기사를 얼핏 보고

도대체 그녀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1인 시위를 벌인 건지 궁금했다.

그녀가 테드(TED) 강연장에서 했던 말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요약해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행동에 나서야만 다시 희망이 찾아오기 때문이죠."

 

그녀가 강연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 우리 모두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행동이 필요할 뿐.

행동하지 않는 한, 환경에 대한 논의는 의미 없는 외침에 불과하다.

이 책 「우리는 모두 그레타」에서는 기본적인 환경 지식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다.

기후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 이것이 계속되면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이 진행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며, 깨끗한 에너지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등.

너무나 친숙하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가 학창시절부터 들어온 그 이야기들이다.

뭐야? 달라진 게 없네? 우리가 고릿 적부터 알고 있던 것들인데 어쩜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거지? 하는 의문이 절로 따라온다.

"우리가 하는 일은 소소하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한다면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겠죠."

 

그레타 양이 '행동'을 강조하며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환경을 바꾸는 데는 기업의 친환경 정책이나 국가의 법적인 제재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의식 수준 및 생활의 변화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면 21세기 말에 이르러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최소 3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기온 상승은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55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아마존 밀림은 반 토막이 날 것이고 일부 지역은 지금보다 훨씬 자주 폭염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지금 동남아시아에서 그런 것처럼 태풍 같은 파괴적인 자연재해가 더 자주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대처는 너무나도 안일하고 무사태평하다.

수십 년 뒤 우리의 삶이,

내 아이가 앞으로도 쭉 살아나가야 할 이 세상이 어떨는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그레타 양의 조금은 "강박적인" 시선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정말로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말미에서 소개하고 있는 열 가지 실천사항부터 지켜보는 것으로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 생수 대신 수돗물 마시기, 개인 물통 사용하기(생수 공장 건립에 따른 환경 오염, 페트병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 제품 운반에 필요한 에너지 사용으로 온실효과 발생 등 매우 높은 환경비용이 지출됨)

2. 물 아껴 쓰기

3. 고체 비누 사용하기(펌프형 액체비누 = 플라스틱 사용)

4. (플라스틱 대신) 대나무 용품 이용하기

5. 플라스틱 없는 피크닉 즐기기(일회용 식기류 사용 x)

6. 자가용 대신 걷기, 자전거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7. 남은 음식물은 유리나 자기 그릇에 보관하기

8. 조명도 적당히, 에어컨도 적당히

9. 나의 작은 텃밭 만들기

10. 재활용 센터 방문하기

「우리는 모두 그레타」,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고 변화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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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허수아비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52
베스 페리 지음, 테리 펜 외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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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정말 아름답다.

가을 냄새 물씬 나는 색채와 빙그레 웃으며 까마귀를 바라보는 허수아비의 조화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어렸을 적 내 기억 속의 허수아비는 노랫말처럼 "성난 허수아비 아저씨"라거나

들판에 우뚝 서 있어 나를 깜짝깜짝 놀래키곤 하던 존재였다.

그나마도 요즘은 보기 힘든 추세여서 아들이 과연 허수아비를 알까? 했는데 표지를 보더니 '허수아비다!' 한다.

요즘 어린이집에서 가을 열매 따기 등 가을을 주제로 수업을 했는데 아마도 그러면서 한번 들어본 모양이다.

허수아비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아냐고 물었더니 두 팔을 벌리며 한 발로 서있는 흉내를 내던 아들. ㅎㅎ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그 이미지만 간직한 모양.

 

 

이 책 속의 허수아비도 처음엔 크게 다르지 않다.

너른 들판에 양 팔을 벌리고 우뚝 서 있는 허수아비.

들판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허수아비이기에 그의 주변엔 동물들도 얼씬하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여태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멀리서 바라본 허수아비의 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합니다.

누구도 다가오지 못합니다.

허수아비 혼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수아비 옆으로 아기 까마귀가 한 마리 떨어진다.

그런데 웬일?

까마귀 떼로부터 들판을 지켜야 할 허수아비가 허리를 굽혀 까마귀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아기 까마귀를 가슴에 품고 보듬어준다.

아기 까마귀를 품고 있는 허수아비의 표정은 이제껏 상상해 본 적 없는 따스한 표정.

늘 홀로 서 있던 허수아비도 사실은 외로웠던 걸까?

까마귀와 함께 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 충만해 보인다.

그러나 다시 겨울은 돌아오고..

까마귀도 이제 떠나야 할 시간.

그렇게 허수아비는 다시 홀로 남는다.

마음이 부서졌습니다.

기둥이 부러졌습니다.                  

                  

구멍난 가슴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허수아비는 이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홀로 남겨진 허수아비를 보며 코끝이 찡해졌다.

이토록 서글픈 모습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네 살 된 아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에게도 이 책은 무척 인상 깊었나 보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다음 날, 산책을 하던 아들이 공원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를 보며 팔자 눈썹을 만들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한 건지 어쩐 건지 한쪽 면의 가지가 듬성듬성 다 잘려 있었다.

"엄마 이 나무 좀 봐. 허수아비 아저씨처럼 혼자 있네. 팔이 없어"

그러면서 매우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팔을 쭉 뻗어 나무를 안아주던 아들.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또 이 그림책 생각이 나서 무척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책은 이토록 예쁜 마음을 키워준다.

+) 계절의 변화에 따른 색채의 변화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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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요리책
최윤건.박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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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따뜻한 마음들이 전해지는 레시피북이었다.

손녀를 아끼는 할머니의 마음,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손녀의 마음.

두껍지도 않고 대부분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 장 한 장 마음으로 아껴 읽게 되는 책이었다.

 

 

할머니의 기록은 때때로 무슨 말인지 알아 보기도 힘들고, 마치 그 옛날 밥아저씨의 그림 그리기 강의처럼 설렁 설렁 '이거 넣고 저거 넣고 하면 되지~' 하는 식이지만 삐뚤빼뚤한 할머니의 글자체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며 코끝이 찡해진다.

 

할머니는 하나의 요리 방법을 적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이셨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쓰면서, 쓴 것을 읽고 다시 읽어 가며 적었다. 그러다가 깜빡 졸기도 하셨다.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면서 마저 적으셨다. 하나의 요리 방법을 적는데 어떨 때는 한 시간이 넘기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간혹 레시피뿐만 아니라 그날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기록한다든지

'~하면 되지~' 하고 손녀한테 말을 건네듯 적힌 글귀들에서 따뜻함이 모락모락 풍긴다.

 

 

할머니의 설렁설렁 레시피는 손녀의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손녀의 레시피는 아주 직관적이라서 그림만 잘 살펴보아도 요리를 해나가는 과정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귀여운 손녀의 그림체를 보는 것 또한 이 책의 묘미다.

 

 

 

할머니는 몇몇 레시피의 말미에다 시간들을 기록해 놓으셨다.

2014년의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까지. 왜 그렇게 세세하게 시간을 기록해두셨을까?

손녀에게 메모를 남기는 지금 이 순간을 하나하나 붙잡아 두시고 싶으셨던 걸까?

말미에 기록된 특정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할머니가 더 그리워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만 같다.

 

 

"할머니, 된장찌개 어떻게 만들어?"라는 질문에 "쉬워. 된장 넣고 두부 넣고 보골보골 끓이면 되지."라고 할머니는 참 쉽게 대답하셨다. 우리 동네는 오후 4시쯤 '댕~댕~.'하고 뜨뜻한 두부가 실린 트럭이 왔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할머니가 5층에서 내려가는 사이에 두부 아저씨가 그냥 떠날까 봐 나는 책상 위로 올라가 창문을 열고 "두부 아저씨 기다려 주세요!"라고 소리치고는 했다.

 

 

나는 우리 할머니의 요리나 음식에 관해서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할머니는 집안 온갖 구석의 일거리를 찾아내어 없는 일도 만들어 하시는 분이었지만 부엌살림은 거의 엄마의 손에 맡기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가나다라를 보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나는 할머니께 가나다를 배웠는데, 가나다라를 읊을 때 할머니 특유의 음률이 있었다.

그래서 가나다라를 보면 자연스레 할머니의 목소리, 그 음률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 박린에게는 할머니께서 해주셨던 맛난 음식들이 나의 가나다라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된장찌개를 먹다가도, 생선구이를 먹다가도, 문득문득.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 나리라.

그 마음을 엮어 책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짙은 그리움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순간.

이 레시피북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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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권정생 문학 그림책 6
권정생 지음, 정순희 그림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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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언니>, <엄마 까투리>, <강아지똥>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신 권정생 선생님.

선생님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보통 가슴이 먹먹하고 뭉클해지는데, 이번에 만난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은 더 가볍고 유머스러웠다.

거기에다 작가 정순희 님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체가 어우러져 무척 해맑은 기운을 자아낸다.

 

 

이야기는 주인공 만구 아저씨가 장날에 고추를 팔고 돌아가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지갑도 두둑하겠다, 막걸리도 한잔 걸쳤겠다, 몹시도 흐뭇한 표정으로 걸어가던 만구 아저씨.

갑작스러운 아랫배의 신호에 골짜기 우묵한 곳으로 들어가 볼일을 본다.

볼일을 보다가 고추 판 돈이 들어있는 지갑이 떨어진 지도 모른 채 집으로 향하는 만구 아저씨.

 

 

뒤늦게 지갑이 없어진 걸 알아채고 시종일관 흐뭇~하던 만구 아저씨의 표정은 금세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뀐다.

하지만 이미 날은 저문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만구 아저씨는 결국 밤새 잠을 뒤척인다.

 

 

한편, 골짜기에 사는 톳제비(도깨비의 경상도 방언)들은 밤마실을 나왔다가 할아버지의 지갑을 발견하게 되고.

지갑에 들어있는 돈을 보며 이게 대체 무슨 용도인지 궁금해하면서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도깨비들은 돈의 용도를 알아차렸을까?

만구 아저씨는 과연 돈을 되찾을 수 있을까?

네 살 아들과 함께 이 책을 보다가 키득키득 한참을 웃었더랬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소재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한층 더 푸근해진다.

'돈'이라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도 한 번쯤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화책에서 늘 무서운 존재로 그려지는 도깨비들이 여기에서는 무척 어리숙하면서도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귀여운 도깨비들의 재미난 밤마실 이야기,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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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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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붙어 보이는 소녀의 입술.

물 한방울이 간당간당 겨우 붙어 있는 수도꼭지.

표지부터 무척 갈증이 느껴지는 소설, 「드라이」.

제목에서 시사하듯, 소설 '드라이'는 가뭄이라는 재난을 소재로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고, 마트의 생수는 모두 동이 났다.

주변에 있는 호수나 저수지의 물마저 다 말라붙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대처는 너무나 허술하고 미약하다.

생사가 달려 있는 이 위기 상황에서 십 대 주인공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대재앙의 발생.

생존을 위한 투쟁.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더 로드'가 거의 세기말적인, 갑갑하고 암울한 세상을 그려냈다면 '드라이'는 그보다는 좀 더 희망적이다.

그러나 그 재앙이 오래오래 지속된다면 '드라이'에 나오는 인물들이라고 별다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어떤 재해보다도 인간 재해니까.

맞은편에서 내 또래 남자애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무슨 제이컵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애가 지나가기만 바랐다. 난생처음 사회 부적응자가 된 느낌이었다.

제이컵은 땅에 뭔가를 질질 끌고 있었다. 무슨 막대기 같았다. 콘크리트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애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만큼 이 상황이 거북한 듯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 애가 끄는 물건은 막대기가 아니었다. 골프채였다. 헤드가 나무로 된 드라이버.

"안녕." 제이컵이 나를 지나치면서 말했다.

"안녕."

제이컵은 자기 길을 가고 나도 내 길을 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골프채로 뭘 하려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골프와 관련된 일은 아닐 것이다.

 

 

"실례합니다." 이번에는 좀 더 크게 말했다. "저한테 물이 좀 있는데요."

그 순간 거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살면서 이토록 남의 이목을 끌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물이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중략)

싫다. 정말 싫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애초에 물을 들고 오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빛은 해변의 불량배들과 비슷했다. 입술이 허옇고 거칠었다. 모두 다급하고 예민한 상태였다. 그 초조함이 내게 스포트라이트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생존이 달려 있는 상황에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마저도 평범할 수 없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고, 일상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된다.

친구도 주민도 더 이상 예전에 알던 그 사람들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끔찍한 공포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된다.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흡인력이 엄청나다.

꽤 두꺼운 책인데도 거의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괜히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시게 됐다.

인간에게 너무나 필수적인 '물'을 소재로 하다 보니 언젠가 나한테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이 세상은, 나는, 어떻게 변할까.

상상만으로도 묵직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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